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낙엽 시 모음

효림♡ 2013. 10. 24. 10:01

* 낙엽 - 김상옥

맵고 차운 서리에도 붉게붉게 타던 마음
한 가닥 실바람에 떨어짐도 서럽거늘
여보소 그를 어이려 갈구리로 긁나뇨

떨어져 구을다가 짓밟힘도 서럽거든
티끌에 묻힌 채로 썩일 것을 어이 보오
타다가 못다 탄 한을 태워줄까 하외다. 

 

* 낙엽끼리 모여 산다 - 조병화  
낙엽에 누워 산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
아, 나의 육체는 낙엽 속에 이미 버려지고
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마시고 산다.


비 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
비 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
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에 누워 산다.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 *

* 신경림엮음[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글로세움

 

* 낙엽소리 - 이생진 
이거야
가을의 꽃이불
바로 이거야
나를 그 위에 눕게 하고
누워서 백운대 넘어가는
구름을 보며
이거야 바로 이거
나는 하루종일 아이가 되어
뒹글뒹글 놀다가
어미가 그리우면
아이처럼 울고
이거야 이거 *

 

* 낙엽 - 이생진 
한 장의 지폐보다
한 장의 낙엽이 아까울 때가 있다
그때가 좋은 때다
그때가 때묻지 않은 때다
낙엽은 울고 싶어하는 것을
울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은 기억하고 싶어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은 편지에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엽을 간직하는 사람은
사랑을 간직하는 사람
새로운 낙엽을 집을 줄 아는 사람은
기억을 새롭게 갖고 싶은 사람이다

 

* 낙엽 - 최춘해

낙엽에 발목이 푹푹 빠지는

산길을 걷는다.

한 발자국씩 옮길 때마다

부스럭 부스럭

낙엽이 소리를 내준다.

산새소리도 좋지만

낙엽이 내는 소리가 좋다.

낙엽길이 이어져서 좋다.

낙엽소리 속에는

봄을 재촉하는 보슬비 소리

벌 나비들의 날갯짓소리

무더운 여름날 소나기 소리

도토리가 살찌는 소리

번갯불 번쩍이며 내는 우렛소리
조용조용 흐르는 산골짝 물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
가을을 재촉하는 풀벌레 소리
갖가지 소리들이 들어 있다.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욕심이 가라앉는다.
가슴이 넓어진다.

 

* 늦가을 낙엽은 지고 - 남낙현

찬비가 세차게 내리더니

늦가을 낙엽은 지고

마지막 남은 잎새마저

다 떨군 나무는

1년 동안 가꾸어온

삶의 무게를 다 벗어던졌구나.

 

이리저리

발밑에 구르는 낙엽은

누군가 이승에 벗어놓고 간

햇살 한 줌

그리움 한 줌

슬픔 한 줌

추억 한 줌 *

 

*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 - 정호승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왜 낮은 데로 떨어지는지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시월의 붉은 달이 지고

창밖에 따스한 불빛이 그리운 날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한 잎 낙엽으로 썩어

다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을 사랑하라

해마다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 *

* 정호승시집[여행]-창비

 

* 낙엽 - 이해인
낙엽은 나에게 살아 있는 고마움을 새롭게 해주고,
주어진 시간들을 얼마나 알뜰하게 써야할지 깨우쳐준다.
낙엽은 나에게 날마다 죽음을 예비하며 살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이승의 큰 가지 끝에서 내가 한 장 낙엽으로 떨어져
누울 날은 언제일까 헤아려보게 한다.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내 사랑의 나무에서 날마다 조금씩 떨어져나가는
나의 시간들을 좀더 의식하고 살아야겠다.

 

* 낙엽 - 이재무 
시를 지망하는 학생이 보내온
시 한 편이 나를 울린다
세 행짜리 짧은 시가 오늘밤 나를
잠 못 이루게 한다

"한 가지에서 나서 자라는 동안
만나지 못하더니 낙엽 되어 비로소
바닥에 한 몸으로 포개져 있다"

그렇구나 우리 지척에 살면서도
전화로만 안부 챙기고 만나지 못하다가
누군가의 부음이 오고 경황 중에 달려가서야
만나는구나 잠시잠깐 쓸쓸히 그렇게 만나는구나
죽음만이 떨어져 멀어진 얼굴들 불러 모으는구나

