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사투리 시 모음

효림♡ 2009. 11. 10. 08:32

* 해남에서 온 편지 - 이지엽  

아홉배미 길 질컥질컥해서

오늘도 삭신 쿡쿡 쑤신다
 

아가 서울 가는 인편에 쌀 쪼깐 부친다 비민하것냐만 그래도 잘 챙겨 묵거라 아이엠에픈가 뭔가가 징허긴 징헌갑다 느그 오래비도 존화로만 기별 딸랑하고 지난 설에도 안와부럿다 애비가 알믄 배락을 칠 것인디 그 냥반 까무잡잡하던 낯짝도 인자는 가뭇가뭇하다 나도 얼릉 따라 나서야 것는디 모진 것이 목숨이라 이도저도 못하고 안 그러냐. 쑥 한 바구리 캐와 따듬다 말고 쏘주 한 잔 혔다 지랄 놈의 농사는 지먼 뭣 하냐 그래도 자석들한테 팥이랑 돈부, 깨, 콩, 고추 보내는 재미였는디 너할코 종신서원이라니...  그것은 하느님하고 갤혼하는 것이라는디...  더 살기 팍팍해서 어째야 쓸란가 모르것다 너는 이 에미더러 보고 자퍼도 꾹 전디라고 했는디 달구 똥마냥 니 생각 끈하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 이별가 - 박목월  

뭐락카노, 저 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 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저 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

 

* 사투리 - 박목월  

우리 고장에서는
오빠를
오라베라 했다.
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
오오라베 부르면
나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

나는 머루처럼 투명한
밤하늘을 사랑했다.
그리고 오디가 샛까만
뽕나무를 사랑했다.
혹은 울타리 섶에 피는
이슬마꽃 같은 것을.....
그런 것은
나무나 하늘이나 꽃이기보다
내 고장의 그 사투리라 싶었다.

참말로
경상도 사투리에는
약간 풀 냄새가 난다.
약간 이슬 냄새가 난다.
그리고 입안에 마르는
黃土 흙 타는 냄새가 난다. *
 

 

* 오ㅡ매 단풍 들것네 - 김영랑
"오ㅡ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붉은 감잎 날아와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ㅡ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리
바람이 잦이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ㅡ매 단풍 들것네"
 

 

* 사랑방 아주머니 - 도종환
죽으믄 잊혀지까 안 잊혀지는겨
남덜이사 허기 좋은 말로
날이 가고 달이 가믄 잊혀진다 허지만
슬플 때는 슬픈 대로 기쁠 때는 기쁜 대로
생각나는겨
살믄서야 잘살았던 못살았던
새끼 낳고 살던 첫사람인디
그게 그리 쉽게 잊혀지는감
나도 서른 둘에 혼자 되야서
오남매 키우느라 안 해본 일 웂서
세상은 달라져서 이전처럼
정절을 쳐주는 사람도 웂지만
바라는 게 있어서 이십 년 홀로 산 건 아녀
남이사 속맴을 어찌 다 알것는가
내색하지 않고 그냥 사는겨
암 쓸쓸하지. 사는 게 본래 조금은 쓸쓸한 일인겨
그래도 어쩌겄는가. 새끼들 땜시도 살어야지
남들헌티사 잊은 듯 씻은 듯 그렇게 허고
그냥 사는겨
죽으믄 잊혀지까 안 잊혀지는겨

 

* 여우난골족(族) - 백석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고무 고무의 딸 이녀 작은 이녀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고무 고무의 딸 승녀 아들 승동이 
   육십리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 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 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볶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이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 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 틈으로 장지문 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

* 한국문학선집[시]-문학과지성사

 

* 장날 - 노천명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었다

절편 같은 반달이 싸리문 우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까워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

 

* 마른 장작 - 김용택  

비 올랑가

비오고 나먼 단풍은 더 고울턴디

산은 내맘같이 바작바작 달아오를 턴디

큰일났네

내맘 같아서는 시방 차라리 얼릉 잎 다 져부렀으먼 꼭 좋것는디

그래야 네 맘도 내 맘도 진정될턴디

시방 저 단풍 보고는

가만히는 못 있것는디

아. 이 맘이 시방 내 맘이 아니여!

시방 이 맘이 내 맘이 아니랑께!

