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첫눈 시 모음

효림♡ 2010. 12. 7. 08:39

* 당신이 첫눈으로 오시면 나는 손톱 끝에 봉숭아 꽃물 들이고서 - 박남준  

첫눈 오시는 날 당신의 떠나가던 멀어가던 발자욱 하얀 눈길에는 먼 기

다림이 남아 노을 노을 졌습니다 붉게 타던 봉숭아 꽃물 손톱 끝에 매달

려 이렇게 이렇게도 가물거리는데 당신이 내게 오시며 새겨놓을 하얀

눈길 위 발자욱 어디쯤이어요

눈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첫눈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

* 신정일저[그곳에 자꾸만 가고 싶다]-다산책방

 

* 첫눈 - 문병란 
첫눈이 내리는 밤이면
사내들은 모두 예수가 되고
첫눈이 내리는 밤이면
여자들은 모두 천사가 된다
여보게 우리도 이런 밤
소주 몇 잔 비우고 조금 취해
모닥불 가에 언 손 부비며
쓸쓸한 추억하나 만들어볼까
만원짜리 한 장에 꿈을 달래고
포실거리는 눈발에 맞춰
여보게 우리도 첫눈 밤 같은
사랑 하나 만들까
그립다
첫눈이 내리면 먼데 마을 하나 둘 등불 꺼지고
지금쯤 그리운 사람은
혼자서 외로이 잠이 드는데
창가에 기대어 먼데
여인의 발자국 소리 엿들어 볼까
이런 밤 우리도 고요히
손 모아 촛불 하나 지킬까

 

* 첫눈 - 김남주 

첫눈이 내리는 날은

빈 들에

첫눈이 내리는 날은

캄캄한 밤도 하얘지고

밤길을 걷는 내 어두운 마음도 하얘지고

눈처럼 하얘지고

소리없이 내려 금세

고봉으로 쌓인 눈 앞에서

눈의 순결 앞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는다

시리도록 내 뼛속이

소름이 끼치도록 내 등골이 *

 

* 첫눈 - 강은교 

첫눈이 내린다

흙에 닿으면 흙으로

눈물에 닿으면 눈물로

내리는 족족 녹으며

자꾸 내린다

 

웬 슬픔들 여기엔 이리도 많은지

동구 밖 넓은 길 훠이훠이 떠돌다가

더는 몸비빌 곳 없어

찾아오신 넋들

 

구름 위에서 구름이 부서진다

바람 앞에서 바람이 부서진다

어이 하리 못다한 우리네 사랑

내려 쌓이지 않으면 어이 하리

 

첫눈을 맞는다

흙이 되어 흙을

눈물이 되어 눈물을 맞는다

살아서 형체도 없이 살아서

파란만장 골목마다

흩어지는 아우성들

 

어디 한번 당신 옷깃에

녹는 살 대어보리라며

가슴팍이란 가슴팍

끓는 김 되어 용솟음치리라며

 

혹은 당신 이마 밑

얼음으로 깊이깊이

합치리라며 *

* 강은교시집[소리집]-창비,1982

 

* 첫눈 - 송수권 

눈이 내린다. 어제도 내리고 오늘도 내린다. 미욱한 세상, 깨달을 것이 너무 많아 그 깨달음 하나로 눈물 젖은 손수건을 펼쳐들어 슬픈 영혼을 닦아내 보라고, 온 세상 하얗게 눈이 내린다. 어제도 내리고 오늘도 내린다. 살아있는 모든 것, 영혼이 있고, 내 생명 무거운 육신을 벗어 공중을 나는 새가 되라고, 살아 있는 티벳인이 되라고 한 밤중에도 하얗게 내린다. 히말라야 삼나무숲을 흔들며, 말울음 소릴 내며 이렇게 고요하게 지금 첫눈이 내린다.

