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이병초 시 모음

효림♡ 2009. 10. 29. 08:08

* 미꾸라지 - 이병초  

찌그러진 주전자 허리에 차고

미꾸라지를 캔다 벼 벤 밑동을 파면

거기 요동치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아찔함을 건져 주전자에 담는다

확에 갈아 체에 밭치기 전 요것들을

고무 함지에 쏟아 놓고 소금 뿌려 썩썩 문지를 때

죽을둥살둥 손에 감기던 차진 살맛이

목구멍으로 꼴깍 넘어간다 땀에 번들거리며

고닥새 해 넘어갈 틴디 집에는 언제 가냐고

고시랑고시랑 따라붙던 가시내의 손목도

주전자 속 미꾸라지같이 매끄러워서

차진 살맛이 손끝에 아찔아찔 물린다
억새밭 빠져나온 냇내가 저녁놀처럼 깔린다 

 

* 송사리떼  

  산 그림자 비친 못물 속에 벚꽃이 환하오

  연습장에 끼적거린 글씨들처럼 갈피 못 잡는 송사리떼가 흰 꽃잎에 살짝 물린 연분홍에 홀려 몸띵이째 들이받소 냅다 들이받고

이리저리 휘갈겨지는 몸짓들을 못물 속 뜬 구름이 감싸주오

  송사리들은 꽃잎 겹쳐진 때깔 속에 들어가 씨를 삐고 싶은지, 오죽잖은 글씨 휘갈기며 몸띵이를  내뺐다간 꽃잎에 덴 듯 휘까닥

배를 뒤집곤 하오

  송사리들에 홀려 겨우내 기역자로 휘어졌던 속이 펴지는 중이오 *

 

* 봄밤  
  공장에서 일 끝낸 형들, 누님들이 둘씩 셋씩 짝을 지어 학산 뽕나무밭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창수형이 느닷없이 앞에다 대고 "야 이년덜아, 내 고구마 좀 쪄도라!"하고 고함을 질러댑니다 깔깔대던 누님들의 웃음소리가 딱 그칩니다 옥근이 형 민석이 형도 "내껏도 쪄도라, 내껏도 좀 쪄도라!" 킬킬대고 그러거나 말거나 누님들은 다시 깔깔대기 시작 합니다


  "야 이 호박씨덜아, 내고구마 좀 쪄도랑께!" 금방 쫓아갈 듯이 창수 형이 다시 목가래톳을 세우며 우두두두두 발걸음 빨라지는 소리를 냅니다 또동또동한 누님 하나가 홱 돌아서서 "니미 솥으다 쪄라, 니미 솥으다 쪄라" 이러고는 까르르 저만치 달아납니다 초저녁 별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반짝반짝 반짝이고만 있었습니다 *

    

* 추석

굵은 철사로 테를 동여맨 떡시루
어매는 무를 둥글납작하게 썰어 시루구멍을 막는다
쌀가루 한 둘금 그 위에 호박고지를 깔고
쌀가루 한 둘금 그 위에 통팥 뿌리고  
쌀가루 한 둘금 그 위에 낸내 묻은 감 껍질 구겨넣고  
쌀가루 한 둘금 그 위에  
자식들 추석옷도 못 사준 속 썩는 쑥 냄새 고르고  
추석 장만한다고 며칠째 진이 빠진 어매  
큰집 정짓문께 얼쩡거린다고 부지깽이 내두르던 어매
목 당그래질 해대는 것이 무지개떡 쇠머리찰떡만은 아닌지
쌀가루 이겨 붙인 시루뽄이 자꾸 떨어지는지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어매는
부지깽이 만지작거리며 꾸벅꾸벅 존다

 

* 달빛 1

눈앞에서 막차를 놓치고 걸어간다
빈 도시락이 달그락 거린다
용산다리 매화동을 지나 갈따구들이
밤이슬 젖은 바짓가랭이에 채인다
고무줄 새총을 들고 누가 나를 겨눈다
깜짝 놀라 숨어서 보니 어린 소나무다
놀란 가슴을 털어내며 깔깔대는 달빛
털보영감네 대밭에도 달빛이 번뜩인다
발길에 채이는 달빛이
이슬처럼 부서지며 튕겨나간다

 

