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신동엽 시 모음

효림♡ 2009. 4. 8. 08:14

* 산에 언덕에 - 신동엽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山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行人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人情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

 

* 봄은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녹이듯 흐물흐물
녹여버리겠지. *  

 

* 그의 행복을 기도 드리는

그의 행복을 기도 드리는 유일한 사람이 되자
그의 파랑새처럼 여린 목숨이

애쓰지 않고 살아가도록
길을 도와 주는 머슴이 되자.
그는 살아가고 싶어서

심장이 팔뜨닥거리고 눈이 눈물처럼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나의 그림자도 아니며

없어질 실재도 아닌 것이다.
그는 저기 태양을 우러러 따라가는

해바라기와 같이 독립된

하나의 어여쁘고 싶은 목숨인 것이다.
어여쁘고 싶은 그의 목숨에

끄나풀이 되어선 못쓴다.
당길 힘이 없으면 끊어버리자.
그리하여 싶으도록 걸어가는

그의 검은 눈동자의 행복을
기도 드리는 유일한 사람이 되자.
그는 다만 나와 인연이 있었던
어여쁘고 깨끗이 살아가고 싶어하는 정한 몸알일 따름.
그리하여 만에 혹 머언 훗날 나의 영역이 커져
그의 사는 세상까지 미치면 그땐
순리로 합칠 날 있을지도 모을 일일께며. *

 

* 고향

하늘에
흰구름을 보고서
이 세상에 나온 것들의

고향을 생각했다

즐겁고저
입술을 나누고
아름다웁고저
화장칠해 보이고

우리
돌아가야 할 고향은
딴 데 있었기 때문......

그렇지 않고서
이 세상이 이렇게
수선스럴
까닭이 없다

 

* 봄의 소식(消息)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 되나 쑥덕거렸다
봄은 발병 났다커니
봄은 위독(危毒)하다커니

눈이 휘둥그래진 수소문에 의하면
봄이 머언 바닷가에 갓 상륙해서
동백꽃 산모퉁이에 잠시 쉬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렇지만 봄은 맞아 죽었다는 말도 있었다
광증(狂症)이 난 악한한테 몽둥이 맞고
선지피 흘리며 거꾸러지더라는......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 되나 쑥덕거렸다
봄은 자살했다커니
봄은 장사지내 버렸다커니

그렇지만 눈이 휘둥그레진 새 수소문에 의하면
봄은 뒷동산 바위 밑에, 마을 앞 개울
근처에, 그리고 누구네 집 울타리 밑에도
몇 날 밤 우리들 모르는 새에 이미 숨어 와서
몸단장(丹裝)들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

 

* 그 사람에게

아름다운
하늘 밑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쓸쓸한 세상세월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다시는

못 만날지라도 먼 훗날
무덤 속 누워 추억하자.
호젓한 산골길서 마주친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 삼월

오늘은 바람이 부는데
하늘을 넘어가는 바람
더러움 역겨움 건들이고
내게로 불어만 오는데

음악실 문 앞
호주머니 뒤지며
멍 멍 서 있으면

양주 쓰레기통 속
구두통 멘 채
콜탈칠이 걸어온다

배는 고파서 연인(戀人) 없는 봄
문 닫은 사무실 앞
오원짜리 국수로 끼니 채우면
그래도 콧등은 간지러운
코리아

제주로 갈거나
사월(四月)이 오기 전
갯벌로 갈거나, 가서
복쟁이 알이나
주워먹어 볼거나

바람은 부는데
꽃피던 역사(歷史)의 살은
흘러갔는데
폐촌(廢村)을 남기고 기름을
빨아가는 고층(高層)은 높아만 가는데

말없는 내 형제(兄弟)들은
광화문(光化門) 창밑, 고개 숙이고
지나만 가는데
오원짜리 국수로 끼니 채우고
사직공원(公園) 벤취 위
하루 낮을 보내노라면
압록강 철교같은 소리는
들려오는데

바다를 넘어
오만은 점점 거칠어만 오는데
그 밑구멍에서 쏟아지는
찌꺼기로 코리아는 더러워만 가는데

나만이 아닌데
쭉지 잽히고
아사(餓死)의 깊은 대사관(大使館) 앞
걸어가는 행렬(行列)은
나만이 아닌데

이젠
안심하고 디딜 한 평의 땅도
없는데
지붕마다
전략(戰略)은 번식해만 가는데

버스 정류장 앞
호주머니 뒤지며
멍 멍 서 있으면

늘메미 울음 같은
아사녀의 봄은
말없이 고개 숙이고 지나만 가는데

동학(東學)이여, 동학(東學)이여
금강(錦江)의 억울한 흐름 앞에
목 터진, 정신이여
때는 아직도 미처 못다 익었나본데

소백(小白)으로 갈거나
사월(四月)이 오기 전
야산(野山)으로 갈거나
그날이 오기 전, 가서
꽃창(槍)이나 깎아보며 살거나

 

* 散文詩 1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鑛夫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아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대씩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思索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大統領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久遠)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憐憫)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모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漢拏에서 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 신동엽(申東曄)시인 

-1930~1969 충남 부여 사람
-1959년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大地]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
-시집 [阿斯女] [錦江] 1980년 유고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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