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부부 시 모음

효림♡ 2013. 8. 13. 09:53

* 부부 - 김소월

오오 안해여, 나의 사랑!
하늘이 묶어준 짝이라고
믿고 살음이 마땅치 아니한가.
아직 다시 그러랴, 안 그러랴?
이상하고 별나운 사람의 맘,
저 몰라라, 참인지 거짓인지?
정분(情分)으로 얽은 딴 두 몸이라면.
서로 어그점인들 또 있으랴.
한평생(限平生)이라도 반백년(半百年)
못 사는 이 인생(人生)에!
연분(緣分)의 긴 실이 그 무엇이랴?
나는 말하려노라, 아무려나,
죽어서도 한 곳에 묻히더라. *

 

* 부부 - 정가일

은사시나무가

온몸으로 비를 맞고 서 있다.

그 옆에 나도

온몸으로 비를 맞고 섰다.

그렇게 우리는

은사시나무가 되었다.

 

* 부부 - 오창렬

늘 허투루 나지 않은 고향 길
장에나 갔다 오는지 보퉁이를 든 부부가
이차선 도로의 양 끝을 팽팽하게 잡고 걷는다
이차로 간격의 지나친 내외가
도시 사는 내 눈에는 한없이 촌스러웠다
속절없는 촌스러움 한참 웃다가
인도가 없는 탓인지도 모르지
사거니 팔거니 말싸움을 했을지도 몰라
나는 또 혼자 생각에 자동차를 세웠다
차가 드물어 한가한 시골길을
늙어가는 부부는 여전히 한쪽씩 맡아 걷는다
뒤돌아봄도 없는 걸음이 경행(經行) 같아서
말싸움 같은 것은 흔적도 없다
남편이 한쪽을 맡고 또 한쪽을 아내가 맡아
탓도 상처도 밟아 가는 양 날개
안팎으로 침묵과 위로가 나란하다
이런저런 궁리를 따라 길이 구불거리고
묵묵한 동행은 멀리 언덕을 넘는다
소실점 가까이 한 점 된 부부
언덕도 힘들지 않다 *

* 오창렬시집[서로 따뜻하다]-황금알

 

* 부부 - 함민복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

 

* 부부 - 문정희  
부부란
무더운 여름밤 멀찍이 잠을 청하다가
어둠 속에서 앵하고 모기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둘이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너무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꽃만 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어디 나머지를 바를 만한 곳이 없나 찾고 있을 때
아내가 주저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어 미는 사이이다
그 자리를 문지르며 이 달에 너무 많이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문득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효화 시키는 긴 과정 이지만
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부부란 어떤 이름으로도 젤 수 없는
백년이 지나도 남는 암각화처럼
그것이 풍화되는 긴 과정과
그 곁에 가뭇없이 피고 지는 풀꽃더미를
풍경으로 거느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네가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내 손을 한번 쓸쓸히 쥐었다 펴보는 그런 사이이다
부부란 서로를 묶는 것이 쇠사슬인지
거미줄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묶여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느끼며
어린새끼들을 유정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이이다 

 

* 접목(接木) - 복효근
늘그막의 두 내외가
손을 잡고 걷는다
손이 맞닿은 자리, 실은
어느 한쪽은 뿌리를 잘라낸
다른 한쪽은 뿌리 윗부분을 잘라낸
두 상처가 맞닿은 곳일지도 몰라
혹은 예리한 칼날이 내고 간 자상에
또 어느 칼날에도 도리워진 살점이 옮겨와
서로의 눈이 되었을지도 몰라
더듬더듬 그 불구의 생을 부축하다보니 예까지 왔을 게다
이제는 이녁의 가지 끝에 꽃이 피면
제 뿌리 환해지는,
제 발가락이 아플 뿐인데
이녁이 몸살을 앓는,
어디까지가 고욤나무고
어디까지가 수수감나무인지 구별할 수 없는
저 접목
대신 살아주는 생이어서
비로소 온전히 일생이 되는

 

* 노부부(老夫婦) - 구상

아름다운 오해로

출발하여

참담(慘憺)한 이해에

도달했을까!

 

우리는 이제

자신보다도 상대방을

더 잘 안다.

 

그리고 오히려

무언(無言)으로 말하고

말로써 침묵한다.