* 문병
울 엄니 순창서 시집오시어
일만 벌였다하면 꼬라박는 아버지 꼴 보시고
다섯 새끼 가르치시느라, 봄이면
묵은 김장독 헐어 문전문전 다리품 파셨네
중앙시장 맨바닥에서 무더기무더기 채소 파셨네
호각을 불며 순경이 들이닥치고
늘어놓은 오이 가지 깻잎들 순경 발길질에
사정없이 걷어차이고, 왜 이러냐
사람 먹는 것을 왜 걷어차냐
당신은 새끼도 안 키우냐 악 쓰시던 울 엄니
집만은 안 된다고 이 땅만은 안 된다고
플라스틱 스레빠 한 켤레로 해를 넘기도 또 넘겼어도
쓰레빠만 닳았던 울 엄니 삶의 평坪수
연탄화덕에 코 박고 싶다고 띄엄띄엄 애간장 녹으신
보리쌀 두어 됫박도 무섭게 알고 세월 건너오신 울 엄니
풍 맞으시어 병상에 누워계시네
못 믿을 큰자식 손을 붙잡고 비스듬히 웃으시네

 

* -씨알들  

개혀?

저짝으서는 모야 윷이야

미친년 널뛰듯 허는디, 일단 개 잡고

삼년 굶은 과부 배탄디끼 꼬시게 한 번 더 놀아?

이 염천에, 뜨건 방에서 애기 날 것도 아닌디

요녀르 깍쟁이가 말 쓰는 놈 똥꼬녁겉이

드럽게 드러붙어쌓네, 또 낙허먼 안 되는디

들이당창 두 판이나 잃었는디

나헌티 삼천 원씩 쑤꾸 들어간 놈덜 눙깔이

디진 개눙깔맹이로 당장 튀어나오게 생겼는디

디질라먼 삼팔선을 못 넘것냐고

호랭이 후장을 못 묵겄냐고

좆심으로 안 되먼 혓심으로 붙어보라고

자껏덜이 시방 땅 파고 나를 파묻어불 기센디

깍쟁이야, 개다!

 

멱살잡이로 뒤죽박죽 화해술로

거무죽죽 늘어진 세월의 목을 축이며

돈도 빽도 웂는 것이 목숨은 좆 빨러 붙였냐면서도

생각을 암만 고쳐묵어도 술허고 담배, 여자는

못 끊것다잉? 어이, 군산떡 여그 새우젓 안 줘?

새우젓 없으먼 아무 젖이나 도랑께!

왼쪽 눈을 찡긋대면서

얼토당토 않을 말들을 천연덕스럽게 오독오독 씹어 삼킬,

굵은 철사로 동여맨 떡시루 같은 씨알들!  

 

* 황방산의 달
1. 바람이 불 때마다
아카시아꽃이 눈처럼 쏟아졌다
작은 꽃들이 하얗게
잡목으로 찌든 숲에
내 발길에 내려 앉았다
어디였을까
참새알을 꺼내러 갔다가
구렁이 밟고 소스라치던 길
소스라치던 유년을 매달고
죽자사자 내빼던 거기
친구도 참새알도 없는
어린 콩잎만 바람타던 거기
기계충 먹은 까까머리 들이밀며
되돌아갈 수 없는 행랑을 꾸렸던
저기 황방산 기슭

너 뭐하러 왔냐고
스님이 물었다 나는
발가락만 꼼지락거렸다
할머니 만나러 왔냐
절밥 먹으러 왔냐
오늘은 굿도 없는 날인디
여그는 왜 왔냐
자꾸 내 고추를 만지려드는
스님은 껄껄대고 웃고
오갈이 팍 든 가랭이를 나는
어쩌지 못했다 여그가
어딘 중이나 알고 왔냐
묵은 절이요 아니다
서고사요 아니다 아니다

묵은 절도 서고사도 아닌
묵은 기와집 한 채
너 뭐하러 왔냐고
다시 묻고 있다

2. 일제 때 우리나라 지도를 흉내내어
파들어 갔다가, 포항 쪽에서 틀렸다던가
부산 쪽에서 틀렸다던가
그래서 이름이 틀못인 물너울에
오종종 들바람이 쏘다닌다
성록이 형이 내 허벅지만한
잉어를 끌어냈고, 낚시꾼들 밀밥이
날마다 허천났다지만
황토 몇 바작을 쏟아놨어도
몇 날 며칠 맨탕이었던 틀못
곗돈 떼먹고 누가 어디로 도망갔고
누가 누구랑 붙어먹었고
노름빛에 넘어간 건너물 밭뙈기며
목매 죽은 사연까지
훤히 알고 있는 틀못
어디서 틀렸는지도 모르고
맨살 드러난 논밭뙈기로 번져오는
물비늘마다
물컹물컹 하늘이 밟힌다

