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손 시 모음

효림♡ 2013. 11. 4. 08:30

* 조용히 손을 내밀었을 때 - 이정하 

내가 외로울 때 누가 나에게 손을 내민 것처럼

나 또한 나의 손을 내밀어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다

그 작은 일에서부터 우리의 가슴이 태워진다는 것을

새삼 느껴보고 싶다


그대여 이제 그만 마음 아파하렴 *

* 이정하시집[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푸른솔

 

* 손 - 박남수 

그냥 헤어질 수는 없어야 했을 것이었다

내 손으로 그의 손을 잡고

울든가 어쨌어야 했을 것이었다

나도 그랬고 그도 그랬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손을 내밀지는 않았다

그도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헤어지지 않았으면

그나 내가 얼마나 좋았을 것인가

 

전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저 손을 잡는 것만은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다시 보면 역시 그는

무엇인가 뜻 모를 웃음을 웃으며 있었다

자기만이 누릴 수 있는 그 혼자의 기쁨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있던 그도

혼자서는 버스를 내릴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나는 헤어져 가며 부끄러운 손을 내려다보았을 뿐이었다

 

조국을 지키던 그 자리에

두손을 그는 두고 온 것이었다

그에게는 손이, 손이 없었던 것이었다

 

* 손 - 박남수 

물상이 떨어지는 순간,
휘뚝, 손은 기울며
허공에서 기댈 데가 없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손은 소유하고
또 놓쳐 왔을까.

잠깐씩 가져 보는
허무의 체적(體積).

그래서 손은 노하면
주먹이 된다.
주먹이 풀리면
손바닥을 맞부비는
따가운 기운이 된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손은
빈 짓만 되풀어 왔을까.

손이
이윽고 확신한 것은,
역시 잡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뿐이었다.

 

* 손 - 이성복 
손, 타인의 손, 얼굴보다 더 늙은 손은 너의 가슴을

향해 온다 한번도 잡아주지 못한 손, 타인의 여윈 손

* 그 사람의 손을 보면 - 천양희 
구두 닦는 사람의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구두 끝을 보면
검은 것에서도 빛이 난다
흰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창문 닦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창문 끝을 보면
비누거품 속에서도 빛이 난다
맑은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청소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길 끝을 보면
쓰레기 속에서도 빛이 난다
깨끗한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마음 닦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마음 끝을 보면
보이지 않는 것에서도 빛이 난다
보이는 빛만이 빛은 아니다
닦는 것은 빛을 내는 일

성자가 된 청소부는
청소를 하면서도 성자이며
성자이면서도 청소를 한다.

 

* 손의 고백 - 문정희 
가만히 손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우리의 손이 언제나 욕망을 쥐는 데만
사용되고 있다는 말도 거짓임을 압니다
솨아솨아 작은 오솔길을 따라가 보면
무엇을 쥐었을 때보다
그저 흘려보낸 것이 더 많았음을 압니다
처음 다가든 사랑조차도
그렇게 흘러보내고 백기처럼
오래 흔들었습니다
대낮인데도 밖은 어둡고 무거워
상처 입은 짐승처럼
진종일 웅크리고 앉아
숨죽여 본 사람은 압니다
아무 욕망도 없이 캄캄한 절벽
어느새 초침을 닮아버린 우리들의 발걸음
집중 호우로 퍼붓는 포탄들과
최신식 비극과
햄버거처럼 흔한 싸구려 행복들 속에
가만히 손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생매장된 동물처럼
일어설 수도 걸어갈 수도 없어
가만히 손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솨아솨아 흘려 보낸 작은 오솔길이
와락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 몸의 신비, 혹은 사랑 - 최승호 
벌어진 손의 상처를
몸이 스스로 꿰매고 있다 
의식이 환히 깨어 있든
잠들어 있든
헛것에 싸여 꿈꾸고 있든 아랑곳없이
보름이 넘도록 꿰매고 있다 
몸은 손을 사랑하는 모양이다 
몸은 손이 달려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모양이다 

구걸하던 손, 훔치던 손 
뾰족하게 손가락들이 자라면서
빼앗던 손, 그렇지만
빼앗기면 증오로 뭉쳐지던 주먹 
꼬부라지도록 손톱을
길게 기르며
음모와 놀던 손, 매음의 악수 
천년 묵어 썩은 괴상한 우상들 앞에
복을 빌던 손 
그 더러운 손이 달려 있는 것이
몸은 부끄럽지 않은 모양이다 

벌어진 손의 상처를
몸이 자연스럽게 꿰매고 있다 
금실도 금바늘도 안 보이지만
상처를 밤낮없이 튼튼하게 꿰매고 있는
이 몸의 신비 
혹은 사랑 *

 

