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박두진 시 모음

효림♡ 2009. 7. 22. 08:41

* 하늘 - 박두진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론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내 마음이 익는다. *

* 박두진시집[예레마야의 노래]-창비,2003

 

* 도봉(道峯)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긴 곳
홀로 앉은
가을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 올 뿐

산 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


* 해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휠훨휠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 자리 앉아
위어이 위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

*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민음사 

 

* 7월의 편지

7월의 태양에서는 사자새끼 냄새가 난다

7월의 태양에서는 장미꽃 냄새가 난다

 

그 태양을 쟁반만큼 씩

목에다 따다가 걸고 싶다

그 수레에 초원을 달리며

심장을 싱싱히 그슬리고 싶다

 

그리고 바람

바다가 밀며 오는

소금 냄새의 깃발, 콩밭 냄새의 깃발

아스팔트 냄새의, 그 잉크빛 냄새의

바람에 펄럭이는 절규......

 

7월의 바다의 저 출렁거리는 파면(波面)

새파랗고 싱그러운

아침의 해안선의

조국의 포옹

 

7월의 바다에서는

내일의 소년들의 축제 소리가 온다

내일의 소녀들의 꽃비둘기 날리는 소리가 온다 

 

* 마법(魔法)의 새
아직도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
너는 하늘에서 내려온
몇 번만 날개 치면 산골짝의 꽃
몇 번만 날개 치면 먼 나라 공주로

물에서 올라올 땐 푸르디 푸른 물의 새
바람에서 빚어질 땐 희디 하얀 바람의 새
불에서 일어날 땐 붉디 붉은 불의 새로
아침에서 밤 밤에서 꿈에까지
내 영혼의 안과 밖 가슴 속 갈피 갈피를
포릉대는 새여

어느 때는 여왕으로 절대자로 군림하고
어느 때는 품에 안겨 소녀로 되어 흐느끼는
돌아설 땐 찬바람
빙벽 속에 화석하며 끼들끼들 운다

너는 날카로운 부리로
내 심장의 뜨거움을 찍어다가 벌판에 꽃 뿌리고
내가 싫어하는 짐승 싫어하는 뱀들의
그것의 코빼기를 발톱으로 덮쳐
뚝뚝 듣는 피를 물고 되돌아올 때도 있다

너는
홀로 쫓겨 숲에 우는 어린 왕자의 말이다가
밤마다 달빛 섬에 홀로 우는 학이다가
오색 훨훨 무지개 속 구름 속의 천사이다가
돌로 치는 군중 속의 피 흐르는 창녀이다가
한 번 맡으면 쓰러지는 독한 꽃의 향기이다가
새여

느닷없이 얼키설키 영혼을 와서 어지럽혀
나도 너를 알 수 없고 너도 나를 알 수 없게
눈으로 서로 보면 눈이
넋으로 서로 보면 넋이
타면서 서로 아파 깊게 깊게 앓는

서로 오래 영혼끼리 꽃으로 서서 우는
서로 찾아 하늘 날며 종일을 울어예는
어쩔까 아 징징대며 젖어오는 울음
아직도 너를 나는 사랑하고 있다

 

* 별 밭에 누워
바람에 쓸려가는 밤하늘 구름 사이
저렇게도 파릇한 별들의 뿌림이여
누워서 반듯이 바라보는
내 바로 가슴 내 바로 심장 바로 눈동자에 맞닿는
너무 맑고 초롱한 그 중 하나 별이여
그 삼빡이는 물기어림
가만히 누워서 바라보려 하지만
무심하게 혼자 누워 바라만 보려 하지만
오래오래 잊어버렸던 어린적의 옛날
소년쩍 그 먼 별들의 되살아옴이여
가만히 누워서 바라보고 있으면
글썽거려 가슴에 와 솟구치는 시름
외로움일지 서러움일지 분간없는 시름
죽음일지 이별일지 알 수 없는 시름
쓸쓸함도 몸부림도 흐느낌도 채 아닌
가장 안의 다시 솟는 가슴 맑음이어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울고 싶음이어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소리지름이어

 

* 신약(新約)

만(萬)년 뒤에도 억(億)년 뒤에도
우린 그때 그렇게 있을 것이라 한다.
모두는 끝나고
바다와 하늘뿐인
뙤약볕 사막벌의 하얀 뼈의 너
희디하얀 뼈로 나도 너의 곁에 누워
사랑해, 사랑해,
서로 오랜 하늘 두고 맹서해온 말
그 가슴의 말 되풀이해

파도소리에 씻으며
영겁을 나란하게 바닷가에 살아
우린 그때 그렇게 있을 것이라 한다. *

* 돌아오는 길 

비비새가 혼자서

앉아 있었다

 

마을에서도

숲에서도

멀리 떨어진

논벌로 지나간

전봇줄 위에

 

혼자서 동그마니

앉아 있었다

 

한참을 걸어오다

뒤돌아봐도

그때까지 혼자서

앉아 있었다

 

* 박두진(朴斗鎭)시인

-1916~1998 경기 안성 사람

-1939년 [문장]시가 추천, 예술원상(1976)·인촌상(1988)·지용문학상(1989) 등을 수상

-1946년부터 박목월,조지훈등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 -[박두진문학전집][거미의 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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