 

서로가 살아오면서

야금야금 시시해지고

데데해져서

아주 초라해진 지금

두 사람은 안팎이

몹시 닮았다. *

 

* 늙은 부부 - 공광규
오래 살아서
등이 굽은 소나무 두 그루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수저질 한다

푹 익은 된장과 고추장 담고
뚜껑에 흰 눈 수북이 얹고 있는
겨울 장독 항아리 풍경이다

늙은 부부는 머지않아
흰 쌀밥 수북한 제사상 놋쇠 밥그릇으로
같이 앉아 있을 것이 분명하다

 

* 노부부 - 이문조
아침 산책길
언제나 만나는 노부부

지팡이 짚고
나란히
참 정다웁구나

저분들은
부부싸움이란 말
모를 거야

어젯밤에도
한바탕 전쟁을 치른
내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 부부 - 황성희 
낱말을 설명해 맞추는 TV 노인 프로그램에서
천생연분을 설명해야 하는 할아버지
'여보 우리 같은 사이를 뭐라고 하지?'
'웬수'
당황한 할아버지 손가락 넷을 펴 보이며
'아니, 네 글자'
'평생 웬수'

어머니의 눈망울 속 가랑잎이 떨어져 내린다
충돌과 충돌의 포연 속에서
본능과 본능의 골짜구니 사이에서
힘겹게 꾸려온 나날의 시간들이
36.5 말의 체온 속에서

사무치게 그리운
평생의 웬수 *

 

* 夫婦 - 김종길
어두운 부뚜막이나
낡은 탁자 위 같은 데서
어쩌다 비쳐드는 저녁 햇살이라도 받아야//
잠시 제 모습을 드러내는

한 쌍의 빈 그릇,//
놋쇠든, 사기이든, 오지든
오십 년이 넘도록 하루같이 함께

붙어다니느라 비록 때묻고 이 빠졌을망정,//
늘 함께 있어야만 제격인

사발과 대접,//
적잖은 자식 낳아 길러
짝지워 다 내어보내고
이제는 둘만 남아,//

이렇게 이따금 서로의 성근 흰머리칼,
눈가의 잔주름 눈여겨 바라보며,//
깨어지더라도

함께 깨어질 수는 없는 것일까,
부질없이 서로 웃으며 되새겨보면,//
창밖엔 저무는 날의 남은 햇빛,//
그 햇빛에 희뜩이는 때아닌 이슬 방울.

 

* 산다는 것 - 나호열

  집으로 돌아가는 촌로 부부를 태웠다. 직업이 뭐요? 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칩니다. 아!. 그거 좋지. 난 배우는 사람이요, 땡감만 열려 매년 골탕 먹이는 감나무한테, 삽질, 쇠스랑질에 돌만 솟아오르는 땅한테, 제멋대로 비 뿌리고 제멋대로 비 거두어 가는 하늘에......

옆에서 할머니가 거들었다. 소득 없는 일에 저렇게 매달리는 법만 평생 배워야 소용없소, 거두어들일 줄 알아야지. 

  논둑에 깨가 한창이었다. 아, 저 깨들 좀 봐. 정말 잘 영글었네, 내 새끼들 같다니까. 올해 깨 심었는데 내 눈에는 깨 밖에 안 보여, 온통 깨 밖에 없다니까, 말 못하는 저것들도 사람 정성은 알지, 마음 좋게, 편하게 정성을 다하면 보답을 한다니까, 아! 저 영근  깨들 좀 봐요, 저 주인네 참 실한 사람이겠구먼 

  산소 가는 길, 집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두 노인네 다시 터벅터벅 사라져 갔다.

 

* 남편과 나편 - 이대흠

동네에서는 부끄러워 배우러 다니지 못했다며

한 시간 거리인 나주에서

한글 배우러 다니는 남평 할머니

버스 타고 오시냐는 말에 빙그레 웃기만 하더니

받아쓰기 시간에 속마음을 다 들켰다

우리나라를 우리나라로

아버지를 아버지로

어머니를 어머니로 똑바로 잘 썼는데

남편을 쓰랬더니

또박또박

나편이라고

바르게 틀렸다

남편을 써보라니까요

다시 말해도

어떻게 영감님을 남의 편이냐고 하냐며

그건 잘못된 말이라고

끝까지 나편이란다

 

