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봄 시 모음 2

효림♡ 2011. 2. 22. 12:42

* 2월 - 안도현 
진눈깨비 속에서 졸업식이다
붉고 큰 꽃다발 가슴으로 슬프고 기쁜 기념사진을 찍는다
식구들과 한판 벗들과도 한판 그리고 독사진도 한판
발등에서 머리끝까지 밀가루 하얗게 뒤집어쓰고
눈발처럼 키득거리는 놈도 있다 평소에 밥먹듯이 매 맞던 녀석이다
그래도 장차 시대구분할 임자는
이 흥청대는 아이들 중에 있다
내 눈에는 이 튼튼한 장정들의 아침의 나라가 보인다 *

 

* 3월 - 오세영  
흐르는 계곡물에
귀 기울이면
3월은
겨울옷을 빨래하는 여인네의
방망이질 소리로 오는 것 같다.

만발한 진달래 꽃숲에
귀 기울이면

3월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함성으로 오는 것 같다.

새순을 움틔우는 대지에
귀 기울이면
3월은
아가의 젖 빠는 소리로
오는 것 같다.

아아, 눈부신 태양을 향해
연녹색 잎들이 손짓하는 달, 3월은
그날, 아우내 장터에서 외치던
만세 소리로 오는 것 같다. *

 

* 3월에서 4월 사이 - 안도현 

산서고등학교 관사 앞에 매화꽃 핀 다음에는 

산서주조장 돌담에 기대어 산수유꽃 피고 

산서중학교 뒷산에 조팝나무꽃 핀 다음에는 

산서우체국 뒤뜰에서는 목련꽃 피고 

산서초등학교 울타리 너머 개나리꽃 핀 다음에는 

산서정류소 가는 길가에 자주제비꽃 피고 *

 

* 답청(踏靑) - 정희성 

풀을 밟아라
들녘엔 매맞는 풀
맞을수록 시퍼런
봄이 온다
봄이 와도 우리가 이룰 수 없어
봄은 스스로 풀밭을 이루었다
이 나라의 어두운 아희들아
풀을 밟아라
밟으면 밟을수록 푸른
풀을 밟아라 *

 

* 봄을 기다리는 마음 - 신석정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가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고
호흡은 가빠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의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 소찬(素饌) - 박목월 

오늘 나의 밥상에는 

냉이국 한 그릇 

풋나물무침에 

신태(新苔) 

미나리김치 

투박한 보시기에 끓는 장찌개

 

실보다 가는 목숨이 타고난 복록(福祿)을 

가난한 자의 성찬(盛饌)을 

묵도(默禱)를 드리고 

젓가락을 잡으니 

혀에 그득한 

자연의 쓰고도 향깃한 것이여 

경건한 봄의 말씀의 맛이여 *

 

* 봄길 - 최남선 

버들잎에 구는 구슬 알알이 짙은 봄빛

찬 비라 할지라도 님의 사랑 달아옴을

적시어 뼈에 스민다 마달 수가 있으랴


볼부은 저 개구리 그 무엇에 쫓겼관대

조르르 젖은 몸이 논귀에서 헐떡이나

떼봄이 쳐들어와요, 더위 함께 옵데다


저 강상(江上) 작은 돌에 더북할쏜 푸른 풀을

다 살라 욱대길 제 그 누구가 봄을 외리

춤만한 저 흙일망정 놓쳐 아니 주도다 *

 

* 봄날 - 신경림 

아흔의 어머니와 일흔의 딸이
늙은 소나무 아래서
빈대떡을 굽고 소주를 판다

잔을 들면 소주보다 먼저
벚꽃잎이 날아와 앉고
저녁놀 비낀 냇물에서 처녀들
벌겋게 단 볼을 식히고 있다
벚꽃 무더기를 비집으며
늙은 소나무 가지 사이로
하얀 달이 뜨고
아흔의 어머니와 일흔이 딸이
빈대떡을 굽고 소주를 파는
삶의 마지막 고샅

북한산 어귀
온 산에 풋내 가득한 봄날
처녀들 웃음소리 가득한 봄날 *

 

* 봄날 - 신경림  

새벽 안개에 떠밀려서 봄바람에 취해서
갈 곳도 없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불현듯 내리니 이곳은 소읍, 짙은 복사꽃 내음.
언제 한 번 살았던 곳일까,
눈에 익은 골목, 소음들도 낯설지 않고.
무엇이었을까, 내가 찾아 헤매던 것이.
낯익은 얼굴들은 내가 불러도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복사꽃 내음 짙은 이곳은 소읍,
먼 나라에서 온 외톨이가 되어
거리를 휘청대다가
봄 햇살에 취해서 새싹 향기에 들떠서
다시 버스에 올라. 잊어버리고,
내가 무엇을 찾아 헤맸는가를.
쥐어보면 빈 손, 잊어버리고,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서 내릴지도. * 

