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땅끝 시 모음

효림♡ 2009. 9. 11. 17:17

 

* 땅끝 - 고은 

땅끝에

왔습니다.

살아온 날들도

함께 왔습니다.

 

저녁

파도 소리에

동백꽃 집니다.

 

* 땅끝 - 고은 

해남 땅끝에 왔습니다

살아온 날들 

잘못 살아온 날들도 함께 왔습니다

 

천근의 회한 내버리고

여기 술 먹은 밤 파도소리에 먼저 온 누구의 이승이 혼자 떠 있습니다 *

* 고은시집[허공]-창비

 

* 땅 끝 - 나희덕

산너머 고운 노을을 보려고
그네를 힘차게 차고 올라 발을 굴렀지.
노을은 끝내 어둠에게 잡아먹혔지.
나를 태우고 날아가던 그넷줄이
오랫동안 삐걱삐걱 떨고 있었어.

 
어릴 때는 나비를 쫓듯
아름다움에 취해 땅끝을 찾아갔지.
그건 아마도 끝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그러나 살면서 몇 번은 땅끝에 서게도 되지.

파도가 끊임없이 땅을 먹어 들어오는 막바지에서 

이렇게 뒷걸음질치면서 말야.

 

살기 위해서는 이제 

뒷걸음질만이 허락된 것이라고.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곳 

찾아 나선 것도 아니었지만

 

끝내 발 디디며 서 있는 땅의 끝,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이 

땅 끝은 늘 젖어있다는 것이 

그걸 보려고

또 몇 번은 여기에 이르리라는 것이 *

* 나희덕시집[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창비

 

* 땅끝 마을에 서서 - 오세영 
누가 일러
땅끝 마을이라 했던가 
끝의 끝은 다시
시작인 것을.....
내 오늘 땅끝 벼랑에 서서
먼 수평선을 바라보노니
천지의 시작이 여기 있구나 
삶의 덧 없음을
한탄치 말진저
낳고 죽음이 또한 이 같지 않던가 
내 죽으면
한 그루 푸른 소나무로 다시 태어나
땅끝 벼랑을 홀로 지키는
파수꾼이 되리라 

 

* 그 소, 애린 50 - 김지하

땅 끝에 서서

더는 갈 곳 없는 땅 끝에 서서

돌아갈 수 없는 막바지

새 되어서 날거나

고기 되어서 숨거나

바람이거나 구름이거나 귀신이거나간에

변하지 않고는 도리없는 땅 끝에

혼자 서서 부르는

불러 

내 속에서 차츰 크게 열리어

저 바다만큼

저 하늘만큼 열리다

이내 작은 한 덩이 검은 돌에 빛나는

한 오리 햇빛

애린

 

나 * 

 

* 땅의 사람들 14 - 남도행 - 고정희 

칠월 백중날 고향집 떠올리며

그리운 해남으로 달려가는 길

어머니 무덤 아래 노을 보러 가는 길

태풍 셀마 앨릭스 버넌 윈이 지난 길

홍수가 휩쓸고 수마가 할퀸 길

삼천리 땅 끝, 적막한 물보라

남쪽으로 남쪽으로 마음을 주다가

문득 두 손 모아 절하고 싶어라

호남평야 지나며 절하고 싶어라

벼포기 싱싱하게 흔들리는 거

논밭에 엎드린 아버지 힘줄 같아서

망초꽃 망연하게 피어 있는 거

고향 산천 서성이는 어머니 잔정 같아서

무등산 담백하게 솟아 있는 거

재두루미 겅중겅중 걸어가는 거

백양나무 눈부시게 반짝이는 거

오늘은 예삿일 같지 않아서

그림 같은 산과 들에 절하고 싶어라

무릎 꿇고 남도땅에 입맞추고 싶어라 *

* 고정희시집 [지리산의 봄]-문학과지성사

 

