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어머니 시 모음 2

효림♡ 2012. 10. 31. 16:44

* 어머니 - 오세영 
나의 일곱 살 적 어머니는
하얀 목련꽃이셨다.
눈부신 봄 한낮 적막하게
빈 집을 지키는,

나의 열네 살 적 어머니는
연분홍 봉선화 꽃이셨다.
저무는 여름 하오 울 밑에서
눈물을 적시는,

나의 스물한 살 적 어머니는
노오란 국화꽃이셨다.
어두운 가을 저녁 홀로
등불을 켜 드는,

그녀의 육신을 묻고 돌아선
나의 스물아홉 살,
어머니는 이제 별이고 바람이셨다.
내 이마에 잔잔히 흐르는
흰 구름이셨다. *


* 어머니는 찬 염주를 돌리며 - 문태준

 
어느날 어머니는 찬 염주를 돌리며 하염없이 앉아만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머리를 숙이고 해진 옷을 깁고 계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꽃, 우레, 풀벌레, 눈보라를 불러모아서. 죽은 할머니, 아픈 나, 멀리 사는 외숙을 불러모아서. 조용히 작은 천조각들을 잇대시는 것이었습니다. 무서운 어둠, 계곡 안개, 타는 불, 높은 별을 불러모아서. 나를 잠재울 적에 그러했듯이 어머니의 가슴께서 가늘고 기다란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사슴벌레, 작은 새, 여덟살  아이와 구순의 할머니, 마른 풀, 양떼와 초원, 사나운 이빨을 가진 짐승들이 모두 다 알아온 가장 단순한 노래를 읊조리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부르는 노래는 찬 염주 속에 갇혀 어머니가 불러모은 것들을 차례로 돌고 돌다 명명(明明)한 겨울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

* 문태준시집[먼 곳]-창비 

 

* 어머니 6 - 정한모

어머니는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그 동그란 광택(光澤)의 씨를

아들들의 가슴에

심어 주신다.

 

씨앗은

아들들의 가슴 속에서

벅찬 자랑

젖어드는 그리움

때로는 저린 아픔으로 자라나
드디어 눈이 부신
진주가 된다
태양이 된다

검은 손이여
암흑이 광명을 몰아내듯이
눈부신 태양을
빛을 잃은 진주로
진주를 다시 쓰린 눈물로
눈물을 아예 맹물로 만들려는
검은 손이여 사라져라

어머니는

오늘도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

* 한국문학선집[시]-문학과지성사

 

* 어머니 - 김초혜

한몸이었다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었는데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일 줄 어이 알았으리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 

처음대로
한몸으로 돌아가 
서로 바뀌어 태어나면 어떠하리.

 

* 따뜻한 봄날 - 김형영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 움큼 한 움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고 가네

어머니, 지금 뭐 하시나요
꽃구경은 안 하시고 뭐 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 하시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 어머니 - 박형준

낮에 나온 반달, 나를 업고

피투성이 자갈길을 건너온

뭉툭하고 둥근 발톱이

혼자 사는 변두리 아파트 창가에 걸려 있다

하얗게 시간이 째깍째깍 흘러나가버린,

 

낮에 잘못 나온 반달이여 *

* 어머니에게 가는 길 - 장철문 
아이가 지하철 안에서 햄버거를 먹는다
어머니는 손수건을 들고
입가에 소스가 묻을 때마다 닦아낸다
아이는 햄버거를 먹는 것이 세상 일의 전부다
어머니는 침 한번 삼키는 일 없이
마냥 성스러운 것을 바라보는 얼굴이다

어머니는 저 성스러운 것에 이끌려
무화과같이 말라간다
모든 성스러운 것은 착취자들이다. *

 

* 봉숭아꽃 - 민영 
내 나이
오십이 되기까지 어머니는
내 새끼손가락에
봉숭아를 들여주셨다.

꽃보다 붉은 그 노을이
아들 몸에 지필지도 모르는
사악한 것을 물리쳐준다고
봉숭아물을 들여주셨다.

봉숭아야 봉숭아야,
장마 그치고 울타리 밑에
초롱불 밝힌 봉숭아야!


