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절 시 모음

효림♡ 2011. 5. 10. 16:43

* 부처님 - 조병화

부처님, 제가 부처님께 하는 치성이
부처님 마음엔 차지 않으실는지는 모르나
저는 온 정성을 다하여
부처님을 치성껏 섬기고 있습니다

부처님, 그래도 더욱더 네 마음의 치성을 보여라!
하실는지는 모르나
저는 더 이상은 부처님께 보여 드릴
제 마음의 치성이 없습니다

그래도 더 네 마음의 치성을 보여라! 하신다면
저는 더 이상은 부처님께 보여 드릴 것이 없어
제 텅 빈 가난한 마음의 바닥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아, 그래도 더 네 마음의 치성을 보여라! 하신다면
저는 더이상은 보여 드릴 것이 없어
너무나 가난해서 부끄러운
제 마음의 문을 닫을 수밖엔 없습니다

 

* 운문사 - 이동순  

운문사 비구니들이

모두 한자리에 둘러앉아 

메주를 빚고 있다

입동 무렵

콩더미에선 더운 김이 피어오르고

비구니들은 그저

묵묵히 메주덩이만 빚는다

살아온 날들의 덧없었던 내용처럼

모두 똑같은 메주를 

툇마루에 가지런히 널어 말리는

어린 비구니

초겨울 운문사 햇살은

그녀의 두 볼을 발그레 물들이고

서산 낙조로 저물었다 *

 

* 지하철을 탄 비구니 - 정호승 

그대 지하철역마다 절 한 채 지으신다 

눈물 한 방울에 절 하나 떨구신다 

한손엔 바랑 

또 한손엔 휴대폰을 꼭 쥐고 

자정 가까운 시각 

수서행 지하철을 타고 가는 그대 옆에 앉아 

나는 그대가 지어놓은 절을 자꾸 허문다 

한 채를 지으면 열 채를 허물고 

두 채를 지으면 백 채를 허문다 

차창 밖은 어둠이다 

어둠속에 무안 백련지가 지나간다 

승객들이 순간순간 백련처럼 피었다 사라진다 

열차가 출발할 때마다 들리는 

저 풍경소리를 들으며 

나는 잃어버린 아내를 찾아다니는 사내처럼 운다 

사람 사는 일 

누구나 마음속에 절 하나 짓는 일 

지은 절 하나 

다시 허물고 마는 일 *

* 정호승시집[포옹]-창비

 

* 부처 - 오규원 


남산의 한중턱에 돌부처가 서 있다
나무들은 모두 부처와 거리를 두고 서 있고
햇빛은 거리 없이 부처의 몸에 붙어 있다
코는 누가 떼어갔어도 코 대신 빛을 담고
빛이 담기지 않는 자리에는 빛 대신 그늘을 담고
언제나 웃고 있다
곁에는 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고
지나가던 새 한마리 부처의 머리에 와 앉는다
깃을 다듬으며 쉬다가 돌아앉아
부처의 한쪽 눈에 똥을 눠놓고 간다
새는 사라지고 부처는
웃는 눈에 붙은 똥을 말리고 있다

 

* 굴암사(窟巖寺) - 조병화 

옛날 송전공립보통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원족(遠足)을 갔던 굴암사
사푼사푼 잘도 올라갔던 생각이
다시 찾아든 산길
하두 험하고 가파라서 쉬엄쉬엄 오르매
옛날은 까마득하다
허이허이 오르는 산길
절은 하늘 위에 있다
아, 어머님, 어머님은 너무나 높은 곳에
계십니다
할 때, 한 소년이 사푼사푼
내 곁을 앞질러 오른다
나를 힐끗 뒤돌아보며

 

* 석굴암 대불(大佛) - 조오현
토함이 떠갑니다 동해 푸르름에 
편주의 사공인 양 대불은 졸립니다 
하 그리 바다가 멀어 
깨실 날이 없으신 듯 

허공에 던진 원념 해를 지어 
밝혔느니 
밤이면 명명한 수평 
달을 건져 올립니다 
진토에 뜨거운 말씀을 솔씨처럼 
묻으시고 

사모의 깃털 뽑아 보내 논 갈매기는 
오늘도 어느 바다 
길을 잃고 도는 걸까 
무량심 파도로 밀려 무릎까지 
오릅니다 *

* 부처바위 - 손택수 

경주 남산 스님 한 분 바위 속에 갇혀 있다. 반야나무 망고나무 잎 아래 결가부좌 튼 채 안으로 금이 가고 금길 따라 빗물이 흘러드는 소리를 엿듣고 있다. 죽어서 바위는 모래알을 남기고 고승은 사리알을 남긴다는데..... 천년 비바람에 가사 옷주름이 지워지고 얼굴선이 희미해지면서 둘은 이제 어지간히 닮아도 보인다. 그러나 바위가 사리알이 되기까지, 스님이 모래알이 되기까지 크낙한 저 침묵은 또 천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 선정에 든 바위에서 흐르는 눈물, 모래 쓸리는 소리가 아릿하다

