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새 길을 가기 위해 모든 길을 멈추자 - 반칠환

효림♡ 2009. 6. 22. 08:12

* 새 길을 가기 위해 모든 길을 멈추자 - 반칠환 

한해의 노을이 내리는 저녁 강가에서
발을 씻는 사람들아
그 여름의 뙤약볕과 큰물과
바람을 모두 견뎠느냐
휩쓸고 몰아친 그 길
무릎걸음으로 걸어온 이들 한두 사람뿐이랴

한해의 노을이 내리는 저녁 강가에서
이마를 훔치는 사람들아
올해도 세상의 한쪽에 빛이 드는 동안
세상의 다른 쪽에는 그늘이 드리웠더냐
여기서 벚꽃이 피는 동안, 저기 목숨 지는 소리 들었느냐
어떤 이는 사랑을 잃고 울며, 어떤 이는 사람을 잃고 울더냐

한해의 노을이 내리는 저녁 강가에서 
땀을 닦는 사람들아
그 더운 땀방울로 하여 
어떤 이는 열매를 얻고
어떤 이는 줄기를 얻었지만  
어떤 이는 그저 땀방울뿐이더냐

한해의 노을이 내리는 저녁 강가에서
눈시울이 붉은 사람들아
느리게 이울고 있는 태양의 어깨를 보았느냐
세상을 다 비춘 다음
제 동공에 넘치는 눈물로
저를 씻는 것을 보았느냐

한해의 노을이 내리는 강가에서
돌아보는 사람들아
올해도 잠간의 평화와 긴 불화가 깃들었더냐
그러나 살아서 평화, 살아서 불화
 저 강물들은 어떤 평화에도 오래 쉬지 않고
어떤 불화에도 저를 다 내어주지는 않나니

한해의 노을을 밟고 돌아오는 사람들아
내일은 또 새가 울고, 꽃들은 피리라
비바람 몰아치고 파도는 높으리라
그러나 살아서 꽃, 살아서 파도
우리 모두 오늘에 온 것처럼 내일에 또 닿을 것이니
사람들이여, 새길을 가기 위해 오늘 모든 길을 멈추자

'좋아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찔레꽃 - 송찬호  (0) 2009.06.24
지옥에 - 지옥 1~3 - 김지하  (0) 2009.06.24
은행나무 부부 - 반칠환  (0) 2009.06.22
냄비보살 마하살 - 반칠환  (0) 2009.06.22
[스크랩] 섬초롱꽃 위로 빗방울이  (0) 2009.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