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김용택 시 모음 4

효림♡ 2009. 8. 11. 08:15

* 봄날은 간다 -진달래  - 김용택   

염병헌다 시방, 부끄럽지도 않냐 다 큰 것이 살을 다 내놓고 훤헌 대낮에 낮잠을 자다니

연분홍 살빛으로 뒤척이는 저 산골짜기

어지러워라 환장허것네 

저 산 아래 내가 쓰러져불겄다 시방 * 

 

* 봄날은 간다 -찔레꽃

내가 미쳤지 처음으로 사내 욕심이 났니라

사내 손목을 잡아끌고

초저녁

이슬 달린 풋보릿잎을 파랗게 쓰러뜨렸니라

둥근 달을 보았느니라

달빛 아래 그놈의 찔레꽃, 그 흰빛 때문이었니라 * 


* 봄날은 간다 -산나리

인자 부끄럴 것이 없니라

쓴내 단내 다 맛보았다.  

그러나 때로 사내의 따뜻한 살내가 그리워

산나리꽃처럼 이렇게 새빨간 입술도 칠하고

손톱도 청소해서 붉은 매니큐어도 칠했니라

말마라

그 세월

덧없다 * 

 

* 봄날은 간다 -서리  

꽃도 잎도 다 졌니라 실가지 끝마다 하얗게 서리꽃은 피었다마는,  

내몸은 시방 시리고 춥다 겁나게 춥다 내 생에 봄날은 다 갔니라 * 

 

그래서 당신
잎이 필 때 사랑했네//
바람 불 때 사랑했네//
물들 때 사랑했네//
빈 가지, 언 손으로//
사랑을 찾아//
추운 허공을 헤맸네//
내가 죽을 때까지//
강가에 나무, 그래서 당신 *

 

* 매화

매화꽃이 피면// 

그대 오신다고 하기에//

매화더러 피지 마라고 했어요//

그냥, 지금처럼//

피우려고만 하라구요 *

 

* 화무십일홍

앞산

산벚꽃

다 졌네

화무십일홍, 우리네 삶 또한 저러하지요

저런 줄 알면서도 우리들은 이럽니다

다 사람 일이지요

때로는 오래된 산길을 홀로 가는 것 같은 날이 있답니다

보고 잡네요

문득

고개 들어

꽃,

다 졌네 *

 

* 적막  

꽃 폈다

능소화 진다

한낮 불볕 속

깊이 살을 파는

생살의 뜨거움

피가 따라 흐른다

우지 마라

말을 죽이고

나를 죽이고

도도해져서

산처럼 서다 * 

 

* 달  

그래, 알았어

그래, 그럴게

나도.....응

그래 * 

 

* 남쪽  

외로움이 쇠어//

지붕에 흰 서리 내리고//

매화는 피데//

봉창 달빛에//

모로 눕는 된소리 들린다//

방바닥에 떨어진 흰 머리칼처럼//

강물이 팽팽하게 휘어지는구나//

끝까지 간 놈이//

일찍 꽃이 되어 돌아온다 * 

 

* 만화방창  

내 안//

어느 곳에//

그토록 뜨겁고 찬란한 불덩이가 숨어 있었던가요//

한 생을 피우지 못하고 캄캄하던 내 꽃봉오리.//

꽃잎 한 장까지 화알짝 다 피워졌답니다//

밤//

곳//

그대

앞에서 * 

 

* 방창(方暢)

산벚꽃 흐드러진//
저 산에 들어가 꼭꼭 숨어//
한 살림 차려 미치게 살다가//
푸르름 다 가고 빈 삭정이 되면//
하얀 눈 되어//
그 산 위에 흩날리고 싶었네 *

 

* 그래요

꽃이 피면 뭐 헌답뎌 

꽃이 지면 또 어쩐답뎌

꽃이 지 혼자 폈다가

진 사이

나는 그 사이를 오가며 살았다오

 

꽃 피고 지는 일 다 다지금 일이지요

겁나게 질고 진

봄날이었구만요

산이 무너지고

디딘 땅이 캄캄하게 푹 꺼지는 줄만 알았지요  

그래요

봄에만, 죄가 꽃이 되지요

누구든 다 그렇게

버릴 수 없는

빈 꽃가지 하나씩

마음에 꽂아두고

 

그래도 이렇게 또 오는 봄

가는 봄을 살지요 * 

 