 

* 골굴사(骨窟寺) - 손택수  

토함산이 뱉어놓은 달을 함월산이 머금었다 달을 머금고 달 속의 분화구처럼 구멍 숭숭 골다공증을 앓는 골굴사

 

뼛속이 시리겠다 다공을 품었으니 뼛속을 감돌며 우는 바람소리에 전나무 측백나무 서어나무 모골이 모다 송연해져선 

 

사내들은 앓기 힘든 병이랬나 그 병 속에 관음 지장 약사 부처가 들어서서 경 읽는 소리가 난다  

세상에 어미를 두고 온 나, 어린 스님 하나도 그 속에서 으스스 비를 긋는다 

 

* 어느 절간 - 이생진
소나무가 바람을 막았다
부처님이 흐뭇해하신다
눈 내리는 겨울 밤
스님 방은 따뜻한데
부처님 방은 썰렁하다
그래도
부처님은 빙그레 웃으신다
 

* 산사에서의 하루 - 고은
꼬불꼬불한 오솔길을 따라
산길을 갔다
그곳엔 작은 암자가 있었다
참으로 조용했다
밤새 울어대는 소쩍새 소리 뿐
밖에는 등불만 깜박인다
이른 새벽 모두가 잠든 밤 탑을 돌며
외우는 낭랑한 여승의 염불소리 잠깨어 가만히 귀기울여 본다
애절한 듯 여린 목소리가
가슴을 파고들고 몇 번의 종이 울리고
법당에 밝혀진 촛불 아래
백팔배 절을 하며 쌓인 업보 풀어낸다
나무아미타불

 

* 합장(合掌) - 고은  

어찌 사라진 것이 이것뿐이랴

겨우 주춧돌 몇 개와 함께

나도 자매(姉妹) 없이 남겨져

풀 가운데 우거진 꿈이여

차라리 빈 절터에 절이 있다.

여기다 여기다

남은 것은

서산머리에 뉘엿뉘엿 해로서 진다.

생각컨데 풀벌레소리도

나와 같다

눈을 뜨면

절터에 커다란 절이 일어서서

대웅전으로 관음전으로

명부전으로

저녁이 밤이 된다

절모퉁이 어둠 속에서

어린 사미(沙彌) 나와서

며칠 전 새벽 꿈에서 본 손

바로 그 손으로 손을 모은다

그렇구나 그 손이 하나

어느 누구 어릴 적 첫 합장(合掌)이구나

 

* 낙산사 가는 길 3 - 유경환 
세상에
큰 저울 있어

저 못에 담긴
고요
달 수 있을까

산 하나 담긴
무게
달 수 있을까

달 수 있는
하늘 저울
마음일 뿐. *

* 2003년 정지용문학상 수상

 

* 메주불(佛) - 손택수

절집 처마 아래 메주가 마른다//
금강경독경 미륵존여래불 염불소리가 들려온다//
염불을 들어야 메주가 잘 뜨거든//
곰팡이가 알맞게 피어오르거든//
정지에서 나온 보살님이 메주 아래 합장을 한다//
겨울 햇살과 바람과 먼지와 눈 내리는 소리까지//
눈 속에 먹이를 구하러 내려온 산짐승 울음까지//
몸속에 두루 빨아들여 피워내는 메주 곰팡이//
나무아미타불, 자연 발효시킨 부처님이시다 *

 

* 해인사 - 조병화

큰 절이나 작은 절이나

믿음은 하나

 

큰 집에 사나 작은 집에 사나

인간은 하나 *

 

* 春日 遊 白蓮寺 - 丁若鏞  

片片晴雲拭瘴天    薺田蝴蝶白翩翩
偶從屋後樵蘇路    遂過原頭穬麥田
窮海逢春知老至    荒村無友覺僧賢 
且尋陶令流觀意    與說山經一二篇  

-봄날 백련사에 노닐면서 

조각 구름 맑아서 궂은 하늘 씻어내고 
냉이밭 나비들 훨훨 나는데 허옇구나
집 뒤의 나무꾼 다니는 길 우연히 따라가니
들머리 보리밭까지 지나오고 말았네
땅끝 바다에서 봄이 되니 늙어감 알아지고
황량한 시골 벗 없자 중이 좋음 깨달았네
먼 산만 바라보고 도연명의 뜻 알만해서
한두 편 산경(山經)을 놓고 중과 함께 얘기했네 *

* 박석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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