시인 詩 모음

신석정 시 모음

효림♡ 2009. 4. 2. 08:37

* 山水圖 - 신석정  

숲길 짙어 이끼 푸르고

나무 사이사이 강물이 희여.....// 

햇볕 어린 가지 끝에 산새 쉬고

흰 구름 한가히 하늘을 거닌다.// 

산가마귀 소리 골짝에 잦은데

등너머 바람이 넘어 닥쳐와....//

굽어든 숲길을 돌아서 돌아서

시냇물 여음이 옥인 듯 맑아라.// 

푸른 산 푸른 산이 쳔 년만 가리

강물이 흘러흘러 만 년만 가리//

산수는 오로지 한폭의 그림이냐 *

* 신경림[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글로세움 

 

 * 산중문답 제3장 
[구름이 떠가며 무어라 하던?]
[골에서 봉우리에서 쉬어가자 합데다]
[바람이 지내며 무어라 하던?]
[풀잎에 꽃잎에 쉬어가자 합데다]

[종소린 어쩌자고 메아리 한다던?]
[불러도 대답 없어 외로워 그런대요]
[누구를 부르기에 외로워 그런다던?]
[불러도 대답 없는 사람이 그립대요] *
 

  * 임께서 부르시면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  

 

  호수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  

 

  포곤히 풀린 봄 하늘 아래

  굽이굽이 하늘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  

 

  파아란 하늘에 백로(白鷺)가 노래하고

  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볕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 *

 * 신석정시집[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미래사

 

* 꽃덤풀

태양을 의논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달빛이 흡사 비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터를 헤매이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뜯지 않았느냐?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여섯 해가 지나갔다.


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에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
오는 봄엔 분수(噴水)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
그 어느 언덕

꽃덤풀에 아늑히 안겨 보리라. *

 

 * 들길에 서서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삼(山森)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어니 *

* 양병호저[그리운 詩, 여행에서 만나다]-박이정

 

파도  

갈대에 숨어드는

소슬한 바람

9월이 깊었다.  

철 그른

뻐구기 목멘 소리

내가 잦아 타는 노을

 

안쓰럽도록

어진 것과

어질지 않은 것을 남겨 놓고

이대로

차마 이대로

눈 감을 수도 없거늘

 

살을 닮아

입을 다물어도

자꾸만 가슴이 뜨거워

오는 날은

 

소나무 성근 숲너머

파도 소리가

유달리 달려드는 속을

 

부르르 떨리는 손은

주먹으로 달래 놓고

파도 밖에 트여 올 한 줄기 빛을 본다.

* 양병호저[그리운 詩, 여행에서 만나다]-박이정

 

* 대춘부(待春賦)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거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은 핏줄을 타고 오기에
호흡은 가뻐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의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도 햇볕이 다냥해서

하도 햇볕이 다냥해서
뱀이 부시시 눈을 떠 보았다

ㅡ그러나 아직 겨울이었다

하도 땅 속이 훈훈해서
개구리도 뒷발을 쭈욱 펴 보았다

ㅡ그러나 봄은 아니었다

어디서 살얼음 풀린 물소리가 나서
나무움들도 살포시
밖을 내다 보았다

ㅡ그러나 머언 산엔 눈이 하얗다

핸 멀찌막이 경칩(驚蟄)을 세워 놓고
이렇게 따뜻하게 비칠 건 뭐람?

ㅡ그러나 봄 머금은 햇볕이어서 좋다

미치고 싶도록 햇볕이 다냥해서
나도 발을 쭈욱 펴고 눈을 떠 본다

ㅡ그러나 입춘(立春)은 카렌다 속에
숨어 하품을 하고 있었다

 

*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 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 새끼들이
지금도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 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 양들이 낡은 녹색 침대에 누워서
남은 햇볕을 즐기느라고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위에는 인제야 저녁 안개가 자욱히 내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 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마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욱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기인 둑을 거쳐서 들려오던 물결 소리도 차츰차츰 멀어갑니다
그것은 늦은 가을부터 우리 전원을 방문하는 까마귀들이
바람을 데리고 멀리 가버린 까닭이겠습니다
시방 어머니의 등에서는 어머니의 콧노래 섞인
자장가를 듣고 싶어하는 애기의 잠덧이 있습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인제야 저 숲 너머 하늘에 작은 별이 하나 나오지 않았습니까? *

