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 김남극
내게 첫사랑은
밥 속에 섞인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데쳐져 한 계절 냉동실에서 묵었고
연초록색 다 빠지고
취나물인지 막나물인지 분간이 안 가는
곤드레 같은 것인데
첫사랑 여자네 옆 곤드레 밥집 뒷방에 앉아
나물 드문드문 섞인 밥에 막장을 비벼 먹으면서
첫사랑 여자네 어머니가 사는 집 마당을 넘겨보다가
한때 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햇살도 한 평밖에 몸 닿지 못하는 참나무숲
새끼손가락만한 연초록 대궁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까실까실한,
속은 비어 꺾으면 툭 하는 소리가
허튼 약속처럼 들리는
곤드레 같은 것인데
종아리가 희고 실했던
가슴이 크고 눈이 깊던 첫사랑 그 여자 얼굴을
사발에 비벼
목구멍에 밀어넣으면서
허기를 쫓으면서 *
* 김남극시집[하룻밤 돌배나무 아래서 잤다]-문학동네
* 은행나무 꽃
밭가 은행나무 아래
새벽에 나가보니
눈물 같은 꽃 떨어져 있다
은행나무꽃 본 이 없다
밤에 꽃 피었다가
밤에 꽃 진다
누가 오지의 슬픔을 아랴
자정 넘어 혼자 울다
혼자 잠드니 *
* 김남극시집[하룻밤 돌배나무 아래서 잤다]-문학동네
* 봄 밤
보풀 이는 이불 홑청처럼
달은 떠서
가만히 내려다보는
마당엔
엄나무 가시가 한창
새순으로 물 길어올린다
탁상시계 소리 따라
달은 반 박자씩 가다가
엄나무 가시에 걸려
안간힘 쓴다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
헤어날 수 없는
달은 밤새 낑낑거리다가
상처가 덧나
더 크게 몸 불렸다가
동산이 훤해질 때 겨우 풀려나
서쪽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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