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천상병 시 모음

효림♡ 2009. 4. 3. 08:18

* 강물 - 천상병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 

 

* 들국화 

산등선 외따른 데,
애기 들국화.


바람도 없는데
괜히 몸을 뒤뉘인다.


가을은
다시 올 테지.


다시 올까?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ㅡ *

 

* 국화꽃

오늘만의 밤은 없었어도
달은 떴고
별은 반짝였다
괴로움만의 날은 없어도
해는 다시 떠오르고
아침은 열렸다
무심만이 내가 아니라도
탁자 위 컵에 꽂힌
한 송이 국화꽃으로
나는 빛난다 *

 

* 갈대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나란히 소리 없이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

 

* 길

길은 끝이 없구나
강에 닿을 때는
다리가 있고 나룻배가 있다
그리고 항구의 바닷가에 이르면
여객선이 있어서 바다 위를 가게 한다

길은 막힌 데가 없구나
가로막는 벽도 없고
하늘만이 푸르고 벗이고
하늘만이 길을 인도한다
그러니
길은 영원하다

 

* 길

가도 가도 아무도 없으니
이 길은 무인(無人)의 길이다.  
그래서 나 혼자 걸어간다.  
꽃도 피어 있구나.  
친구인 양 이웃인 양 있구나.  
참으로 아름다운 꽃의 생태여ㅡ.  
길은 막무가내로 자꾸만 간다.  
쉬어 가고 싶으나
쉴 데도 별로 없구나.  
하염없이 가니
차차 배가 고파온다
그래서 음식을 찾지마는
가도 가도 무인지경이니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한참 가다가 보니
마을이 아득하게 보여온다.  
아슴하게 보여진다.  
나는 더없는 기쁨으로
걸음을 빨리빨리 걷는다.  
이 길을 가는 행복함이여. * 

 

* 구름  

저건 하늘의 빈털터리꽃

뭇 사람의 눈길 이끌고

세월처럼 유유하다

 

갈 데만 가는 영원한 나그네

이 나그네는 바람 함께

정처없이 목적없이 천천히

 

보면 볼수록 허허한 모습

통틀어 무게없어 보이니

흰색 빛깔로 상공 수놓네

 

* 바람에게도 길은 있다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 소릉조(小陵調) -70년 추석에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

* 천상병시집[주막에서]-민음사, 1995 

 

* 나의 가난은
오늘 아침은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 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도
잔돈 몇 푼이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 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잎으로 때론 와.....
괴로웠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

 

아가야 
해뜨기 전 새벽 중간쯤 희부연 어스름을 타고 낙심을 이리저리 깨물
며 사직공원 길을 간다. 행인도 드믄 이 거리 어느 집 문밖에서 서너
살 됨직한 잠옷 바람의 앳된 계집애가 울고 있다. 지겹도록 슬피 운
다. 웬일일까? 개와 큰집 대문 밖에서 유리 같은 손으로 문을 두드리
며 이 애기는 왜 울고 있을까? 오줌이나 싼 그런 벌을 받고 있는 걸
까? 자주 뒤돌아보면서 나는 무심할 수가 없었다.  아가야, 왜 우니?
이 인생의 무엇을 안다고 우니? 무슨 슬픔을 당했다고, 괴로움이 얼
마나 아픈가를 깨쳤다고 우니? 이 새벽 정처 없는 산길로 헤매어 가
는 이 아저씨도 울지 않는데..... 
아가야, 너에게는 그 문을 곧 열어 줄 엄마 손이 있겠지. 이 아저씨에
게는 그런 사랑이 열릴 문도 없단다. 아가야 울지마! 이런 아저씨도
울지 않는데..... *

 

* 행복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총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

 

* 천상병시인 

-1930~1992 일본 출생

-1949년 [문예]지에 시 '강물'이 김춘수에 의해 추천,  2003년 은관문화훈장

-시집 [주막에서][귀천()][요놈 요놈 요 이쁜 놈]....-1993년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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