* 한국문학선집[시]-문학과지성사

 

*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 지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야장미(野薔薇) 열매 붉어
멀리 노루 새끼 마음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를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즈시 타고 나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나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고 새빨간 능금을 또옥 따지 않으렵니까? *

* 한국문학선집[시]-문학과지성사

 

* 수선화 -눈 속에「사슴」을 보내주신 白石님께 드리는 수선화 한 폭
수선화는
어린 연잎처럼 오므라진 흰 수반에 있다

수선화는
암탉 모양하고 흰 수반이 안고 있다

수선화는
솜병아리 주둥이같이 연약한 움이 자라난다

수선화는
아직 햇볕과 은하수를 구경한 적이 없다

수선화는
돌과 물에서 자라도 그렇게 냉정한 식물이 아니다

수선화는
그러기에 파아란 혀끝으로 봄을 핥으려고 애쓴다

 

* 山山山

地球엔

돋아난

山이 아름다웁다.

 

山은 한사코

높아서 아름다웁다.

 

山에는

아무 죄 없는 짐승과

에레나보다 어여쁜 꽃들이

모여서 살기에 더 아름다웁다.  


언제나

나도 山이 되어 보나 하고

麒麟같이 목을 길게 늘이고 서서

멀리 바라보는

山 *

* 양병호저[그리운 詩, 여행에서 만나다]-박이정

 

* 슬픈 구도
나와
하늘과
하늘 아래 푸른 산뿐이로다.

꽃 한 송이 피어 낼 지구도 없고
새 한 마리 울어 줄 지구도 없고
노루새끼 한 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

나와
밤과
무수한 별뿐이로다.

밀리고 흐르는 게 밤뿐이오,
흘러도 흘러도 검은 밤뿐이로다.
내 마음 둘 곳은 어느 밤 하늘 별이드뇨. *

 

* 발음(發音)
살아보니
地球는
몹시 좁은 고장이더군요


아무리
한 億萬年
태양을 따라다녔기로서니
이렇게도 呼吸이 가쁠 수야 있습니까?

그래도 낡은 청춘을
숨가빠하는 地球에게 매달려 가면서
오늘은 가슴속으로 리듬이 없는
눈믈을 흘려도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여보!
안심하십시요

오는 봄엔
나도 저 나무랑 풀과 더불어
지줄대는 새같이
발음하겠습니다

* 映山紅
섧고도 사무친 일이사
어제 오늘 비롯한 건 아니어
하늘에 솟구쳐 사는
청산에도 비구름은 덮이던걸.....

대바람 소리 들으면서
은발이랑 날리면서

어린 손줄 안고 서서
영산홍을 바라본다 

 

* 기우는 해

해는 기울고요ㅡ

울던 물새는 잠자코 있습니다.

탁탁 툭툭 흰 언덕에 가벼이

부딪치는

푸른 물결도 잔잔합니다.

 

해는 기울고요ㅡ

끝없는 바닷가에

해는 기울어집니다.

오! 내가 미술가(美術家)였다면

기우는 저 해를 어여쁘게 그릴 것을.

 

해는 기울고요ㅡ

밝힌 북새만을 남기고 갑니다.

다정한 친구끼리

이별하듯

말없이 시름없이

가버립니다. *

 

* 호조일성(好鳥一聲) 
갓핀
청매(靑梅)
성근가지
일렁이는
향기에도
자칫
혈압이
오른다.

어디서
찾아든
볼이 하이얀
멧새
그 목청
진정
서럽도록
고아라.

봄 오자
산자락
흔들리는
아지랑이,
아지랑이 속에
청매에
멧새 오가듯
살고 싶어라.

 
* 신석정(辛夕汀)시인 

-1907~1974 전북 부안 사람   
-1924년 조선일보에 시 [기우는 해] 발표 , 1968년 한국문학상,1972년 문화포장,1973년 한국예술문학상 수상

-시집 [촛불][슬픈 목가][대바람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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