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도종환 동시 모음

효림♡ 2009. 6. 4. 08:19

* 누가 더 놀랐을까 - 도종환 

고추밭을 매다가
엄마얏! 지렁이
명아주 뿌리에 끌려 나와
몸부림치는 지렁이

배춧잎을 솎아주다
엄마야, 벌레 좀 봐!
고갱이에 누워 자다
몸을 꼬는 배추벌레

지렁이랑 나랑
누가 더 놀랐을까
배추벌레랑 나랑
누가 더 놀랐을까 * 

 

* 보름달  

연못에 보름달 환하게 떴다
산개구리들 몰려나와
달 갖고 놀다가
그만 조각조각 깨버렸다

"조심하라고 그랬지!"
"오늘 벌써 몇 번째야?"

엄마 개구리 소리치며 혼내다가
하늘 보니 달이 그대로 있다
연못에도 보름달
그대로 있다 *

 

* 달걀 도둑  

둥우리에 들어 있는

달걀을 꺼내다가

 

뒤통수 따가워

고개 돌렸더니

 

암탉이

헛간 지붕에서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내려다본다 

 

너였구나 

도둑놈 

날마다 알 훔쳐가는

도둑이 너였구나 *

* 어른들  

옥수수 같이 먹을래 

묻지 않고

몇 살이니? 

물으세요 

 

봉숭아물 예쁘게 들였구나

하지 않고 

이름이 뭐야?

물어보세요 

 

강아지하고도 잘 놀지? 

물어보는 어른은 없고 

몇 학년이니? 

물어보세요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았어? 

묻지 않고 

공부 잘하지요? 

엄마한테 꼭 물어봐요. * 

 

* 채송화  

해바라기는 키가 커서

멀리서도 보이지만

키 작아도 채송화

얼마나 예쁜데요

 

부용꽃은 꽃이 커서

눈에 금방 뜨이지만

꽃 작아도 채송화

얼마나 고운데요

 

키 작아도 예쁜 꽃

얼마나 많은데요

채송화는 작은 꽃

작아서 더 고운 꽃 * 

 

* 나비

나비야 부르니

강아지가 쪼르르 

달려 나온다

 

나비야 부르니

고양이가 목 길게 뻬고

두리번거린다

 

나비야 불러도

나비는 보이지 않는 마당에

봄 햇살만 가득하다 *

 

* 지는 별 

팽나무 잎 우수수 

밤바람에 진다

어둠 속에서

별들을

산 너머로 투욱 툭

던지는 이 누구일까

 

먼저 익은 밤들이
먼저 떨어진다
새터고개 너머로
투욱 툭 지는 별도
먼저 익어 떨어지는
잘 여문 별일까 *

 

* 물장난  

비 맞는다 옷 젖는다

소리치시지만

 

비 오는 날 물장난

진짜 재밌죠

 

사방팔방 물 뿌려도

표시도 안 나고

 

젖은 옷 젖은 몸

더 젖을 것도 없고 *

* 이름  

금낭화는 너무 예뻐서

이름을 알게 된 꽃

 

제비꽃은 내가 먼저

다가가 이름 부른 꽃

 

민들레는 어릴 때부터

알고 있던 꽃

 

민들레, 제비꽃, 금낭화

이름 부르면

 

꽃들은 고개 돌려

나를 쳐다보지요

 

나도 사람들이

내 이름 부르면

기분이 좋아요 *

 

* 병아리 싸움

마당을 가로질러 가다가

다리가 부딪쳤다고

눈 부라리고 깃털 곧추세우며 

"어쭈 해보겠다는 거야!"

"그래, 한번 붙어보자 이거지?"

날개를 푸드덕거리고

어깨를 툭툭 치기도 하다가

그냥 보리수나무 밑으로 간다

붙었다고 꼭 싸우는 건 아니다

그냥 한번 기싸움 해보는 거다

하루가 멀다 하고 툭탁거리지만

그렇다고 꼭 싸우는 건 아니다

나뭇가지 위에서 쉴 때는 같이 쉬고

잠자리 잡으러 달려갈 때도 같이 간다 *

 

* 동물 농장  

엄마 잃은 산토끼 데려다

방 안에서 키우다가

짝 만들어 내보내주었더니

자고 나서 심심하면

방에 들어와 논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문을 발로 긁는다

처음엔 주저하던 제 짝도

데려와 같이 논다

굽돌이도 찢고 장판지도 찢고

책은 봐서 뭐 하냐는 듯

책 모서리도 갉아놓고

오줌도 싸놓는다


그래도 크게 혼내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더니

닭들도 툭하면 들어온다

너희는 안 된다고

몰아내려 했더니

토끼는 되고 우리는

왜 안 되냐는 듯

막무가내다 

안 나가려고

이리저리 도망치며

날개를 푸득거리는

닭들을 내쫓고

토끼똥 닭똥 치우는데

툇마루에서 다람쥐란 놈이

그 모습 빤히

쳐다보고 있다

다람쥐 너도? *

 

* 겨울새

   된바람이 

저수지 물 얼음으로

바꾸어놓은 밤


딱새야 

너는 어디서

작은 발

오그리고 잤니

 

이불을 덮고도

나는 밤새

웅크리며 잤는데 

 

멧새야 

너는 어떻게

언 볼을 녹이며

밤을 지샜니 *

 

   * 아기 잠자리  

국화잎에 앉았다

내 어깨로 날아와


발에 묻은 향기를

톡톡 터는 잠자리


날개마다 가을볕을

사금처럼 매달고서


바람 불어 신이 난

단풍빛 잠자리 *

 

* 소독차   

소독차가 간다

꽃밭을 돌아 느티나무 옆을 지나

소독차 간다

꽁지에서 내뿜는

띠연기를 따라

아이들이 달려간다

물러서라는 소리

야호 소리

소독약 뿜어져 나오는

소리에 묻힌다

모기 파리는 벌써 몸을 피하고

아이들만 연기를 뒤집어 쓴 채

소리치며 따라가는

소독차 *

 

* 포플러

내가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저도 가지 사이로 살짝 나를 바라보고

 

땀 뻘뻘 흘리며 일하고 있으면

이파리 다 흔들어 부채질해주고

 

밭둑에 앉아 쉬다 다른 나무 쳐다보면

저도 고개 돌려 먼 데 산 바라보고

 

포플러야 너도 내가 좋은 거지

나도 사실은 네가 좋아 *

 

* 도종환동시집[누가 더 놀랐을까]-실천문학사

'동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인의 애송 동시 1  (0) 2009.06.12
김용택 동시 모음  (0) 2009.06.04
권태응 동시 모음 3  (0) 2009.03.31
권태응 동시 모음 2  (0) 2009.03.30
권태응 동시 모음   (0) 2009.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