* 연리지(蓮理枝) - 정끝별     

너를 따라 묻히고 싶어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열 길 땅속에 들 한 길 사람 속에 들어
너를 따라 들어
외롭던 꼬리뼈와 어깨뼈에서
흰 꽃가루가 피어날 즈음이면
말갛게 일어나 너를 위해
한 아궁이를 지펴 밥 냄새를 피우고
그물은 달빛 한 동이에 삼베옷을 빨고
한 종지 치자 향으로 몸단장을 하고
살을 벗은 네 왼팔뼈를 베게 삼아
아직 따뜻한 네 그림자를 이불 삼아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오래된 잠을 자고 싶어
남아도는 네 슬픔과 내 슬픔이
한 그루 된
연리지 첫 움으로 피어날 때까지
그렇게 한없이 누워 * 
 

* 정끝별시집[삼천갑자 복사빛]-민음사

 

* 연리지(蓮理枝) - 황봉학  
손 한번 맞닿은 죄로
당신을 사랑하기 시작하여
송두리째 나의 전부를 당신에게 걸었습니다
이제 떼어놓으려 해도 떼어놓을 수 없는 당신과 나는
한 뿌리 한 줄기 한 잎사귀로 숨을 쉬는
연리지(連理枝)입니다

단지 입술 한번 맞닿은 죄로
나의 가슴 전부를 당신으로 채워버려
당신 아닌 그 무엇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는
몸도 마음도 당신과 하나가 되어버려
당신에게만 나의 마음을 주는
연리지(連理枝)입니다

이 몸 당신에게 주어버린 죄로
이제 한 몸뚱어리가 되어
당신에게서 피를 받고
나 또한 당신에게 피를 나누어주는
어느 한 몸 죽더라도
그 고통 함께 느끼는 연리지(連理枝)입니다

이 세상 따로 태어나
그 인연 어디에서 왔기에
두 몸이 함께 만나 한 몸이 되었을까요
이 몸 살아가는 이유가 당신이라 하렵니다
당신의 체온으로 이 몸 살아간다 하렵니다
당신과 한 몸으로 살아가는 이 행복
진정 아름답다 하렵니다.
* 연리지(連理枝) - 두 나뭇가지가 맞닿아서 같이 살아감,
서로 맘이 통하는 것으로 부부 또는 연인을 비유하는 말. 
 

 

* 산등성이 - 고영민 

   팔순의 부모님이 또 부부싸움을 한다. 발단이 어찌됐든 한밤중, 아버지는 장롱에서 가끔 大小事가 있을 때 차려입던 양복을 꺼내 입는다. 내 저 답답한 할망구랑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죄 없는 방문만 걷어차고 나간다. 나는 아버지께 매달려 나가시더라도 날이

밝은 내일 아침에 나가시라 달랜다. 대문을 밀치고 걸어나가는 칠흑의 어둠 속, 버스가 이미 끊긴 시골마을의 한밤, 아버지는 이참에 아예 단단히 갈라서겠노라 큰소리다. 나는 싸늘히 등돌리고 앉아있는 늙은 어머니를 다독여 좀 잡으시라고 하니, 그냥 둬라, 내가

열일곱에 시집와서 팔십 평생 네 아버지 집 나간다고 큰소리치고는 저기 저 등성이를 넘는 것을 못봤다. 어둠 속 한참을 쫓아 내달린다. 저만치 보이는 구부정한 아버지의 뒷모습, 잰걸음을 따라 나도 가만히 걷는다. 기세가 천 리를 갈 듯하다. 드디어 산등성, 고요하게 잠든 숲의 정적과 뒤척이는 새들의 혼곤한 잠속, 순간 아버지가 걷던 걸음을 멈추더니 집 쪽을 향해 소리를 치신다. 에이, 이 못된 할망구야, 서방이 나간다면 잡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이 못된 할망구야, 평생을 뜯어먹어도 시원찮을 이 할망구, 뒤돌아 식식거리며 아버지 집으로 천릿길을 내닫는다. 지그시 웃음을 물고 나는 아버지를 몰고 온다. 어머니가 켜놓은 대문 앞 전등불이 환하다.

아버지는 왜, 팔십 평생 저 낮은 산등성이 하나를 채 넘지 못할까. *

* 고영민시집[악어]-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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