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단풍 시 모음

효림♡ 2010. 11. 4. 08:30

* 단풍 드는 날 -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정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

* 도종환시집[슬픔의 뿌리]-실천문학사  

 

* 내장산 단풍 - 나태주   
내일이면 헤어질 사람과
와서 보시오

내일이면 잊혀질 사람과
함께 보시오

왼 산이 통째로 살아서
가쁜 숨 몰아 쉬는 모습을

다 못 타는 이 여자의
슬픔을.....*

 

* 단풍 숲속을 가며 - 오세영 
무어라 말씀하셨나
돌아서 옆을 보면
화들짝 붉히는 낯익은 얼굴
무어라 말씀하셨나
돌아서 뒤를 보면
또 노오랗게 흘기는 그 고운 눈빛
가을산 어스름 숲속을 간다
붉게 물든 단풍 속을 호올로 간다
산은 산으로 말을 하고
나무는 나무로 말하는데
소리가 아니면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하루해는
설키만 하다
찬서리 내려
산은 불현듯 침묵을 걷고
화려하게 천자만홍(千紫萬紅) 터뜨리는데
무어라 말씀하셨나
어느덧 하얗게 센 반백의
귀머거리
아직도 봄 꿈꾸는 반백의
철딱서니 

 

* 단풍 - 김종길  

올해도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가?//

작년 이맘때 오른
산마루 옛 성(城)터 바위 모서리,
작년처럼 단풍은 붉고,//

작년처럼
가을 들판은 저물어간다.//

올해도 무엇을 하며 살았는가?
작년에도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던 물음.//

자꾸만 세상은
저무는 가을 들판으로 눈앞에 떠오르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사는 동안//

덧없이 세월만 흘러가고,
어이없이 나이만 먹어가건만,//

아직도 사위어 가는 불씨 같은 성화는 남아
까닭 없이 치미는 울화 같은 것.//

아 올해도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가?//

저무는 산마루 바위 모서리,
또 한 해 불붙는 단풍을 본다.

 

* 내장산 단풍 - 정진규

그럴만한 세월이었지 내 안 어디에나 숨어 있는 너를 내가 짚어내기 시작하면서부터 그토록 꼬리를 감추던 네가 전신(全身)으로

돌아서 달려드는 게 두렵다 충만은 언제나 소멸을 예감한다 그것도 알몸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다만당 한 가지 네 비트를 나만이

알 수 있도록 네가 나의 감옥을 지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수감되었음을 한동안 나도 몰랐다 내장산 단풍 보러 가서 내장된 단풍을

본 사람은 하나도 없는 듯하다 내장(內藏)을 본 사람은 하나도 없는 듯하다 이미 제가 내장되었음을 짚은 사람은 하나도 없는 듯

하다 지리산 철쭉 바다 세석평전(細石平田)을 보았던 임오년 늦봄 나의 일기에 네가 좀 비치는 걸 적어둔 게 있기는 하다만 이번

가을 내장산 단풍 보고 와서 나는 더욱 확실해졌다 너를 은애하는 사람이 되었다 *

 

* 단풍 - 신현정
저리 밝은 것인가
저리 환한 것인가
나무들이 지친 몸을 가리고 있는 저것이
저리 고운 것인가
또 어디서는 짐승이 울고 있는가
어느  짐승이 덫에 치인 생채기를 핥고 있는가
저리 뜨거운 것인가

 

* 야 단풍이다 - 신현정  

지나가는 누구들이 무수히 입을 맞추고 가지 않은 다음에야 

저리 황홀해할 수가 있겠는가 

숨이 막히도록 퍼붓는 

입맞춤 입맞춤에 

혼절, 혼절, 또 혼절

 

* 단풍 한 잎 - 이은상

단풍 한 잎사귀 손에 얼른 받으오니

그대로 내 눈 앞에 서리치는 풍악산을

잠긴 양 마음이 뜬 줄 너로 하여 알겠구나

 

새빨간 이 한 잎을 자세히 바라보매

풍림(楓林)에 불 태우고 넘는 석양같이 뵈네

가을 밤 궂은 비소리도 귀에 아니 들리는가

 

여기가 오실 텐가 바람이 지옵거든

진주담 맑은 물에 떠서 흘러 흐르다가

그 산중 밀리는 냇가에서 고이 살아 지올 것을 *

 

* 단풍을 보면서 - 조태일 
내장산이 아니어도 좋아라
설악산이 아니어도 좋아라

야트막한 산이거나 높은 산이거나
무명산이거나 유명산이거나
거기 박힌 대로 버티고 서
제 생긴 대로 붉었다
제 성미대로 익었다

높고 푸른 하늘 아니더라도
낮고 충충한 바위하늘도 떠받치며
서러운 것들
저렇게 한번쯤만 꼭 한번쯤만
제 생긴 대로 타오르면 될 거야
제 성미대로 피어보면 될 거야

어린 잎새도 청년 잎새도
장년 잎새도 노년 잎새도
말년 잎새도
한꺼번에 무르익으면 될 거야
한꺼번에 터지면 될 거야

메아리도 이제 살지 않는 곳이지만
이 산은 내 산이고 니 산인지라
저 산도 내 산이고 니 산인지라

 