* 땅끝에 서면

  몬드리안의 바다가 보인다 - 이흔복  

    내 그림자마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헤매는 동안 생

은 다만  낯선 그림처럼  오고 가더니 낙엽이 무게를 더해 주

는 가을 햇살에 누렇게 물들었던 들판도 노적가리만 남긴 채

황량하다. 잠속의 꿈속의 사랑의 끝은 늘 통속적이거늘 너만

은 나를  땅끝까지 데리고 간다. 그리하여 나는 마침내, 드디

어, 몬드리안의 바다에 왔다.  땅끝은  북위 34도 17분 38초,

은빛 남해바다,  그렇구나, 더는 갈 수 없는... 갈수 없는, 그

리운... 그리운,  진도  완도 노화도의 서풍과 함께 일몰이면

나는  또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하리라. 사랑은 끝이 아닌 시

작이라고,  우리는  그  흐름에 따라 둘이 함께 먼 길을 가는

거라고, 어디에서든 사랑의 중심에 우리가 있는 거라고? 그

러나 명실공히 어디에도 사랑은 없다, 없다.

 

ㅡ그래도 나는 사랑을 믿는다 *

 

* 해남길, 저녁 - 이문재 
먼저 그대가 땅끝에 가자 했다
가면, 저녁은 더 어둔 저녁을 기다리고
바다는 인조견 잘 다려놓은 것으로 넓으리라고
거기, 늦은 항구 찾는 선박 두엇 있어
지나간 불륜처럼 인조견을 가늘게 찢으리라고
땅끝까지 그대, 그래서인지 내려가자 하였다

 

그대는 여기가 땅끝이라 한다, 저녁놀빛
물려놓는 바다의 남녘은 은도금 두꺼운
수면 위로 왼갖 소리를 또르르 또르르
굴러다니게 한다, 발 아래 뱃소리 가르릉거리고
앞섬들 따끔따끔 불을 켜 대고, 이름 부르듯
먼 데 이름을 부르듯 뒷산숲 뻐꾸기 운다
그대 옆의 나는 이 저녁의 끄트막이 망연하고

또 자실해진다, 그래, 모든 끝이 이토록
자명하다면야, 끝의 모든 것이 이 땅의 끝
벼랑에서처럼 단순한 투신이라면야.....


나는 이마를 돌려 동쪽 하늘이나 바라다 보는데
실루엣을 단단하게 잠근 그대는 이 땅끝에 와서
어떤 맨처음을 궁리하는가 보다, 참 그러고 보니
그대는 아직 어려서, 마구 젊기만 해서
이렇게 후욱ㅡ 비린내 나는 끝의 비루를
속수한 것들의 무책을 모르겠구나
모르겠는 것이겠구나 *

 

* 땅끝마을 1 - 신광철 

신은 따뜻하게 살라고 온혈을 주었는데,
그 가슴을 식히는 것은 사람이더군
불끈불끈 심장을 움켜쥐었다 풀어놓는 것은
한시도 마음 놓지 말고 살라는 뜻이었지
육지가 끝나는 곳에는 새가 산다네
때론 바다를 버리고 때론 육지를 버리고
희망 하나 달랑 물고 새가 산다네
바다는 육지를 그리워하며 파도로 보채고
육지는 바다를 그리워하며
맨살을 내어놓는 마을이름은
땅끝마을이라네
더 갈 곳 없어도 등대는 반짝이고
사람들은 찾아온다네
들바람에 꽃이 핀대도 꽃이 진대도
사람 사는 마을에
웃음이 피는 것은
집집마다 군불 때는
아궁이가 있기 때문이라네
땅끝마을에서는 가장 절정일 때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죽으러 왔다가
허무만 내려놓고 돌아간다네 *
* 신광철시집[늑대의 사랑]-문학의 전당
 

 

* 땅끝에서 - 박흥식   

오랜 이 사람을 두고 헤어날 수 없는 거리로 운다

 

가는 게

오는 것보다 

 

남으리란, 지척 슬픈 말이리라 

 

뒤뜰 가득 핀 수국이

네 종아리에 무심히 지는 걸 나는 그때 두고서 왔다 

* 박흥식 시집[아흐레 민박집]-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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