무덤에 누워서도 자식 걱정에
마른 풀이 자라는
어머니는 지금 용인에 계시단다. *

 

* 한국의 가을 - 이지엽 
우리나라 가을에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강물 끌고 달은 가응가응 수월래에 떠오르고
단풍 든 마음 하나 둘 마당귀로 모입니다
아가, 힘들지야 여윈 등을 토닥이는 밤
무릎 꺾인 사람들이 물 소리에 귀 맑힙니다
붉은 감 한 톨에도 천년 푸른 바람이 지납니다

 

*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 이승하

작은 발을 쥐고 발톱 깎아드린다
일흔다섯 해 전에 불었던 된바람은
내 어머니의 첫 울음소리 기억하리라
이웃집에서도 들었다는 뜨거운 울음소리

이 발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이 발로 폴짝폴짝
고무줄놀이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뼈마디를 덮은 살가죽
쪼글쪼글하기가 가뭄못자리 같다
굳은살이 덮인 발바닥
딱딱하기가 거북이 등 같다

발톱 깎을 힘이 없는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린다
가만히 계셔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어느 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고개를 끄덕이다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나 역시 말을 잃고 가만히 있으니
한쪽 팔로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맞닿은 창문이
온몸 흔들며 몸부림치는 날
어머니에게 안기어
일흔다섯 해 동안의 된바람 소리 듣는다. *

* 어머니 생각 - 이시영

어머니 앓아누워 도로 아기 되셨을 때
우리 부부 출근할 때나 외출할 때
문간방 안쪽 문고리에 어머니 손목 묶어두고 나갔네
우리 어머니 빈집에 갇혀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돌아와 문 앞에서 쓸어내렸던 수많은 가슴들이여
아가 아가 우리 아가 자장자장 우리 아가
나 자장가 불러드리며 손목에 묶인 매듭 풀어드리면
장난감처럼 엎질러진 밥그릇이며 국그릇 앞에서
풀린 손 내미시며 방싯방싯 좋아하시던 어머니
하루 종일 이 세상을 혼자 견딘 손목이 빨갛게 부어 있었네 *

 

* 옴마 편지 보고 만이 우서라 - 서홍관

어느 해 늦가을 어머니께서는
평생 처음 써보신 편지를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자식에게 보내셨지요.

서툰 연필 글씨로
맨 앞에 쓰신 말씀이
"옴마 편지 보고 만이 우서라."


국민학교 문턱에도 못 가보셨지만
어찌어찌 익히신 국문으로
"밥은 잘 먹느냐"
"하숙집 찬은 입에 잘 맞느냐"
"잠자리는 춥지 않느냐"


저는 그만 가슴이 뭉클하여
"만이" 웃지를 못했습니다.
오늘 밤에는
그해 가을처럼 찬 바람이 불어오는데


하숙집 옮겨 다니다가
잃어버린 편지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하릴없이 바쁘던 대학 시절,
겨울이 다 가고 봄이 올 때까지
책갈피에 끼워두고
답장도 못 해 드렸던 어머님의 편지를. *

 

* 어머니 3 - 김시천

내가

그러진 않았을까

 

동구 밖

가슴살 다 열어 놓은

고목나무 한 그루

 

그 한가운데

저렇게 큰 구멍을

뚫어 놓고서

 

모른 척 돌아선 뒤

잊어버리진 않았을까

아예, 베어버리진 않았을까 * 

 

* 엄마는 출장중 - 김중식

또 석 달 가량 집을 비우신단다

산 사람 목에 거미줄 치란 법은 없는 모양이군, 나는 생각했다

집 앞이 집 앞이니만큼

질펀한 데서 허부적거리다가 저녁에 들어오니

그저께 밥상보 위의 흰 종이

 

머리라도 자주 빗어넘기고

술 한잔이라도 두세 번에 나누어 마시거라

엄마 씀.

잠은 좀 집에서 자고

  

아무리 이래도 저래도

한세상 한평생이라는 각오를 했지만

내 삶이 점차 생활 앞에서 무릎꿇고 있다

한량 생활도 사는 건 사는 건데 이건 아닌 것 같고

치욕 없이 밥벌이할 수 있으리요마는 나는 이제 밥벌이 앞에서

性고문이라도 당할 용의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밥상 앞에서

먹고 사는 일처럼

끊을 수 있는 인연이 따로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감기 들면 몸살을 앓으시는 어머니

아! 한가하면 딴 생각 드는 법

또 석 달 가량 나는 자유다, 라고 외치자꾸나, 내 젊음에

후회는 없다, 라고

그런데 냉장고에 양념된 돼지 불고기가 있어서 그만

엄마, 소리만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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