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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 복효근

효림♡ 2009. 11. 26. 08:11

  

* 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 복효근 

 

새들이 겨울 응달에

제 심장만 한 난로를 지핀다

두 마리 서너 마리 때로는 떼로 몰리다 보니

새의 난로는 사뭇 따숩다

새들이 하는 일이란

너무 깊이 잠들어서 꽃눈 잎눈 만드는 것을 잊거나

두레박질을 게을리하는 나무를

흔들어 깨우는 일,

너무 추워서 옹크리다가

눈꽃 얼음꽃이 제 꽃인 줄 알고

제 꽃의 향기와 색깔을 잊는 일 없도록

나무들의 잠 속에 때맞춰 새소리를 섞어주는 일,

얼어붙은 것들의 이마를 한 번씩

콕콕 부리로 건드려주는 일,

고드름 맺힌 나무들의 손목을 한 번씩 잡아주는 일,

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천지의 나뭇가지가 대들보며 서까래다

어디에 상량을 얹고

어디에 문패를 걸겠는가

순례지에서 만난 수녀들이 부르는 서로의 세례명처럼

새들은 서로의 소리가 제 둥지다

소리의 둥지가 따뜻하다

이 아침 감나무에 물까치 떼 왔다 갔을 뿐인데

귀 언저리에 난로 지핀 듯 화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