3. 보리밥티 묻은 감자밥 먹고
치약도 짜먹고 놀았던 집
윗목에 새는 빗물을 벌받고 서서
자꾸만 오줌이 마렵던 집
텃밭에 가지가 니자지내자지 열리고
호박꽃이 비를 맞던 집, 똥깐에
똥이 났던가 두꺼비가 났던가
비만 오면 왼 집안이 축축하던
곰팡이집

헛간은 늘 어두웠다
둘둘 말린 멍석이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보리가마, 홀태, 비료푸대
채 담지 못한 감자들이
쪽창빛을 받아냈다
아버지 새 자전거 호꾸 부러뜨렸다고
솔직하게 안 털어놨다고
꾀벗기어 매맞고 이 헛간에
쾅 갇히어, 얼마나 지났을까
구렁이 감아놓은 것처럼 매맞은 살갗이
쓰리고 슬슬 가렵고 할 무렵
헛간은 어둡지 않았다
채 담지 못한 감자들이 하얗게
눈을 뜨고 나를 보았다
지붕마다 골목마다 펑펑펑
하얀 눈이 내려도 헛간에는
쥐발자욱이 어지럽다

4. 더위가 한풀 꺾였다
거기가 거기 같은 잡목숲을
땀 흘리며 오른다
수랑둘배미에 뒹구는 똥지게와
맨살 드러낸 밭뙈기가 보인다
소먹이고 피뽑고 들밥 먹던
텃논 미나리꽝 건너물 방죽밑이 여시미

참게가 있을까
우렁도 미꾸라지도 있을까
핑계삼아 나온 수랑둘배미
갈수록 묵는 논들이 많다
참게는커녕 송사리 한 마리 안 보이고
한겨울에도 고기 품어먹었던 수로에
음식찌꺼기가 떠다닌다
아홉마지기 발치에 매운탕집이 들어섰고
토지개발공사의 땅장사 끝난
전주시 제 2공단

빼빼마른 장딴지들이 보인다
할아버지 이빠진 숨소리가 들린다
도구통에 짓찧던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5.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 참 시원하다
저기가 공설운동장이고 전매청이고
고향에 살면서도 고향이 어떻게
변했는지 나는 모른다
새 건물이 엄청 들어섰다는 것만
알 뿐이다 눈앞에 우리 선산이
파헤쳐졌고 동철이네 살던 서곡도
몇 채 안 남았다
똥물고기가 팔둑만씩하다는 저 전주천
등 뒤는 돌아보지 말자
안 봐도 훤한 옥계동 틀못 뒤얼리

죽고살고 일해댄
저 논밭뙈기를 뒤돌아보지 말자
우린 깡치없인 못산다 세 손가락 남은
노규의 오른손에 장 지지고 소줏잔을 비우며
쓰레트 고기를 굽던 자리
야물야물 들불이 타오르던 자리
지금은 무슨 티끄락 같은 것들이 자꾸만
눈알을 찌르는 자리

뒤돌아보아도 소용없는
어디가 어딘 줄도 모르고 달이 뜨는
등질 수 없는 등 뒤로 돌아서기 위하여
황방산 오밤중에 뻐꾹새 운다

 

* 싸리꽃
잡초 무성한 밭뙈기 오목한 곳에
싸리꽃이 피어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수의처럼 하얀 꽃무더기에 햇살이
잠잠히 흩어진다 견딜 만한 아픔을
내린다는 하늘은 무심히 푸르고
찍어먹고 싶은 봄햇살 친친 휘감으며
눈을 뜨는 싸리꽃
더는 손꼽아 기다릴 사연도 없다는 듯이
밭두렁 쪽으로 쓸쓸히 바람타는 꽃
치성드리는 할머니 뒷모습 같은 꽃을
오목 가슴 쓸어내리며 바라본다

 