* 단풍의 이유 - 이원규 
이 가을에 한 번이라도
타오르지 못하는 것은 불행하다
내내 가슴이 시퍼런 이는 불행하다

단풍잎들 일제히
입을 앙다문 채 사색이 되지만
불행하거나 불쌍하지 않다

단 한 번이라도

타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너는 붉나무로
나는 단풍으로
온몸이 달아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사람도 그와 같아서
무작정 불을 지르고 볼 일이다

폭설이 내려 온몸이 얼고
얼다가 축축이 젖을 때까지
합장의 뼈마디에 번쩍 혼불이 일 때까지 

* 단풍 - 유치환

신이 주신
마지막 황금의 가사를 입고
마을 뒤 언덕 위에 호올로 남아 서서
드디어 다한 영광을 노래하는
한 그루 미루나무

 

* 단풍 - 이영도

너도 따라 여기

황홀한 불길 속에

 

사랑도 미움도

넘어선 정이어라

 

못내 턴

그 청춘들이

사뤄 오르는 저 향로! 

* 단풍 - 이상국 

나무는 할 말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잎잎이 마음을 담아내는 것이다

봄에 겨우 만났는데
가을에 헤어져야 하다니

슬픔으로 몸이 뜨거운 것이다

그래서 물감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계곡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 단풍나무 길에 서서 - 장철문  

꽃잎이 사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있다 신록의 단풍잎 사이에서 와서
신록의 단풍잎 속으로 떨어지고 있다 사선을 그리며
유성우(流星雨)가 떨어지고 있다
궁창(穹蒼) 속에서 와서
궁창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흙이었으며
흙으로 돌아가고 있다
꽃이었으며
꽃으로 돌아갔었다고 해도 좋다
햇살이
신록의 단풍나무숲을 투과하고 있다
신록의 단풍잎을 투과하고 있다
사선을 그리며 사라지고 있다
사라지는
어느 한순간도 잡을 수가 없다

지금이

사라지고 있다

궁창으로부터 궁창으로 사라지고 있다 폭우처럼 사라지고 있다

가슴으로부터 가슴으로 사라지고 있다 *

* 장철문시집[무릎 위의 자작나무]-창비 

 

* 늦단풍 - 장철문  

서른 두 가마니 참숯을 들이부었다//

뻥 뚫린 풍구다//

대장장이의 얼굴이 서쪽으로부터 발그레하다

 

* 단풍(丹楓) - 백석  

빨간 물 짙게 든 얼굴이 아름답지 않느뇨

빨간 정(精) 무르녹는 마음이 아름답지않느뇨

단풍 든 시절은 새빨간 웃움을 웃고 새빨간 말을 지즐댄다

 

어데 청춘(靑春)을 보낸 서러움이 있느뇨

어데 노사 (老死) 를 앞둔 두려움이 있느뇨

재화가 한끝 풍성하야 시월 (十月) 햇살이 무색하다.

 

사랑에 한창 익어서 살찐 띠몸이 불탄다.

영화의 자랑이 한창 현란해서 청청한울이 눈부셔한다.

시월(十月) 시절은 단풍이 얼굴이요, 또 마음인데 시월 단풍도

높다란 낭더러지에 두서너 나무 개우듬이 외로히 서서 한들거리

는 것이 기로다. 

 

시월 단풍은 아름다우나 사랑하기를 삼갈 것이니 울어서도

다 하지 못한 독한 원한이 빨간 자주도 지지우리지 않느뇨

 

* 단풍 - 양진건

아흔아홉 골

단풍 보고 있자니

아, 억장이 무너져

나도

언제 한번이라도 저렇게

제 몸 온전히

불사를 수나 있을지.

저렇게

비탈 구르며 달려 와

제 몸 기꺼이

내어줄 수나 있을지.

찬란해라,

절정이여.

서러움이여. *

 

* 단풍 - 박성우 
맑은 계곡으로 단풍이 진다
온 몸에 수천 개의 입술을 숨기고도
사내 하나 유혹하지 못했을까
하루종일 거울 앞에 앉아
빨간 립스틱을 지우는 길손다방 늙은 여자
볼 밑으로 투명한 물이 흐른다
부르다 만 슬픈 노래를 마저 부르려는 듯 그 여자
반쯤 지워진 입술을 부르르 비튼다
세상이 서둘러 단풍들게 한 그 여자
지우다 만 입술을 깊은 계곡으로 떨군다  

 

* 단풍 - 박형준 
바람과 서리에 속을 다 내주고 물들 대로 물들어 있다 무덤을 지키고 선 나무 한 그루, 저녁 햇살에 빛나며 단풍잎을 떨어뜨린다 자식도 덮어주지 못한 이불을, 속에 것 다 비워 덮어준다 무덤 아래 밭이 있다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데 종아리에 불끈 일어선 정맥처럼 혼자 자라 시퍼렇게 빛나는 무 잎사귀
 

 

* 단풍 - 안도현  

보고싶은 사람 때문에

먼 산에 단풍

물 드는

 

사랑 *

 

* 산행영홍엽(山行紅葉) - 장초(蔣超)

誰把丹靑抹樹陰 - 수파단청말수음

冷香紅玉碧雲深 - 냉향홍옥벽운심

天公醉後橫拖筆 - 천공취후횡타필

顚倒春秋花木心 - 전도춘추화목심

-단풍

녹음에다 단청칠 그 누가 했나

파란 하늘 흰 구름 속 붉은 구슬 향 머금었네

조물주가 술에 취해 붓 휘어잡고

가을을 봄으로 그렸음일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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