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소나무 시 모음

효림♡ 2012. 11. 2. 08:37

 

* 소나무 - 이문구 
소나무의 이름은
솔이야
그래서 솔밭에
바람이 솔솔 불면
저도 솔솔하고
대답하며
저렇게 흔드는 거야 *

 

* 소나무에 대한 예배 - 황지우 
학교 뒷산 산책하다, 반성하는 자세로,
눈발 뒤집어쓴 소나무, 그 아래에서
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
내려왔다. 내가 내 품격을 위해서
너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
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것이
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
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이 地表위에서 가장 기품 있는
建木; 소나무, 머리에 눈을 털며
잠시 진저리친다. *

* 황지우시집[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문학과지성사


* 리기다소나무 - 정호승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한 그루 리기다소나무 같았지요
푸른 리기다소나무 가지 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던 바다의 눈부신 물결 같았지요

당신을 처음 만나자마자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솔방울이 되길 원했지요
보다 바다 쪽으로 뻗어나간 솥가지가 되어
가장 부드러운 솔잎이 되길 원했지요

당신을 처음 만나고 나서 비로소
혼자서는 아름다울 수 없다는 걸 알았지요
사랑한다는 것이 아름다운 것인 줄 알았지요 *

* 정호승시집[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열림원

 

* 소나무 숲에는 - 이상국 
소나무 숲에는 뭔가 있다
숨어서 밤 되기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은근할 수가 있는가
짐승처럼 가슴을 쓸어 내리며
모두 돌아오라고, 돌아와 같이 살자고 외치는
소나무 숲엔 누군가 있다
어디서나 보이라고, 먼데서도 들으라고
소나무 숲은 횃불처럼 타오르고 함성처럼 흔들린다
이 땅에서 나 죄 없이 죽은 사람들과
다치고 서러운 혼들 모두 들어오라고
몸을 열어놓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바람 부는 날
저렇게 안 우는 것처럼 울겠는가
사람들은 살다 모두 소나무 숲으로 갔으므로
새로 오는 아이들과 먼 조상들까지
거기서 다 만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나라 밥 짓는 연기들은
거기 모였다가 서운하게 흩어지고
소나무 숲에는 누군가 있다
저물어 불 켜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을 기다리는 누군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날마다
저렇게 먼데만 바라보겠는가 *

 

* 대결 - 이상국

큰눈 온 날 아침

부러져나간 소나무를 보면 눈부시다

 

그들은 밤새 뭔가와 맞서다가

무참하게 꺾였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을 바치기 위하여

공손하게 몸을 내맡겼던 게 아닐까

 

조금씩 조금씩 쌓이는 눈의 무게를 받으며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시점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 빛나는 자해(自害)

혹은 아름다운 마감

 

나도 때로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다. *

 

* 강릉(江陵) 소나무숲에 와서 - 박재삼 
關東大學 앞뒤 빽빽한
소나무숲에 와 서면
허전하게도 내 詩는
너무나 부끄럽고 초라하고나.

줄줄이 튕기긴 했어도
거문고 소리는 빗나가기만 한 것을.
구멍마다 입술을 축였어도
피리 소리는 많이는 헛김이 새던 것을.
새삼스럽게 어쩔까나.

그러나 여기서는 온 나무들이
하늘의 소리를
손, 발, 머리, 허리 할것없이
전신으로 받아들여

그것도 밤낮없이
가락을 빚어 내는 일말고는
딴 짓은 안하고 있는데! *

 

