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가을 선암사 - 강제윤

효림♡ 2014. 9. 1. 09:00

* 가을 선암사 - 강제윤

 

선암사 버스 대합실
노보살님들 불공드리고 내려와 버스를 기다리신다.
부처님께서 챙겨주셨는가.
보살님들 등에 맨 바랑이 산밤, 은행, 산열매로 가득하다.

차가 왜 이리 늦는디야
암튼, 절에 댕겨오니께 좋구먼
절에 갈라고 베를 부랴부랴 빗제
한하고 햇빛 좋아 나락을 다 말래 놓고 담기만 하먼 되는디
그새 오밤중이 되아부렀제.

그래도 절에 갈라고, 어찻든지 낼은 절에 갈라고
새벽 시시까장 나락을 푸대에 담았어
하늘엔 구름 한나 없이 별이 총총한디
담날 담아도 되는디 기어코 담았제
절에 갈라고 어찻든지 낼은 절에 갈라고.

영감은 한테로 모타만 주고 주무시러 드러가싯고
혼차 그 한한 나락을 다 담아부렀제
어차튼지 낼은 절에 가야씅께
그라고는 잠깐 눈을 붙이는디
한 둬 시간이나 지나쓰까
쾅 쾅 마른 하날에 날베락도 유분수지 비가 억수멘치로 쏟아져 부러.

아이구 가심이야 잠결에 가심이 철렁 철렁
내 아깐 베 내 아깐 나락 다 떠내려 가네 다 떠내려 가
어째야 쓰까이 어째야 쓰까이 우르르 쾅쾅 우르르 쾅쾅
천둥 소리에 잠이 확 단나 삘고 다시 봉께 고것들이
내 아깐 나락들이 다 담게져 있잖는가베.

아이고 부처님 아이구 부처님 부처님이 다 담아 놓으섰꾸나
우리 부처님이 다 담아 주싯어
절에 안갈라고 겔름 핐으먼 어짤뻔 히써
다 그거이 부처님 우리 부처님 공덕이제
나락 담고 어여 절에 오라고 부르신 부처님 우리 부처님.

노 보살님 부지런도 부처님 공덕
좋은 일은 뭣이든 부처님 공덕
부처님 자랑에 입이 떡 벌어진 노보살님
시주 쌀 꾸욱꾹 시줏돈 꼬깃꼬깃 바랑에 넣고 지고 왔을 노보살님
굽은 등이 벼 베던 조선 낫 같다.

부랴부랴 나락 말리고 잠 안자고 나락 담고
부처님전 공양 올리러 절에 오신
노보살님 마음
부처님은 아실랑가
선암사 스님네는 아실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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