 

* 첫 눈 - 김용택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이름 하나가 시린 허공을 건너와 메마른 내 손등을

적신다 * 

 

* 첫눈 - 정호승 
첫눈이 내렸다
퇴근길에 도시락 가방을 들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렸다
눈송이들은 저마다 기차가 되어 남쪽으로 떠나가고
나는 아무 데도 떠날 데가 없어
나의 기차에서 내려 길을 걸었다
눈은 계속 내렸다
커피 전문점에 들러 커피를 들고
담배를 피웠으나 배가 고팠다
삶 전문점에 들러 生生라면을 사먹고
전화를 걸었으나 배가 고팠다
삶의 형식에는 기어이 참여하지 않아야 옳았던 것일까
나는 아직도 그 누구의 발 한번 씻어주지 못하고
세상을 기댈 어깨 한번 되어주지 못하고
사랑하는 일보다 사랑하지 않는 일이 더 어려워
삶 전문점 창가에 앉아 눈 내리는 거리를 바라본다
청포장사하던 어머니가 치맛단을 끌고 황급히 지나간다
누가 죽은 춘란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돌아선다
멀리 첫눈을 뒤집어쓰고 바다에 빠지는
나의 기차가 보인다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한 것은 잘못이었다
미움이 끝난 뒤에도 다시 나를 미워한 것은 잘못이었다
눈은 그쳤다가 눈물버섯처럼 또 내리고
나는 또다시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린다 *

* 정호승시집[내가 사랑하는 사람]-열림원

 

* 첫눈 - 정양

한번 빚진 도깨비는

갚아도 갚아도 갚은 것을

금방 잊어버리고

한평생 그걸 갚는다고 한다

먹어도 먹어도 허천나던

흉년의 허기도 그 비슷했던가 

 

보고 싶어도 보고 싶어도

소용없는 사람아

내려도 내려도 다 녹아버리는

저 첫눈 보아라  

 

몇 평생 갚아도 모자랄

폭폭한 빚더미처럼

먼 산마루에만

희끗거리며 눈이 쌓인다 *

* 문태준엮음[포옹,당신을 안고 내가 물든다]-해토

 

* 첫눈 내린 아침에 - 최하림 

눈이 지천으로 오는 밤에 시를 써야지

머리를 눈에 박고 써야지

눈 속을 걸어가는 사내 몇

불을 찾는 사내 몇

겨울까마귀 몇

죽은 자들로 그런 밤엔 불을 찾자

몇날이고 몇밤이고 언덕을 넘겠지 그들의 목소리가

벌판을 헤매겠지. 그들의 불을 찾으러? 꿈꾸는 불? 그 불 속에

밤차가 달리고 겨울까마귀들이 공중을 떠돌겠지

―겨울까마귀가 중부 지방엔 없어요, 여보

중부지방이 아니야, 내가 말하는 건.....

나는 그 살도 뼈다귀도 안다 바람이 그들 소리로

하늘을 울리는 걸 안다 당신도 그 소리를 알았으면 좋겠어

아이들도 이웃도 그 나라의 바다쪽으로

검은 머리를 빗겨내리며

붉은 불빛 속에서 마음을 드러내고

어머님이 나를 보시듯, 그래 어머님이......

 

오오 떠오르는 어머님이여

그날 저녁도 우리는 어둔 거리를 헤맸습니다

세종로 우체국 옆 담뱃가게에서 솔을 한갑 사고, 거스름돈을 받고

어느 술집으로 들어갈까 망설이면서 거리 끝까지 걸어갔댔습니다

 

* 첫눈 오던 날 - 용혜원   

첫눈 오던 날 새벽에

가장 먼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은 것처럼

그대에게 처음 사랑이고 싶습니다


삶의 모든 날들이

그대와 살아가며

사랑을 나눌 날들이기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늘 간절한 마음으로

그대를 위하여

두 손을 모읍니다


그대를 축복하여 주시기를

늘 아쉬운 마음으로

살아가기에

그대에게 은총이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 첫눈 오는 날 - 곽재구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하늘의 별을
몇 섬이고 따올 수 있지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새들이 꾸는 겨울꿈 같은 건
신비하지도 않아

첫눈 오는 날
당산 전철역 오르는 계단 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
가슴 속에 촛불 하나씩 켜들고
허공 속으로 지친 발걸음 옮기는 사람들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다닥다닥 뒤엉킨 이웃들의 슬픔 새로
순금빛 강물 하나 흐른다네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이 세상 모든 고통의 알몸들이
사과꽃 향기를 날린다네. *

 

