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맛있는 욕! - 이가을
근엄하신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는
날마다 가마솥에 욕을 끓인다
가마솥 절절 끓을수록 욕설이 구수하다
손님 탁자마다 돌아다니면서 욕으로 안부를 건넨다
할머니 욕해주세요∼
저, 염병할 놈, 또 왔네 아직도 그 타령이여?
욕설을 얹어야 국밥이 맛있다
국밥을 비우면 국밥 그릇에
조금쯤의 반성이 남는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내일이
아이고, 이 배라먹을 놈아
염병할 놈! 쯧쯧, 저 재수 없는 놈을 어쩐댜―
불쌍시런 놈아 잘 처먹고 잘 살으랬지?
옜다, 이놈아 국밥이나 잘 처먹어라―
칼보다 펜보다 강한 할머니의 욕을
가슴에 새긴다
나를 때리는 욕을 목구멍에 삼킨다
들을수록 통증이 오지만 통증이 멈추면
새살이 올라오는,
오늘도 욕 먹으러 국밥집에 간다
* 푸르른 욕 - 복효근
팔순의 울 어머이
터앝 고추모종에 물을 주심서나
하난님은 뭐 하신댜
호랭이가 칵 물어갈녀러 날씨
무신 가물이 이리 질댜
그 욕, 하도나 싱싱해서 청량헌 시 한 편이 따로 없드랑개
날씨는 하난님 것이어서
하난님도 놀랐는지 아칙녁 지나서 뜬금없는 비 한 둘금 뿌려주등마
하난님도 무신 진지꼽쟁이 매이로 비를 뿌레도
포도시 삐액이 눈물맨큼만 주시네
참, 옘벵 오살헐......
울 어머이 서늘헌 욕 덕택에
가매솥에 깜박 눌데끼 몰라가던 밭두덕
어린 고추모종들이
섬닷헌 대로 알탕갈탕 일어서덜 않았것어
가물 끝 울 어머이 따다주신 그 풋고추에
내 빈혈의 쎄끝이 얼얼허등마
어디 가서 시 쓴다는 말 못 허것어 *
* 사는 게 참 꽃 같아야 - 박제영
며느리도 봤응께 욕 좀 그만 해야
정히 거시기해불면 거시기 대신에 꽃을 써야
그 까짓 거 뭐 어렵다고, 그랴그랴
아침 묵다 말고 마누라랑 약속을 했잖여
이런 꽃 같은!
이런 꽃나!
꽃까!
꽃 꽃 꽃
반나절도 안 되서 뭔 꽃들이 그리도 피는지
봐야
사는 게 참 꽃 같아야 *
* 아버지의 욕 - 이정록
"운동화나 물어뜯을 놈"
어릴 적에 들은 아버지의 욕
새벽에 깨어 애들 운동화 빨다가
아하, 욕실바닥을 치며 웃는다
사내애들 키우다보면
막말하고 싶을 때 한두 번일까 마는
아버지처럼, 문지방도 넘지 못할 낮은 목소리로
하지만, 삼십년은 너끈히 건너갈 매운 눈빛으로
'개자식'이라고 단도리칠 수 있을까
아이들도 훗날 마흔 넘어
조금은 쓸쓸하고 설운 화장실에 쪼그려 제 새끼들 신발이나 빨 때
그제야 눈물방울 내비칠 욕 한마디, 어디 없을까
"운동화나 물어뜯을 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나는
"광천 쪽다리 밑에서 주워온" 고아인 듯 서글퍼진다
"어른이라서 부지런한 게 아녀
노심초새한테 새벽잠을 다 빼앗긴 거여"
두 번이나 읽은 조간신문 밀쳐놓고 베란다 창문을 연다
술빵처럼 부푼 수국의 흰 머리칼과 운동화 끈을
비눗물방울이 잇대고 있다 *
* 이정록시집[정말]-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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