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대기 들고는 - 권태응
막대기 들고는 무엇하나?
벼 멍석에 덤벼드는 닭을 쫓고
막대기 들고는 무엇하나?
양지쪽에 묶어 세운 참깰 털고
막대기 들고는 무엇하나?
뒤곁에 오볼 달린 대출 따고
* 책 자랑
할아버지 책 자랑은 어려운 한문 책
그렇지만 그것은 중국의 글이고
아버지 책 자랑은 두꺼운 일본 책
그렇지만 그것은 일본의 글이고
언니의 책 자랑은 꼬부랑 영어 책
그렇지만 그것은 서양의 글이고
우리 우리 책 자랑은 우리 나라 한글 책
온 세계에 빛내일 조선의 글이고
* 북쪽 동무들
북쪽 동무들아
어찌 지내니?
겨울도 한 발 먼저
찾아 왔겠지
먹고 입는 걱정들은
하지 않니?
즐겁게 공부하고
잘들 노니?
너희들도 우리가
궁금할 테지
삼팔선 그놈 땜에
갑갑하구나
* 민들레
구석진 언덕에 한 폭 민들레
혼자서 노랑 꽃 피어났구나
나비도 안 찾는 응달진 곳에
혼자서 고요히 피어났구나
다시서 찾으니 한 폭 민들레
그 벌써 꽃 지고 늙어졌구나
아무도 안 찾는 응달진 곳에
혼자서 고요히 늙어졌구나
* 은행나무
우리 동네 은행나문 굳고 큰데도
어쩌면 열매 한 톨 안 달리고
건너 마을 은행나문 그리 안 큰데
해마다 우룽주룽 열매 달리나?
우리 동네 은행나문 수나무고요
건너 마을 은행나문 암나무래요
아하하하 우습다 나무 내외가
몇백 년을 마주보고 살아온다네
* 어린 보리싹
곡식을 다 걷어간 텅 빈 들판에
찬 바람 우수수수 쓸쓸도 한데
뾰족뾰족 새파란 어린 보리싹
햇볕 쬐며 소곤소곤 의논이지요
닥쳐오는 겨울을 추운 겨울을
그 어떻게 견딜까 이겨 나갈까?
까마귀도 밭고랑에 모여 앉아서
서로 같이 근심스레 의논이지요
* 어젯밤 손님
사랑방 문 앞에
낯선 구두
엄마 엄마 어젯밤
누가 왔수
밤늦도록 떠들썩
웃음소리가
잠결에 자꾸만
들려 오데
어젯밤 꿈같이
오신 손님
너는 너는 누군지
모를 거야
너 낳던 해 똑 한번
다녀 가신
아빠의 젤 친한
동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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