* 하늘만 곱구나 - 이용악   

집도 많은 집도 많은 남대문턱 움 속에서 두 손 오그려 혹혹 입김 불며 이따금씩 쳐다보는 하늘이사

아마 하늘이기 혼자만 곱구나
거북네는 만주서 왔단다 두터운 얼음짝과 거센 바람속을 세월은 흘러 거북이는 만주서 나고 할배는

만주에 묻히고 세월이 무심찮아 봄을 본다고 쫓겨서 울면서 가던 길 돌아왔단다
띠팡을 떠날 때 강을 건널 때 조선으로 돌아가면 빼앗겼던 땅에서 농사지으며 가갸거겨 배운다더니

조선으로 돌아와도 집도 고향도 없고
거북이는 배추꼬리를 씹으며 달디달구나 배추꼬리를 씹으며 거므테테한 아배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배추꼬리를 씹으며 거북이는 무엇을 생각하누
첫눈 이미 내리고 이윽고 새해가 온다는데 집도 많은 집도 많은 남대문턱 움 속에서 이따금씩 쳐다보는

하늘이사 아마 하늘이기 혼자만 곱구나 *

 

* 첫눈 - 이해인

함박눈 내리는 오늘

눈길을 걸어

나의 첫사랑이신 당신께

첫 마음으로 가겠습니다

 

언 손 비비며

가끔은 미끄러지며

힘들어도

기쁘게 가겠습니다

 

하늘만 보아도

배고프지 않은

당신의 눈사람으로

눈을 맞으며 가겠습니다 *

* 이해인시집[작은 기쁨]-열림원

 

* 내게 당신은 첫눈 같은 이 - 김용택  

처음 당신을 발견해 가던 떨림
당신을 알아 가던 환희
당신이라면 무엇이고 이해되던 무조건,
당신의 빛과 그림자 모두 내 것이 되어 가슴에 연민으로 오던 아픔,
  이렇게 당신께 길들여지고 그 길들여짐을 나는 누리게 되었습니다.
나는 한사코 거부할랍니다.
당신이 내 일상이 되는것을.
늘 새로운 부끄럼으로
늘 새로운 떨림으로
처음의 감동을 새롭히고 말 겁니다.
사랑이,
사랑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요.
이 세상 하고많은 사람 중에 내 사랑을 이끌어낼 사람 어디 있을라구요.
기막힌 별을 따는 것이 어디 두 번이나 있을 법한 일일라구요.
한 번으로 지쳐 혼신이 사그라질 것이 사랑이 아니던지요.
맨처음의 떨림을 항상 새로움으로 가꾸는 것이 사랑이겠지요.
그것은 의지적인 정성이 필요할 것이지요.
사랑은 쉽게 닳아져버리기 때문입니다.
당신께 대한 정성을 늘 새롭히는 것이 나의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나는 내 생애에 인간이 되는 첫 관문을 뚫어주신 당신이 영원으로 가는 길까지 함께 가주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당신에게 속한 모든 것이 당신처럼 귀합니다.
당신의 사랑도,당신의 아픔도,당신의 소망도, 당신의 고뇌도 모두 나의 것입니다.
당신보다 먼저 느끼고 싶습니다.
생애 한 번뿐인 이 사랑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 하나로 밤이 깊어지고 해가 떴습니다.
피로와 일 속에서도 당신은 나를 놓아주지아니하셨습니다.
기도, 명상까지도 당신은 점령군이 되어버리셨습니다.
내게,
아, 내게
첫눈 같은 당신. *
 

* 김용택시집[참 좋은 당신]-시와시학사

 

* 新雪 - 李彦迪   

新雪今朝忽滿地 - 신설금조홀만지
況然坐我水精宮 - 황연좌아수정궁
柴門誰作剡溪訪 - 시문수작섬계방
獨對前山歲暮松 - 독대전산세모송


첫눈 내린 오늘 아침 땅을 가득 덮었으니
황홀하게 수정궁에 나를 앉혀 놓았구나
사립문에 누군가가 섬계(剡溪) 찾아 왔으려나
앞산에 소나무를 나 혼자서 마주하네 *

'시인 詩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시영 시 모음   (0) 2010.12.20
박남준 시 모음  (0) 2010.12.16
고영민 시 모음  (0) 2010.11.15
최승호 시 모음  (0) 2010.11.08
단풍 시 모음  (0) 2010.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