* 낙엽에게 - 나호열 
나무의 눈물이라고 너를 부른 적이 있다
햇빛과 맑은 공기를 버무리던 손
헤아릴 수 없이 벅찼던 들숨과 날숨의
부질없는 기억의
쭈글거리는 허파
창 닫히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
더 이상 슬픔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하였다
슬픔이 감추고 있는 바람, 상처, 꽃의 전생
그 무수한 흔들림으로부터 떨어지는,
허공을 밟고 내려오는 발자국은
세상의 어느 곳에선가 발효되어 갈 것이다.
기다리지 않는 사람에게 슬픔은 없다, 오직
고통과 회한으로 얼룩지는 시간이 외로울 뿐
슬픔은 술이 되기 위하여 오래 직립한다
뿌리부터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취기가 없다면
나무는 온전히 이 세상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너는 나무의 눈물이 아니다
너는 우화를 꿈꾼 나무의 슬픈 날개이다

 

* 낙엽 - 유치환

너의 추억을 나는 이렇게 쓸고 있다. *

 

* 낙엽 - 허만하 
손바닥으로 턱을 괴고 긴 의자에 앉아있던 사나이가 자리를 떠났다.
누군가 그의 모습을 하고 비어 있는 그 자리에 앉아있다. 바람이다.

 

* 낙엽 - 정호승 
내 가는 길을 묻지 마세요
언제 돌아오느냐고 묻지 마세요
가을이 가고 또 가을이 가면
언젠가는 그대 실뿌리 곁에
살며시 살며시 누워 있겠어요

 

* 낙엽(落葉) - 조남두 

하늘에서 내린다면 어떨까

짝 잃은 날짐승이 외롭게 울다가 지쳐

땅 위에 뒹군다면 어떨까

 

볼수록 저것은

슬픈

고독(孤獨)의 그림자

 

어디서 누군지 목메어 찾고 있을

슬픈 사랑의 이름인지 몰라

몰라

 

* 낙엽 - 정현종

사람들 발길이 낸

길을 덮는 낙엽이여

의도한 듯이

길들을 지운 낙엽이여

길을 잘 보여주는구나

마침내 네가 길이로구나 *

 

* 낙엽 - 정현종

낙엽은

발바닥으로 하여금

자기의 말을

경청하게 한다.

(은행잎이든 단풍잎이든)

낙엽은

스스로가

깊어지는 생각

깊어지는 느낌으로서

즉시

그 깊어지는 것들을

뿌리내리게 한다.

낙엽은 하나하나

깊은 느낌의 뿌리이다.

그 뿌리에서 자라 다시

낙엽은 지고,

떨어진 잎들은

마음의 허공에

다시

떨어진다.

마음의 허공에서

한없이 깊어지는

땅.

 

* 낙엽 - 복효근

떨어지는 순간은

길어야 십여 초

그 다음은 스스로의 일조차 아닌 것을

무엇이 두려워

매달린 채 밤낮 떨었을까 

 

애착을 놓으면서부터 물드는 노을빛 아름다움

마침내 그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죽음에 눈을 맞추는

찬란한

신.

 

* 조용한 일 -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 밝은 낙엽 -황동규 시인의 최근 시를 보며 - 정희성 

가파를 것도 없는 산길 오르다가

돌부리에 걸려 내 몸 패대기쳤습니다

단풍잎 손바닥에서 피가 흘렀지만

넘어진 김에 한참 주저앉아 있었지요

때 이르게 물든 나뭇잎 하나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병이 들어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이

누선(淚腺)을 건드리며 떨어져내립니다

언젠가 나도 삶을 송두리째

패대기쳐야 할 날이 오겠지요

그날을 위해 저 나뭇잎의 조용한

착지법을 익히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자면 욕망으로 가득 찬 육신과 영혼의

무게를 한참은 더 덜어내야 하겠지만요 *

* 정희성시집[그리운 나무]-창비

 

* 바람이 부오 - 나태주  

바람이 부오

이제 나뭇잎은 아무렇게나 떨어져

땅에 딩구오

나뭇잎을 밟으면

바스락 소리가 나오

그대 내 마음을 밟아도

바스락 소리가 날는지

 

* 낙엽 - 레미 드 구르몽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 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 낙엽 - 윌리엄 B. 예이츠  

가을이 우리를 사랑하는 기다란 잎새 위에,  
보릿단 속 생쥐 위에도 머뭅니다.
머리 위 마가목 잎이 노랗게 물들고
이슬 젖은 산딸기 잎새도 노랗습니다. 

 

사랑이 이울어가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슬픈 우리 영혼은 지금 피곤하고 지쳐 있습니다.
헤어집시다. 정열의 계절이 우리를 잊기 전에
그대 숙인 이마에 입맞춤과 눈물을 남기며. *

The Falling of the Leavers - William Butler Yeats
AUTUMN is over the long laevers that love us,
And over the mice in the barley sheavers;
Yellow the laevers of the rowan above us,
And yellow the wet wild-strawberry leavers.
The hour of the waning of love has beset us,
And weary and warn are our sad souls now;
Let us part, are the season forget us,
With a kiss and a tear on the drooping brow.

* 장영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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