* 물개똥과 자전거

방귄 줄 알고 엉덩이에 힘을 팍 주니깐

와락 물개똥이 쏟아졌던 거라 순간적으로 바뀐

내 표정에 너 쌌지 짜식들이 입 까불러대며

방 밖으로 내쫓는 거라 별 수 없이 밖에 쫓겨나

팬티 갈아입으러 집에 가려는데 타고 왔던 자전거가

보이는 거라 옳지, 집에 얼른 가고 싶은 욕심에

자전거에 올라탔는데 이런, 물개똥을 싼 채로

안장에 앉을 수가 있나 엉거주춤 페달을 밟고 서서

깔짝깔짝 앞으로 노를 젓는데, 짜식들이

다 지켜보고 있었던 거라 배꼽잡고 뒹구는 거라

에라 잡것, 안장에 뭉개고 앉아버렸는데

짐받이에 눌려 휘어진 뒷바퀴가 나를 태우고

잘그락달그락 밑돌리는 거 같다는 거라 어쩔끄나

저러다 또 싸면 어쩔끄나 염병뗌병을 떨었던 거라  

 

* 골목  

흙담 밑을 쪼옥 따라서 채송화가 피었다

죽순 토막들이 껍질째 뒹군다

물지게 진 안짱다리들이

싸리울 뚫고 나온 돼지새끼들에게

뒤뚱거리고, 돈 좀 달라고 띵깡 부렸간디

니미 팔어서 주끄나! 하는 소리 쩡쩡 울리고

경숙이 누나 연애편지를 유님이 누나에게 줬다고

직사하게 욕 얻어먹었어도

아침이면 싸리비질 등살에 흙냄새가 새로웠다

명수 형이 누렁소 팔아먹고 무릎 끓고 용서 빌던 골목

발통기 피댓줄에 손목 바스라진 용남이 삼촌이

창백하게 들어서던 골목

 

젖은 짚 태우는 냄새 꽁보리밥 짓는 냄새

쇠죽 쓰는 냇내를 안쪽으로 끌어들이며 옷거티로

아랫거티로, 구판장으로, 앞시암으로,

덕호네 집 꼭대기로 탯줄같이 뻗어간 골목

똥개 한 마리가 짖으면 동네 똥개란 똥개는 다 깽깽거려서

발 디딜 틈이 없던, 그 통에 '전설 따라 삼천리'

유기현 목소리가 팍 꺾이던

저 잡녀르 것덜 된장 발라버리자고 입똥내 튀던 골목

된장 발라 버릴 것덜이 똥개덜 뿐이겄냐고

누가 또 없는 비료값 물리능갑다고

애먼 골마리나 추어 쌓던 골목

 

함 사시오! 악쓰고 떼쓰는 발밑에 흰 봉투 깔리고

갈목떡 땜시 사타구니가 가래톳 섰다는 형들이

우당탕탕 지게작대기에 쫓기고,

꽃상여가 사람들을 줄래줄래 물고나오던 골목

주 씨네 감꽃들이 주울똥말똥 떨어져 있던 골목

 

* 살구꽃 편지
미아리 반창코 보아라
시방 거그도 징허게 별일 없지야
스미끼리 성, 옥도정끼 성, 불광동에 풍선 성님도
잘 계시것지야 나는 물론허고 잘 있다
떼돈 벌어서 금의환향허고 싶었는디
고것이 홧병이 되어 가꼬 귀울림병 얻은 것 빼고넌
다 태평성대 무고허다  
디졌다 살아난 것은 예수허고 바둑알뿐이라고
디진 끗발 엔간히 조지라고 화투짝을 휙휙 천정에 꽂아붐서
쌀 이천 짝은 너끈할 판돈 싸들고 돌아서붐서
쐬주병 주둥이를 이빨로 깨물어 훅! 뱉어분 그 시절이
쪼깨 그립기는 허다
두 시간 만에 일억 날려불고도 잠이 오던 그 시절
공장도 공사판도 군대도 교도소도
저승 명부에조차 내 이름이 빠졌다던 그 환한 시절
반창코 너도 기억 허쟈?
끗발 안서불먼 마장동 도살장에 들이닥쳐
암소고 도야지고 잽히는 대로 칵 멱을 따불먼
대번에 콸콸콸 쏟아지던 피   
눙깔 하얗게 뒤집어 까고 쿨룩쿨룩 자껏이
밭은기침을 혀댈 때마다 쿨룩쿨룩 징허게 피를 쏟았제
벌다방 송이다방 문짝덜, 뚜대겨도 뚜대겨도
달광 안 뜨던 개패 쥔 문짝덜 개창 씹창을 냈었제
그러나 인자 착허게 살라고 노력헌다
쌀 둬 말이먼 한 달 조지는디 먼 걱정이
꼽사등이것냐, 워떤 하늘님이
시방까장 살아온 만큼을 또 살으라고 명부 들먹거리먼
금방 디지드라도 내 밥끄럭 엎어불 것인디
목숨의 똥창까장 토해불 것인디
먼 걱정이 구구절절 지붕을 이것냐
글고 반창코 너 말여
인자 내 발보고 자라발이다고 숭보지 마라잉
발가락덜이 엄지를 축으로 엇비슷헌 디다가 뭉툭헌 것은
내 뜻이 아녀, 참말로 인자
이 시상에 아조 없는 것맹이로 납작 엎디어서 살랑게
농사라야 머 멫 마지기 되것냐만 참회허는 맴으로 
돈만 보먼 환장된장허는 음전헌 것덜이
을매나 떵떵거림서 워디까장 개지랄 떠는지
워디서 폭삭 망허는지 똑똑히 지켜봄서
참회허는 맴으로 꼬깽이짐 질랑게