* 생생(生生)  

흰 꽃 곁을 그냥 지나쳤네

한참을 가다 생각하니

매화였다네

돌아가서 볼까 하다

그냥 가네

 

너는

지금도 거기

생생하게 피어 있을지니

내 생의 한때

환한 흔적이로다 *

 

* 강  

폭설 내린 아침, 밤새워 갈아둔 먹 묻은 붓을 들고

누가 저 골짜기를 단숨에 휘돌아갔느냐 강에서 김이 다 나는구나 *

 

* 무심헌 세월

세월이 참 징해야

은제 여름이 간지 가을이 온지 모르게 가고 와불제잉

금세 또 손발 땡땡 얼어불 시한이 와불것제

아이고 날이 가는 것이 무섭다 무서워

어머니가 단풍 든 고운 앞산 보고 허신 말씀이다 *

 

* 환장
  그대랑 나랑 단풍 물든 고운 단풍나무 아래 앉아 놀다가
한줄기 바람에 날려 흐르는 물에 떨어져 멀리멀리 흘러가버리든가

그대랑 나랑 단풍 물든 고운 단풍나무 아래 오래오래 앉아 놀다가

산에 잎 다 지고 나면 늦가을 햇살 받아 바삭바삭 바스라지든가 
   그도 저도 아니면 

   우리 둘이 똑같이 물들어 
   이 세상 어딘가에 숨어버리든가 *

 

* 봄비

비가 오네요//
봄비지요//
땅이 젖고//
산이 젖고//
나무들이 젖고//
나는 그대에게 젖습니다//
앞강에 물고기들 오르는 소리에//
문득 새벽잠이 깨었습니다 *

 

* 비가 내리네
비를 오래 바라보고 서 있는 여인을 보았습니다
푸른 비였습니다
산을 오래 바라보고 서 있는 여인을 보았습니다
푸른 산이었습니다
나무를 오래 바라보고 서 있는 여인을 보았습니다
푸른나무였습니다
흐르는 물을 오래오래 보고  있는 여인을 보았습니다
푸른 강이었습니다
달빛 아래 오래 서 있는 여인을 보았습니다
푸른 달빛이었습니다
나는 그 여인을 오래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에서 새잎이 돋아났습니다
사랑의 푸른 새잎이었습니다 *

 

그리움
바람이 불면


내 가슴속에서는 풀피리 소리가 납니다 *

 

* 사랑
밤길을 달리는데
자동차 불빛 속으로 벌레들이 날아와 유리창에 부딪쳐 죽는다

필사적이다 *

 

* 마른 장작  

비 올랑가

비오고 나먼 단풍은 더 고울 턴디

산은 내맘같이 바작바작 달아오를 턴디

큰일났네

내 맘 같아서는 시방 차라리 얼릉 잎 다 져부렀으먼 꼭 좋것는디

그래야 네 맘도 내 맘도 진정될 턴디

시방 저 단풍 보고는

가만히는 못 있것는디

아. 이 맘이 시방 내 맘이 아니여!

시방 이 맘이 내 맘이 아니랑께!

거시기 뭐시냐

저 단풍나무 아래

나도 오만 가지 색으로 물들어갖고는

그리갖고는 그냥 뭐시냐 거시기 그리갖고는 그냥

확 타불고 싶당게

너를 생각하는 내 맘은 시방 짧은 가을빛에 바짝 마른 장작개비 같당게

나는 시방 바짝 마른 장작이여! 장작 *

 

* 삶  

내가 가는 길에

눈길 가 닿을 티끌 하나

겁먹은 삭정이 하나

두지 마라 *

 

* 선암사  

그대 보고 싶은 마음 변할까봐 내 마음 선암사에 두고 왔지요//

오래된 돌담에 기대선 매화나무 매화꽃이 피면 보라고// 

그게 내 마음이라고// 

붉은 그 꽃 그림자가// 

죄도 많은 내 마음이라고// 

두고만 보라고// 

두고만 보라고 *

 

* 김용택시집[그래서 당신]-문학동네

'시인 詩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롱나무 시 모음  (0) 2009.08.26
황인숙 시 모음  (0) 2009.08.25
홍해리 시 모음  (0) 2009.07.31
이영광 시 모음  (0) 2009.07.30
김광규 시 모음  (0) 2009.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