* 당신의 손 - 정호승   
나는 누구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손을 먼저 살펴본다.
그것은 그의 손이 그의 삶의
전부를 말해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 사람과 악수를 해보고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여러 가지

감도를 통해
그가 어떠한 직업을 가졌으며
어떠한 삶을 살아왔으며
성격 또한 어떠한지를 잘 알 수 있는 것은
손이 바로 인간의 마음의 거울이자
삶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 천 개의 손 - 나희덕 
그의 손은 천 개나 되고요
머리에 얹은 화불 또한 헤아릴 수 없어
손으로 잡으려 하면 뿔뿔이 달아나버렸지요

대체 그 많은 손을 어디에 쓰나
갸웃거리며 계단을 더듬더듬 내려오는데

아, 천 개의 싸릿가지가 지나간 마당

고통의 소리를 본다는 그가
사람 마음에 따라
서른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그가
내게는 싸리비 든 손으로 와서
흙알갱이 어지러운 마음 바닥을 쓸고 갔네요

갑자기 눈앞이 환해져
나는 한 걸음도 내려서지 못하고
구름 난간 같은 계단에 앉아
빈 마당만 소슬하게 들여다보았지요

마음을 지나는 소나기떼처럼
싸리비 닳는 소리 아직 들리는 것 같아서요

 

* 목수의 손 - 정일근

태풍에 무너진 담을 세우려 목수를 불렀다. 나이가 많은 목수였다. 일이 굼떴다. 답답해서 일은 어떻게 하나 지켜보는데 그는 손으로 오래도록 나무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못 하나를 박았다. 늙은 목수는 자신의 온기가 나무에게 따뜻하게 전해진 다음 그 자리에 차가운 쇠못을 박았다. 그 때 목수의 손이 경전처럼 읽혔다. 아하, 그래서 木手구나. 생각해보니 나사렛의 그 사내도 목수였다. 나무는 가장 편안한 소리로 제 몸에 긴 쇠못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 효자손 - 공광규

우체국 앞 가로수 곁에
아낙네가 죽제품 좌판을
벌여 놓았다 대나무로 만든
광주리와 키와 죽침 따위에 섞여
효자손도 눈에 띄었다 건널목
신호등이 황급하게 깜빡이지 않았더라면
그 조그만 대나무 등긁이를 하나
사 왔을지도 모른다
노인성 소양증만 남고
물기 말라 버려 가려운 등을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장난삼아
간질간질 긁어 주던
고사리 같은 손
이 작은 효자손이 어느새 자라서 군대에 갔다
옆에는 나직한 숨결마저 빈자리
어둔 창밖으로 누군가 지나가며
빨리 떠나라고
휴대폰 거는 소리
뒤에서 슬며시 등을 떠미는 듯
보이지 않은 손
벽오동 잎보다 휠씬
커다란 손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부드러운 손

 

* 손에 대한 예의 - 정호승
가장 먼저 어머니의 손등에 입을 맞출 것
하늘 나는 새를 향해 손을 흔들 것
일 년에 한번쯤은 흰 눈송이를 두 손에 고이 받을 것
들녘에 어리는 봄의 햇살은 손 안에 살며시 쥐어볼 것
손바닥으로 풀잎의 뺨은 절대 때리지 말 것
장미의 목을 꺾지 말고 때로는 장미가시에 손가락을 찔릴 것
남을 향하거나 나를 향해서도 더 이상 손바닥을 비비지 말 것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지폐를 헤아리지 말고
눈물은 손등으로 훔치지 말 것
손이 멀리 여행가방을 끌고 갈 때는 깊이 감사할 것
더이상 손바닥에 못 박히지 말고 손에 피 묻히지 말고
손에 쥔 칼은 항상 바다에 버릴 것
손에 많은 것을 쥐고 있어도 한 손은 늘 비워둘 것
내 손이 먼저 빈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자주 잡을 것

하루에 한번씩은 꼭 책을 쓰다듬고

어둠 속에서도 노동의 굳은살이 박힌 두 손을 모아

홀로 기도할 것 *

* 정호승시집[여행]-창비

 

* 손을 흔든다는 것 - 정호승

잘 있어라

눈빛은 차마 너를 보지 못하고

잘 가거라

마른침을 삼키며

호스피스 병동 병실에 누워

마지막으로 너를 향해

손을 흔든다는 것

창가의 어린 나뭇가지를 향해

나뭇가지에 앉은 흰 눈송이를 향해

차마 슬프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천천히 손을 흔든다는 것

인간이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말없이 손을 흔든다는 것

그것은 풀잎이 땅을 흔든다는 것

별들이 밤하늘을 흔든다는 것

그래도 어디에서든

그 어느 때든

다시 만나자는 것 *

* 정호승시집[여행]-창비

 

* 공손한 손 - 고영민

추운 겨울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밥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공손히
손부터 올려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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