* 신경림시집[이래서 이 세상에 꽃으로 피었으면]-랜덤하우스

 

* 파랗게, 땅 전체를 - 정현종

1

파랗게, 땅 전체를 들어올리는

봄 풀잎,

하늘 무너지지 않게

떠받치고 있는 기둥

봄 풀잎

2

그림 속의 여자도 개구리도

꿈틀거리는

봄바람 속

내 노래의 물소리는 저

풀잎들 가까이 흘러가야지 *

 

* 그래도 하늘은 있다 - 이상문 

산 그리는 사람은 있어도

하늘 그리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하늘은

산 위에 그려져 있다

 

바다 찍는 사람은 있어도 

하늘 찍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하늘은 바다 위에 찍혀 있다 *

 

* 봄날은 간다 - 김종철 
꽃이 지고 있습니다
한 스무 해쯤 꽃 진 자리에
그냥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일 마음 같진 않지만
깨달음 없이 산다는 게
얼마나 축복 받은 일인가 알게 되었습니다
한 순간 깨침에 꽃 피었다
가진 것 다 잃어버린
저기 저, 발가숭이 봄!
쯧쯧
혀끝에서 먼저 낙화합니다 *

 

* 한 송이의 꽃도 - 박남준  

한 포기의 풀을 볼 때 생각했습니다. 한 포기의 풀이

꽃이 피울 때 가슴 쓸어 내렸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도 저처럼 꽃피워 지는 것이라면 꽃으로 말입니다

사랑으로 가득 차 피어나는 꽃


꽃 꽃 꽃 꽃 꽃

기다림 끝에 피어납니다

그 사랑으로 피어납니다

가슴 저미는 그리움

그리움 가득 없이는

한 송이의 꽃 피울 수 없습니다

열매 맺지 못합니다 *

 

* 春分 -그리운 102 - 원재훈  

당신과 나의 그리움이
꼭 오늘만 같아서
더도 덜도 말고,하루종일 밤과 낮이
낮과 밤이 잘 빚어진
떡반죽처럼 만지면 기분 좋을 때
내 슬픔, 내 기쁨, 꼭 오늘처럼 당신이 그리워서
보름달처럼 떠오르고 싶어라
당신의 눈물로 나의 손을 씻고
가끔씩 나의 창문을 두드리는 허전한 나뭇잎의 마음을
잡고 싶어라
새순은 돋아 나는데
아장아장 봄볕이 걸어오는데
당신이 그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살고 싶어라 *

 

* 이래도 안 오시겠어요 - 박남준 

아른아른 아지랭이가 먼 산들에 피어오르는 이 봄날 겨우내 묵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는 들녘에 가보아요. 양지쪽마다 새순 곱게 피어올리는 냉이며 달래 씀바귀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바느질을 하듯 조심스레 캐어 맑은 개울물에 씻고 갖은 양념을 넣었습니다. 한 그릇의 봄나물을 버무릴 때마다 손끝에 피어나는 상큼한 봄의 냄새, 아! 생명의 소중함, 푸른 대지의 고마움을 알았습니다


저는 당신의 삶의 한 편에 놓일 상큼한 한 그릇의 봄나물이 되려 합니다. 그 봄나물을 키우는 푸른 대지. 그것이 바로 당신의 힘이라는 점, 아시는지요. 이렇게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봄빛 근처 -옛 공원에 와서 - 장석남 

봄은 아직 일러 나뭇가지들은 내내 적막하고 나는 왜 이 공원에 앉아서

근처를 맴도는 바람결같이 침침한 눈으로 저 먼 바다 기슭을 바라보는 것이냐

 지난 겨울 내내 나는 무슨 뉘우칠 일이 많아 저 바다는 또한 내게 저토록 많은 빛을 모아 반짝이는 것이냐

 늑골 속에서 부- 뱃고동 소리 뽑아가는 저 물 위의 신작로

 무엇이 그리 안타깝게 궁금해 저녁해는 자기 생각 깊이깊이 잠기는가

 잠겨..... 자기(自己)까지를 없애는가 *

* 장석남시집[젖은 눈]-문학동네

 

* 꽃샘추위 - 석여공 

나 방금 눈길 밟고 왔다

보니 나보다 먼저 지나간 바람은

나뭇가지에 안부도 남겨놓지 않고 지나버려서

매화나무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다

그렇게 세월 지난다 해도

귀 맑은 매화나무는

추억할 한 자락의 바람도 품지 않는 것이다

봄이 언제는 소리쳐 왔던가

바람에 녹을 눈길 밟고 왔다는 안부일랑은

말하지 말라

아직 다 꽃피지 못한 매화나무는

쉽게 꽃피지 않는다고

절망할 꽃도 아니다 *

* 석여공시집[잘 되었다]-문학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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