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해바라기 시 모음

효림♡ 2013. 7. 17. 17:15

 

* 해바라기 - 김광섭 
바람결보다 더 부드러운 은빛 날리는
가을 하늘 현란한 광채가 흘러
양양한 대기에 바다의 무늬가 인다


한 마음에 담을 수 없는 천지의 감동 속에
찬연히 피어난 백일의 환상을 따라
달음치는 하루의 분방한 정념에 헌신된 모습


생의 근원을 향한 아폴로의 호탕한 눈동자같이
황색 꽃잎 금빛 가루로 겹겹이 단장한
아 의욕의 씨 원광에 묻히듯 향기에 익어가니


한 줄기로 지향한 높다란 꼭대기의 환희에서
순간마다 이룩하는 태양의 축복을 받는 자
늠름한 잎사귀들 경이를 담아 들고 찬양한다 *

* 한국문학선집[시]-문학과지성사

 

* 해바라기 - 최승호 
빛의 자식인 양 보라는 듯이
원색의 꽃잎들을 펼치는
해바라기는
태양신을 섬기는 인디언
추장의 머리 같다


자기를 섬기든 말든 개의치 않고
태양신이 비틀어놓는
늙은 머리들


그래도 오로지
생명의 빛깔이 원색인 곳을 향해
해바라기는 고개를

든다. *

 

* 해바라기 - 신현정 

해바라기 길 가다가 서 있는 것 보면 나도 우뚝 서보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쓰고 벗고 하는 건방진 모자일망정

머리 위로 정중히 들어올려서는

딱히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간단한 목례를 해보이고는

내딴에는 우아하기 그지 없는

원반 던지는 포즈를 취해 보는 것이다

그럴까

해를 먹어 버릴까

해를 먹고 불새를 활활 토해낼까

그래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거겠지

오늘도 해 돌아서 왔다 *

 

* 해바라기 얼굴 - 윤동주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자
일터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
누나의 얼굴
얼굴이 숙어들어
집으로 온다. *

 

*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청년화가 L을 위하여 - 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빗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

 

* 해바라기 피는 마을 - 이성교

아무도 오지 않는 마을에
해바라기 핀다
갇혀있는 사람의 마음에도
노오란 햇살이 퍼져
온 천지가 눈부시다


지난 여름
그 어둠 속에서
열리던 빛
눈물이 비친다


이제 아무 푯대 없이
휘청휘청 해서는 안된다


바울처럼 긴 날을 걸어서
까만 씨를 심어야 한다
해바라기 피는 마을에 *

 

* 해바라기 형제 - 박목월
곰보딱지 아저씨
외딴 집에
해바라기 형 아우
돌고 있어요


큰 해바라기 빙빙
해 보고 돌고
꼬마 해바라기 빙빙
구름 보고 돌고 *

 

* 해바라기집 - 오철수

詩를 써서, 만약에

돈을 벌게 되어 근교 어디쯤에 집을 사게 된다면

나는 마당에 뒤란에 담장 옆에

해바라기를 엄청나게 많이 심을 것이다 하여

이웃들이 해바라기집이라고 부르고

잠깐 다니러 온 이들도 우리집을 보며 해바라기집이라고 부르고

머리 희끗희끗한 내 처가 출퇴근하는 것을 보고는

논 건너 아랫마을 분이 '저기 해바라기집 안사람이야'라고 소개하고

아들도 해바라기집 아들로 불리고

친정 나들이하는 딸도 해바라기집 딸로 불리고

가끔 호주머니에 돈이 없어 외상 신세지는

동네구멍가게 장부에도 '해바라기'로 적히도록

해바라기를 많이 아주 많이 심을 것이다

마당이 온통 노란 날 내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내 집에 처음 오는 이들도 버스기사에게

상갓집이라고 묻지 않고

해바라기집이 어디냐고 물을 수 있게

 

만약에 내가 詩를 써서 돈을 벌어.....*

 

* 해바라기 - 박성우 

담 아래 심은 해바라기 피었다

 

참 모질게도 딱,

등 돌려 옆집 마당보고 피었다

 

사흘이 멀다 하고

말동무하듯 잔소리하러 오는

혼자 사는 옆집 할아버지 웬일인지 조용해졌다

 

모종하고 거름내고 지주 세워주고는

이제나 저제나 꽃 피기만 기다린 터에

야속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여

해바라기가 내려다보는 옆집 담을 넘겨다보았다

 

처음 보는 할머니와

나란히 마루에 걸터앉은

옆집 억지쟁이 할아버지가

할머니 손등에 슬몃슬몃 손 포개면서,

 

우리 집 해바라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

 

* 해바라기에 두 팔이 있었더라면 - 최승호 

   해가 중천에 솟아 있는데, 키가 껑충한 해바라기는 넘어져 있다. 해바라기에 짧게나마 두 팔이 있었더라면, 저렇게 땅에 얼굴을 처박듯이 쓰러져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로 누워 있는 해바라기의 얼굴, 석가도 저런 자세로 열반에 드셨다. 길 위에서의 열반, 그곳에 와서 그곳으로 가는, 길 위에서의 죽음, 그러나 오로지 한자리에 서 있는 삶을 고집하던 해바라기는, 뿌리 밑에 늙은 얼굴을 파묻을 듯이, 긴 여름의 해를 등진 채 넘어져 있다.

 

* 해바라기에게 - 이해인

해님의 얼굴은
보고 또 보아도
자꾸만 보고 싶어
어느새 키만 훌쩍 컸구나
해바라기야

해님의 음성은
듣고 또 들어도
자꾸만 듣고 싶어
귀를 너무 세우다가
머리까지 너무 무거워
고개를 떨구었구나

그래
옆 친구와는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그리움이 하도 깊어
어느새 까맣게 가슴이 탔구나
해바라기야

 

* 해바라기꽃 - 오세영 
꽃밭도 텃밭도 아니다.
울가에 피는

해바라기,
모든 꽃들이 울안의 꽃밭을 연모할 때도
해바라기는
저 홀로

울 밖을 넘겨다본다.
푸른 하늘이 아니다.
빛나는 태양이 아니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산과 들
그리고 지상의 인간,
신(神)은 머리 위에 있지만
인간은 항상

그 앞에 서 있다.
모든 꽃들이 다투어 위로 위로 꽃잎을
피워 올릴 때 다만
앞을 향해서 꽃눈을 틔우는
해바라기,
흔히 꽃 같은 처녀라 하지만
해바라기는
인간이 피워 올리는 꽃이다. *

* 오세영시집[꽃피는 처녀들의 그늘 아래서]-고요아침

 

* 해바라기 - 박희진     
해바라기는
가장 해에 가까울밖엔 없다.
둥둥 하늘 높이 홀로 솟아
일심으로 해만을 사모하는.
밤이면 말없이 돌아와 있다가도
첫 새벽빛을 받자마자
이미 해바라기는 시위를 떠난
화살, 땅 위엔 없다.

하지만 보라
서릿발 나린 시월 어느 아침
돌아온 해바라기ㅡ
까맣게 타서, 여름의 종언인 양
땅 위에 깊숙이 드리운 결실.
그 황금의 햇살을 받아
온 여름내 해만을 사모하던 보람이 있어
씨마다 알알이 잉태한 해의
무게로 이렇게 떨어져 온 것이다.

해바라기의
고향은 하늘나라.
여름은 다시
땅에 묻히었던 씨 안의 해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시절.
밤이면 말없이 돌아와 있다가도
첫 새벽빛을 받자마자
이미 해바라기는
땅 위엔 없다. *

* 박희진시집[미래의 시인에게]-우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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