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 김남극

효림♡ 2013. 7. 12. 17:39

* 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 김남극

 

내게 첫사랑은
밥 속에 섞인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데쳐져 한 계절 냉동실에서 묵었고
연초록색 다 빠지고
취나물인지 막나물인지 분간이 안 가는
곤드레 같은 것인데

첫사랑 여자네 옆 곤드레 밥집 뒷방에 앉아
나물 드문드문 섞인 밥에 막장을 비벼 먹으면서
첫사랑 여자네 어머니가 사는 집 마당을 넘겨보다가

한때 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햇살도 한 평밖에 몸 닿지 못하는 참나무숲
새끼손가락만한 연초록 대궁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까실까실한,
속은 비어 꺾으면 툭 하는 소리가
허튼 약속처럼 들리는
곤드레 같은 것인데

종아리가 희고 실했던
가슴이 크고 눈이 깊던 첫사랑 그 여자 얼굴을
사발에 비벼
목구멍에 밀어넣으면서
허기를 쫓으면서 *

* 김남극시집[하룻밤 돌배나무 아래서 잤다]-문학동네

 

* 은행나무 꽃

 

밭가 은행나무 아래
새벽에 나가보니
눈물 같은 꽃 떨어져 있다

은행나무꽃 본 이 없다
밤에 꽃 피었다가
밤에 꽃 진다

누가 오지의 슬픔을 아랴
자정 넘어 혼자 울다
혼자 잠드니 *

* 김남극시집[하룻밤 돌배나무 아래서 잤다]-문학동네

 

* 봄 밤

 

보풀 이는 이불 홑청처럼

달은 떠서

가만히 내려다보는

마당엔

엄나무 가시가 한창

새순으로 물 길어올린다

탁상시계 소리 따라

달은 반 박자씩 가다가

엄나무 가시에 걸려

안간힘 쓴다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

헤어날 수 없는

달은 밤새 낑낑거리다가

상처가 덧나

더 크게 몸 불렸다가

동산이 훤해질 때 겨우 풀려나

서쪽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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