* 임청정(臨淸亭)소나무 - 정진규  

   배산임수(背山臨水)라는 말의 몸을 그것도 아주 잘생긴 몸을 보았다 합천과 거창에 자리하신 몇백 년 신격(神格)의 우리나라 소나무들을 찾아가 절하며 뵈었는데 조금씩 무섭고 두려웠는데 내가 들통나는 것 같았는데 거창 신원리 임청정(臨淸亭) 뒤곁 소나무는 그렇지 않았다 편안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나를 들통내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해서 편안함이란 들통나지 않음이다 그 너머를 나는 아직 실감하지 못한다 그게 바로 저것인가 허공도 비울 만큼 비워놓고 있었다 허공에도 잘 닦인 길 하나 내고 있었다 드나들 자리가 있었다 산을 뒤로 하고 물가에 서서 몇백 년 나를 기다린 배산임수(背山臨水), 말의 몸이 거기 있었다 어찌될지 모르겠으나 내 무덤을 쓸 양이면 이게 지켜지기를 바란다 *

 

* 소나무 - 마경덕

   내원사 계곡. 백 년 묵은 소나무 한 그루 쓰러져 있다. 가지를 찢고 뿌리를 뽑아 올린 바람 간 곳 없고 솔이파리 누릇누릇 땡볕에 타고 있다. 소나무는 눈을 뜨고 서서히 죽어가는 제 몸을 바라본다. 물소리는 뿌리를 적시지 못한다. 저놈의 목에 밧줄을 걸고 기증기로 끌면 일어설 수 있을까.

   병든 노모에게 속옷을 입힌다. 거웃이 사라져 밋밋한, 여섯번의 열매를 맺은 그 곳, 시든 꽃 잎 한 장 접혀 있다. 졸아든 볼기에 미끈덩 여섯 개의 보름달을 받아 안은 찰진 흔적 남아 있다. 노모가 눈으로 말한다. 내가 베어지면 그 등걸에 앉아 편히 쉬거라. 머리맡에 고요히 틀니가 놓여 있다. 앙상한 다리, 분홍 양말이 곱다. 기울어 가는 소나무 , 반 쯤 뽑힌 소나무에 링거를 꽂는다. *

 

* 늙은 소나무 - 김광규 
새마을 회관 앞마당에서
자연보호를 받고 있는
늙은 소나무
시원한 그림자 드리우고
바람의 몸짓 보여주며
백여 년을 변함없이 너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송진마저 말라버린 몸통을 보면
뿌리가 아플 때도 되었는데
너의 고달픔 짐작도 못하고 회원들은
시멘트로 밑동을 싸바르고
주사까지 놓으면서
그냥 서 있으라고 한다
아무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해도
늙음은 가장 자연스러운 일
오래간만에 털썩 주저앉아 너도
한번 쉬고 싶을 것이다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기에
몇 백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너의 졸음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백여 년 동안 뜨고 있던
푸른 눈을 감으며
끝내 서서 잠드는구나
가지마다 붉게 시드는

늙은 소나무 *

 

* 소나무 - 유자효

생각이 바르면 말이 바르다.

말이 바르면 행동이 바르다.

매운바람 찬 눈에도 거침이 없다.

늙어 한갓 장작이 될 때까지

잃지 않는 푸르름.

영혼이 젊기에 그는 늘 청춘이다.

오늘도 가슴 설레며

산등성에 그는 있다. *

 

* 소나무 - 오세영

그 어떤 이상(理想)도

사람 없이 클 수는 없다 .

대장부라 하는 것.

땅에 굳건히 뿌리를 박은 산정의 저

낙락장송을 보아라.

한 치 한 치하늘을 향해 뻗는 가지는

날카롭지만,

한 켜 한 켜 대지위에 드리우는 그 푸른 그늘은

서늘하지만

실은 가슴 깊은 곳에서 노오랗게

회진한 잿가루여.