거시기 뭐시냐

저 단풍나무 아래

나도 오만가지 색으로 물들어 갖고는

그리 갖고는 그냥 뭐시냐 거시기 그리갖고는 그냥

확 타불고 싶당께

너를 생각하는 내 맘은 시방 짧은 가을빛에 바짝 마른 장작개비 같당께

나는 시방 바짝 마른 장작이여! 장작

 

* 서정리 이모 - 장철문  

  이모가 전화하실 때는 곧 수화기 밖으로 뻗어나올 것 같은,  야이, 머시마야-----그 느닷없는, 경상도 사투리 넌출과 전라도 사투리 넌출이 한 밭둑을 타고 넘는다. 그만 가슴에서 지리산 줄기 하나가 꿈틀 일어서는 것이다. 뱀사골에서 오미자 덩굴을 헤치다가, 한치 앞 나뭇가지에 또아리 튼 까치독사와 딱! 눈이 마주쳐버린 그 얘기를 하실 땐, 거 참, 어떻게 살아야 이모 같은 장단이 익을까. 딸 여섯에 아들 하나인 우리 이모, 이모부 생일날 딸년들 몫으로 떡 한말 쪄놨다가 썩을 년들 한년도 코빼기 안비치면 광주리 째 야영중학교 앞에 들고 가서 나오는 놈마다 한놈씩 이눔아, 왜 그리 어깨가 처졌냐?  이거 한 덩어리 묵고 가그라, 이 세상 새끼들이 다 내 새끼마냥 짠해서 아나, 너도 한 쪼가리 묵고 가그라! 뱀사골 오미자 맛이 시고 달고 쓰고 짜고 맵고 넓은 우리 이모 성깔만할까. 집앞 수렁논, 독정골 바우밭, 동구 감자밭, 갯봇들, 그 큰 논밭 다 거두고도 펄펄 힘이 남아 남원 전주 이리 서울 딸년들, 동기간들 보따리 보따리 싸 보내고, 바쁠 때는 백년손님이고 뭣이고 줄줄이 불러들여 논밭으로 내몰고. 이모가 보내 주신 고들빼기, 취나물,  태양고추,  애호박,  팔뚝만한 우엉은 제각각 우리 이모 성깔 한가지. 어떻게 살아야 우리

이모 같이 한세상 불콰할 수 있을까,  올커니!  이모 생각만 하면 내 마음 서정리 들판 보름달밤 되는데, 내일 새벽기차로 이모 오신다는데 

 

* 때죽꽃 - 송수권  

  때 거르지 말라고 올해도 때죽꽃이 피었어요. 옷소매를 툭 치고 떨어지는 꽃잎과 꽃잎 사이 미끄러지는 여보란 말, 참 좋지요. 눈물나게 옆구리를 쿡 찌르는 말, 한 숟갈씩 떠먹고 싶은 말, 당신이란 말보다는 이무러워 아슴하지 않아 좋네요. 미운 정 고운 정, 덕지덕지 때묻어 지층처럼 쌓인 말, 채석강 절벽에 가서 절벽 끝 쳐다보고 그 말 처음 들었지요. 고생대에서 중생대 백악기까지 더깨더깨 층을 이룬 말, 파도에 쓸리고 바람에 할퀸 흔적, 때죽나무 흰 꽃들이 바다에 뛰어내리며 나를 불렀어요.

아이구머니, 저 백년 웬수, 암튼, 다급한 목소리로 불러세웠지요.


  마른 염전에 핀 소금꽃같이 짜디짠, 흰죽에도 간을 치는

 

* 방어진 해녀 - 손택수
방어진 몽돌밭에 앉아
술안주로 멍게를 청했더니
파도가 어루만진 몽돌처럼 둥실둥실한 아낙 하나
바다를 향해 손나팔을 분다
(멍기 있나, 멍기ㅡ)
한여름 원두막에서 참외밭을 향해 소리라도 치듯
갯내음 물씬한 사투리가
휘둥그레진 시선을 끌고 물능선을 넘어가는데
저렇게 소리만 치면 멍게가 스스로 알아듣고
찾아오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하마터면 정신나간 여잔가 했더니
파도소리 그저 심드렁
갈매기 울음도 다만 무덤덤
그 사투리 저 혼자 자맥질하다 잠잠해진 바다
속에서 무엇인가 불쑥 솟구쳐올랐다
하아, 하아ㅡ 파도를 끌고
손 흔들며 숨차게 헤엄쳐나오는 해녀
내 놀란 눈엔 글쎄 물속에서 방금 나온 그 해녀
실팍한 엉덩이며 볼록한 가슴이 갓 따올린
멍게로 보이더니
아니 멍기로만 보이더니
한 잔 술에 미친 척 나도 문득 즉석에서
멍기 있나, 멍기ㅡ 수평선 너머를 향해
가슴에 멍이 든 이름 하나 소리쳐 불러보고 싶었다 *

 

