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진촌요(耽津村謠)] 15수
【제1수】
누리령 잿마루에 바위가 우뚝한데 / 樓犁嶺上石漸漸
길손이 눈물 뿌려 사시사철 젖어 있다 / 長得行人淚灑沾
월남을 향하여 월출산을 보지 마소 / 莫向月南瞻月出
봉마다 모두가 도봉산 모양이라네 / 峯峯都似道峯尖
【제2수】
동백나무 잎들은 얼어도 무성하고 / 山茶接葉泠童童
눈 속에 꽃이 피면 붉기가 학 이마 같아 / 雪裏花開鶴頂紅
갑인년 어느 날에 소금비가 내린 후로 / 一自甲寅鹽雨後
유하나무 감귤나무도 모두 말라 없어졌다네 / 朱欒黃柚盡枯叢
【제3수】
바닷가 왕대나무 키가 커서 백 자러니 / 海岸篔簹百尺高
지금은 낚싯배 상앗대로도 못 쓴다네 / 如今不中釣船篙
정원지기가 날마다 새 대를 가꾸어서 / 園丁日日培新笋
죽력 내내 권문세가에 바치기 때문이야 / 留作朱門竹瀝膏
【제4수】
성벽은 다 무너져 언덕바지 설렁한데 / 崩城敗壁枕寒丘
해가 지면 징소리만 주춧돌을 울린다네 / 鐃吹黃昏古礎頭
여러 섬에 나무들을 해마다 베어만 내지 / 諸島年年空斫木
청조루를 중건하는 사람은 통 없다네 / 無人重建聽潮樓
【제5수】
무논에 바람 불면 보리물결 장관이고 / 水田風起麥波長
보리타작 할 무렵에 모를 게다 꽂는다 / 麥上場時稻揷秧
배추는 눈 속에서 새로 잎이 파랗고 / 菘菜雪天新葉綠
병아리는 섣달에 솜털이 노랗다네 / 鷄雛蜡月嫩毛黃
【제6수】
석제원 북쪽에는 갈림길이 하 많아서 / 石梯院北路多歧
예부터 낭자들이 이별하는 곳이라네 / 終古娘娘此別離
한도 많은 문 앞의 수양버들 나무들은 / 恨殺門前楊柳樹
그 통에 다 꺾이고 남은 가지 몇 개 없어 / 炎霜摧折少餘枝
【제7수】
눈처럼 새하얀 새로 짜낸 무명베를 / 棉布新治雪樣鮮
이방에 낼 돈이라고 졸개가 와 뺏는구나 / 黃頭來博吏房錢
누전의 조세를 성화같이 독촉하여 / 漏田督稅如星火
삼월하고 중순이면 세 실은 배를 띄운다네 / 三月中旬道發船
【제8수】
완주의 황옻칠은 맑기가 유리 같아 / 莞洲黃漆瀅琉璃
그 나무가 진기한 것 천하가 다 알고 있지 / 天下皆聞此樹奇
작년에 성상께서 세액을 견감했더니 / 聖旨前年蠲貢額
봄바람에 밑둥에서 가지가 또 났다네 / 春風髡蘖又生枝
【제9수】
오만족 총각인지 머리털은 더부룩한데 / 烏蠻總角髮如雲
써내는 글씨 보니 중국 문자 아니로세 / 寫出三倉法外文
자바섬이 아니면 루손섬에서 왔으렷다 / 不是瓜哇應呂宋
장미빛 옥합에서 야릇한 향내 풍기네 / 薔薇玉盒發奇芬
【제10수】
백련사 누대 앞에 둥그렇게 비친 물결 / 蓮寺樓前水一規
봄이면 눈 같은 조수 문중방까지 오른다네 / 春潮如雪上門楣
유명한 절 다해봐야 두륜사가 으뜸이지 / 名藍總隷頭輪寺
서산대사 공적 기린 어제비가 있으니까 / 爲有西山御製碑
【제11수】
시골 애들 습자법이 어찌 그리 엉망인지 / 村童書法苦支離
점획과파 모두가 낱낱이 비뚤어져 / 點畫戈波箇箇欹
글씨방이 옛날에 신지도에 열려 있어 / 筆苑舊開新智島
아전들 모두가 이광사에게 배웠었는데 / 掾房皆祖李匡師
【제12수】
가시밭길 어느 때나 앞길이 트일는지 / 荊棘何年一路開
누른 띠밭 참대나무 주릿대 비슷하네 / 黃茅苦竹似珠雷
형방의 아전들이 소란 떠는 것이 / 形房小吏傳呼急
서울에서 누가 또 귀양을 왔군 그래 / 知是京城謫客來
【제13수】
삼월이면 송지에 말시장이 열리는데 / 三月松池馬市開
오백 푼만 집어주면 천재마를 고르게 되지 / 一駒五百揀天才
흰말총 체라던지 검은말총 갓이랑은 / 白騣籮子烏騣帽
그 모두가 한라산 목장에서 온 거라오 / 都自拏山牧裏來
【제14수】
전복이야 옛날부터 점대에서도 즐겼지만 / 自古漸臺嗜鰒魚
동백기름이 창자 훑어낸다는 것 헛말이 아니로세 / 山茶濯䐈語非虛
성 안의 아전들 들창문 안에는 / 城中小吏房櫳內
규장각 학사들의 서찰이 다 꽂혔네 / 徧挿奎瀛學士書
【제15수】
도독 영문 둔 지가 이백 년이 되었는데 / 都督開營二百年
부두에는 왜놈 배를 다시 매지 못했었지 / 皐夷不復繫倭船
진린의 사당 속엔 봄풀이 우북한데 / 陳璘廟裏生春草
아낙들이 돌을 던져 아들 점지 해달란다네 / 漁女時投乞子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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