바람 부는 사월에는

소나무도 꽃가루를 날린다.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해서 아무 것도

없다고 하지 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한 송이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

* 오세영시집[꽃피는 처녀들의 그늘 아래서]-고요아침

 

* 늙은 소나무 - 신경림

나이 쉰이 넘어야

비로소 여자를 안다고

나이 쉰이 넘어야 비로소

사랑을 안다고

나이 쉰이 넘어야

비로소 세상을 안다고

늙은 소나무들은

이렇게 말하지만

바람소리 속에서

이렇게 말하지만

 

* 구부정 소나무 - 리진
숲의 먼 끝에 한 그루 외따로
구부정 소나무가 서 있다
로씨야땅에서 보기 드문
구부정 소나무가 서 있다

그 곁을 지날 때면 언제나
가만히 눈물을 머금는다
저도 몰래 주먹을 쥔다
가슴이 소리 없이 외친다

멀리서 아끼는 사랑이
얼마나 애틋한지 아느냐
길 떠난 아들을 잊지 마라
구부정 소나무의 내 나라
 

 

* 어느 향기 - 이시영 

잘 생긴 소나무 한 그루는

매서운 겨울 내내

은은한 솔향기 천 리 밖까지 내쏘아 주거늘


잘 익은 이 세상의 사람 하나는

무릎 꿇고 그 향기를 하늘에 받았다가

꽃 피고 비오는 날

뼛속까지 마음 시린 이들에게

고루고루 나눠 주고 있나니 *

 

* 소나무 - 조용미

나무가 우레를 먹었다

우레를 먹은 나무는 암자의 삼신각 앞 바위 위에 외로 서 있다

암자는 구름 위에 있다

우레를 먹은 그 나무는 소나무다

번개가 소나무를 휘감으며 내리쳤으나

나무는 부러지는 대신

번개를 삼켜버렸다

칼자국이 지나간 검객의 얼굴처럼

비스듬히

소나무의 몸에 긴 흉터가 새겨졌다

소나무는 흉터를 꽉 물고 있다

흉터는 도망가지도 없어지지도 못한다

흉터가 더 푸르다

우레를 꿀꺽 삼켜 소화시켜버린 목울대가

툭 불거져나와 구불부불한

저 소나무는

 

* 내가 소나무 잣나무 같은 것이었을 때 - 최영철  

바늘잎나무가 사철을 사는 것은

그 뾰족한 입을 허공에 꽂고

산자락 가득 찬 공기를 배불리 빨아먹기 때문

 

단번에 잘려

기둥이나 마루판 되어서 오래 견디는 것은

그 뾰족한 침의 기억으로

달려드는 못된 것들을 모두 물리치기 때문

 

자꾸만 뾰족해지지 않으면 안되었던

제 허벅지를 찌르지 않으면 안되었던

긴긴 수절의 시간을 잊지 않았기 때문

 

꼭꼭

꾹꾹 *

* 최영철시집[그림자 호수]-창비

 

* 소나무 - 김시습(3세에 쓴 시) 

복숭아꽃 붉고 버들은 푸르러요// 

3월도 거의 지나갔는데// 

푸른 바늘에 구슬을 꿰었나요// 

솔잎에 총총 이슬이 맺혔어요// 

이슬이 반짝 눈물 글썽였어요.

 -  

桃紅柳綠三月暮,

珠貫靑針松葉露

* 세계 어린이가 함께 읽는[우리 옛 동시]중에서 -최향 옮김

 

* 詠松 - 李滉 

石上千年不老松   蒼鱗蹙蹙勢勝龍
生當絶壑臨無底   氣拂層霄壓埈峯
不願靑紅狀本性   肯隧桃李媚芳容
深根養得龜蛇骨   霜雪終敎貫大冬

 - 소나무를 읊는다 
돌 위에 자란 천 년 묵은 불노송
검푸른 비늘 같이 쭈글쭈글한 껍질 마치 날아 뛰는 용의 기세로다
밑이 안 보이는 끝없는 절벽 위에  우뚝 자라난 소나무
높은 하늘 쓸어낼 듯 험준한 산봉을 찍어 누를 듯
본성이 본래 울긋불긋 사치를 좋아하지 않으니
도리(桃李) 제멋대로 아양떨게 내버려 두며
뿌리 깊이 현무신의 기골을 키웠으니
한겨울 눈서리에도 까딱없이 지내노라 * -
이정탁 역 

* 안대회지음[선비답게 산다는 것]-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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