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대서(大暑) - 강웅순

효림♡ 2014. 9. 7. 09:00

* 대서(大暑) - 강웅순
염소뿔도 녹는다는
소서와 입추 사이의 대서
황경(黃經)이 120에 이르면
물은 흙이 되고
흙은 물이 되며
풀은 삭아서 반딧불이 된다

장마에 돌도 자란다는
애호박과 햇보리 사이의 대오리
토용(土用)이 중복(中伏)에 이르면
씨앗은 꽃이 되고
꽃은 씨앗이 되며
태반은 삭아서 거름이 된다

붉은 배롱나무가
원추형 태양으로 타오르고
벼가 익는 하늘이
파랗게 맨발이다 *

 

* 혼자서 내리는 비 

가는 가을비가 숨죽여 내리고 있습니다

꼬부랑 논가에 누렇게 익은 벼에게

 

가을의 날개들이 은연히 흩어지고 있습니다

억새꽃 손짓하는 하늘 들판 서쪽으로

 

익숙한 사람들이 구름으로 하얗게 떠났습니다

마른 호박줄기 힘없이 달라붙은 토담길에

 

늙은 귀뚜라미만 혼자서 까맣게 남았습니다

풀 마당엔 절구통 토방엔 헌 고무신 *

 

* 아버지의 지게 

한세월 지게를 업어준
아버지의 늦가을 어깨에는
청무우가 낮달로 숨어 있다

은하수나 간간이 바라본
얄찍한 내 어깨에는
물안개가 제비로 날고 있다

아버지의 지게는
목숨처럼 하늘을 업어도
등태가 종이보다 얄포롬하다

멜빵이 두툼한 내 지게는
흰 구름 한 채를 지고도
가위다리 작대기로 서서
아랫도리 목발이 휘청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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