* 거시기 - 황지우

워매 요거시 머시다냐
요거시 머시여

머냔 마리여
사람미치고 화안장하것네

머가 어쩌고 어째냐
옴메 미쳐불 것다 내가 미쳐부러
아니
그것이 그것이고
그것은 그것이고

그것이야말로 그것이라니
이런
세상에 호랭이가 그냥

무러갈 불 놈 가트니라고

너는 에비 에미도 없냐
넌 새끼도 없어
요런
호로자식을
그냥 갓다가
그냥

위매 내 가시미야
오날날 가튼 대멩천지에
요거시 머시다냐

머시여
아니
저거시 저거시고
저거슨 저거시고
저거시야말로 저거시라니
옛끼 순
어떠께 됫깜시 가미 그런 마를 니가 할 수 잇다냐

그 마리 니 입구녁에서 어떠께 나올 수 잇스까
낫짝 한번 철판니구나
철판니여
그래도 거시기 머냐
우리는
거시기가 거시기해도 거시기하로 미더부럿게
그런디이
머시냐
머시기가 머시기헝께 머시기히어부럿는디
그러믄
조타
조아
머시기는 그러타치고
요거슬 어째야 쓰것냐
어째야 쓰것서어

요오거어스으을

 

* 파도 - 이경림 
내사 천날만날 내 혼자 설설 기다가
절절 끓다가 뒤로 벌렁 자빠지다가
엉덩짝이 깨지도록 엉덩방아를 찧어보다가
꾸역꾸역 다시 일어서다가
오장육부 쥐어뜯으며 해악도 부려보다가 급기야는
절벽 같은 세상 지 대가리 찧으며 대성통곡도 해 보지만
우짜겠노 남는 건 뿌연 물보라 뿐인기라
일년하고 삼백날 출렁이지 않는 날 메날이나 되것노마는
그래도 우짜다 함뿍 거짓처럼 바람자고 쨍한 햇살에 바스스
젖은 가슴 꺼내 말리는 날 있어
이 싯푸른 희망 한 둥치 놓을 길 없나니 *

  

* 영암에서 온 편지 2 - 정찬열

꿈자리가 사나와 자다 이러나
맷자 적어보낸다

큰아그집 불났는디 시방 멋들하고인냐는 느그아부지 호통에 벌떡이러나보니 꿈이구나 밸일이 있건냐 함스로도 맘이 심숭삼숭하다 나는 잘있다  밥맛도 조코 다리심도 안직은 짱짱하다 장꼬방모탱이 니가 심어논 감나무에 올해 가지가 찌저지도록 감이 열녔다 나무가 저러케 큰것보고 손꼬바봉께 너 집떠난지도 삼십년이 넘었능갑다 억그제 니 생일에 물한그럭 떠노았다 인자 니 나이도 솔찬하구나 그 양반가분뒤 어린 느그들대꼬 사라온 풍진세월 생각하먼 참말로 까막까막하다 올가실은 강두메 밭에 고치도 잘되야서 꼬치까리좀 뽀사 보내주고 시퍼도 맘뿐이다 머시냐 아랫동네 딸그만네 시째딸 그 복사꽃가튼 가시네말이다 너 미국간뒤 절에들어가 스님되얏다더니 엄니 치상치러 왔다며 우리집 들렸더라 니 안부묻더라 짠하고 쪼끔 거시기하드라 참 도리촌 안심이네는 인공때 소식끈긴 작은아부지를 금강산가서 만나고 왔다드라 산사람은 그러케만나는디 느그아부지는 한번가니 영영이구나 아그덜 마니 컸지야 짬나서 댕개가면 조컷다 못오면 사진이라도 보내그라 할말은 당아당아 멀었다만 으쯔께 하고자픈말 다하건냐 산 내가 죽은 양반 한마디에 맘조리며사는 것이 생각해봉께 얼척도업다 으짜든지 몸성해라

먼디서 새복닥 울음소리 들려온다 
 

어느새 느그아부지 도라갈 시간인갑다

 

* 논산 장 - 이재무 

장 서는 날, 장 서봐야 예전 같지 않아서 시늉뿐이지만 한번이라도 걸리면 

긴한 일로 친정엄니 제사 건너뛴 것 마냥 괜시리 서운하고 허전해서 서산댁 일 없어도 장에 가는데

오늘도 지난 늦가을 짬 부려 수확한 도토리 한 말하고 더덕이며 고사리 보따리 챙겨 장 보러 간다
그래도 장 서는 날이라고 텅텅 비던 버스가 머리 허연 중늙이들에다가
강아짐 씨암탉이며 새끼돼지들로 그들먹하니 타고 해서 모처럼 그럭저럭 붐비는 게 차주마냥 반갑기만 하다
간이 승강장에 버스가 설 때마다 경황 중에도 오르는 사람 치마며 바지말기 부여잡고 안부 챙기는 것 잊지 않는다
 
아이고 새말 사둔댁 어떠유? 신수는 훤해보이는구만요 아이고 어떻긴 뭐가 어뗘? 대간하지! 대간혀 죽겄어!
뭐가 그렇게 대간하대유 애덜 다 컸지 영감 밤 잘 드시지 그만하면 늙으마 호강이지 뭘 그리 엄살이셔유
아이고, 서산댁! 모르면 암말도 말어 내 속타는 것 누가 알겄어 부처님도 몰러. 애덜이 크긴 뭐가 다 컸다고 그랴?