오널은 살구꽃이 폴폴 날링게 호맹이로 디엄자리 뒤적거려 몸띵이 빨간 그시랑들 깡통에 담을란다 이른 새옹개 나올지도 모릉게 얼금얼금헌 모기장베도 챙겨야 쓰것다 씨알이 예전만 못허드라만 그려도 틀못 아니냐? 괴기 안 잽히드라도 채비 애껴서 사먹었던 남부배차장 말좆빵을 추억험서 칸 반 낚싯대를 땡기마 폐 한쪽 띠어내붕게 벌쌔 숨이 차다만 후제 기별헐 때까장 성님덜 잘 모시고 건강혀야 쓴다 버드랑죽 꺼먹고무신 씀

  

* 곗날
참깨 베어낸 자리 오목하게 파서
삭달가지 불쏘시개 한 줌 깔고, 장작 쌓고
불을 댕긴다 검게 뭉클거리는 연기 다 빠져나가고
야울야울 이글거리는 잉걸불
그 위에 철망 걸고 도톰하게 썰어온 돼지목살을
굽는다 지글지글 기름방울 떨어질 때마다
불길 확 솟으며 낸내가 묻는 목살
마늘된장 찍는다 비계 많은 쪽만 골라먹는 놈은
입천장이나 데어라. 저만 오래 살겠다고
술담배 끊은 비겁한 놈은 똥꼬 대라고 조져라!
가을햇살에 심줄 튀어나오며 붉어진 목
바람 타는 수수모가지처럼 몸이 흔들린다
학교 갔다 돌아와 허둑거리며 솥뚜껑을 열면
부우웅 날아오르는 파리떼
파리가 죄 빨아먹은 붉은 수수알 깨금깨금 빼먹고 나면
입술이 소 혓바닥처럼 깔깔했지
토방에 뱉은 수수껍질 쓸며 눈앞이 흐려왔지
비틀거리는 친구의 귀밑께 뒷목께 히끗히끗
세월이 튼다 양글양글 여문 쥐밤 닷 되 따오겠다는 놈은
바위그늘에 잠들었다 성묘왔지 싶은 가을햇살이
상수리나무 잎사귀 핥아대며 그림자를 늘인다

 
* 눈 내리는 밤

제때 죽지 못한  슬픔처럼 숫제 알몽띵이로 펑펑펑 함박눈 쏟아진다

외등 낀 탱자나무울타리 위로, 짝발 짚고 선 지게 위로, 뒷바퀴 주저앉은 짐빠 위로, 우우웅컹!

문창을 때려 쌓는 개 짖는 소리 위로 펑펑펑펑 함박눈 쏟아진다 미치게 살고 싶었던 꿈자리들이

펑펑펑펑 쏟아진다 놋요강 놋대야 새로 들이고 자식보고 싶은 밤, 산도 들도 지붕도 길바닥도

평등하게 눈 덮일 눈부신 아침을 펑펑펑펑 출산하는 밤, 질긴 명줄이 다녀가는지 간혹 정짓문이 삐걱거린다 

 

* 이병초 시인

-1963년 전주 출생

-1998년 [시안]에 연작시 황반산의 달로 등단, [밤비] 제2회 불꽃문학상 수상

-시집 [살구꽃 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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