시집 장개 갔으면 끝나는 줄 알았는디 그게 아녀! 화수분도 아니고 걸핏하면 손 벌려싼는디 원수가 따로 없당게

늙은 영감탱이 술탐은 원쩐 일루다 갈수록 태산이고 말여

 
아니, 이게 누구여 강갱이댁 아녀? 이 여편네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개벼

어쩔라구 새댁마녕 뽀얗게 살이 오르는지 모르것네 도화살도 아니구 팔자 고칠라구 그라나.....

 
차에 실은 물건 챙기랴 이 일 저 일 남 일이 내 일이라서
논산장 가는 삼십 리 수탉 꼬리보다도 짧기만 해서 서산댁 그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

 

아지매는 할매되고 - 허홍구
염매시장 단골술집에서
입담 좋은 선배와 술을 마실 때였다

 

막걸리 한 주전자 더 시키면 안주 떨어지고
안주 하나 더 시키면 술 떨어지고
이것저것 다 시키다보면 돈 떨어질 테고
그래서 얼굴이 곰보인 주모에게 선배가 수작을 부린다
"아지매, 아지매 서비스 안주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주모가 뭐 그냥 주모가 되었겠는가
묵 한 사발하고 김치 깍두기를 놓으면서 하는 말
"안주 안주고 잡아먹히는 게 더 낫지만
나 같은 사람을 잡아 먹을라카는 그게 고마워서
오늘 술값은 안 받아도 좋다." 하고 얼굴을 붉혔다

 

십수 년이 지난 후 다시 그 집을 찾았다
아줌마 집은 할매집으로 바뀌었고
우린 그때의 농담을 다시 늘어놓았다
아지매는 할매되어 안타깝다는 듯이
"지랄한다 묵을라면 진작 묵지."

 
* 니 언제 시건 들래? - 이인원

덕남아! 덕남아!

퍼뜩 쪼차가서 두부 한 모 사오라 캤디마는

니 기다리다 쎄 다 빠지겠데이

장가고 내떤지고 또 올케바닥 하다 왔제?

두부가 홍캐이가 돼갖고 꿉지도 몬하겠네

 

덕남아! 덕남아!

얄궃어래이 쪼매 전 꺼정 요게 있던 칼 몬 봤나?

증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이 곡개이 같은 년아

니 또 김치꺼리 따듬고 훌 말아 내삐린 거 아니가

싸게 씨레기통에 가서 배차찌꺼래기 메메 뒤지봐라

 

덕남아! 덕남아!

니 엊저녁에 지렁 한 종지 떠오고 장단지 안 덮었제?

새벽 빗소리에 나와 봤다가 식겁 안 했나

허여이 꽂가지 피서 장 다 베릴 뿐했잖아

저 넘의 지지바 때메 허폐 뒤비져서 몬 살아

 

덕남아! 덕남아!

니 이 글 보마 옛일 설버서 엉퍼듯기 올라나

디비쫀다고 불같이 썽내지는 안 할라나

설마 니 안직도 시건 안 든 건 아니겠제?

그래도 울 엄마 눈 깜기 전 니를 보고잡다 카셨데이

* 한국시인협회[니 언제 시건 들래]-시로여는세상 

 
* 푸르른 욕 - 복효근  

팔순의 울 어머이

터앝 고추모종에 물을 주심서나

 

   하난님은 뭐 하신댜

   호랭이가 칵 물어갈녀러 날씨

   무신 가물이 이리 질댜

 

그 욕, 하도나 싱싱해서 청량헌 시 한 편이 따로 없드랑개

날씨는 하난님 것이어서

하난님도 놀랐는지 아칙녁 지나서 뜬금없는 비 한 둘금 뿌려주등마

 

   하난님도 무신 진지꼽쟁이 매이로 비를 뿌레도

   포도시 삐액이 눈물맨큼만 주시네

   참, 옘벵 오살헐......

  

울 어머이 서늘헌 욕 덕택에

가매솥에 깜박 눌데끼 몰라가던 밭두덕

어린 고추모종들이

섬닷헌 대로 알탕갈탕 일어서덜 않았것어

 

가물 끝 울 어머이 따다주신 그 풋고추에

내 빈혈의 쎄끝이 얼얼허등마

어디 가서 시 쓴다는 말 못 허것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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