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붉은돔 - 이명수

효림♡ 2014. 8. 29. 20:11

* 붉은돔 - 이명수 

회를 좋아하는 친구가
수조에서 펄떡이는 붉은돔 한 마리를 가리키며
저놈을 잡아 달란다

웬다트 부족 마을에선 사냥하기 전에
짐승에게 큰소리로 알린다
우리 집 식구가 다섯인데
노모는 병들어 신음하고 어린것들은 며칠째 굶었다,
짐승이 알아듣고 눈을 껌벅이면
원주민 사내는 비로소 활시위를 당긴다

상 위에 올려진 후에도 껌벅거리는
붉은돔의 눈을 피해 바다만 바라보다
젓가락을 놓쳤다 *

 

* 파도 

쓰러지는 사람아 바다를 보라

일어서는 사람아 바다를 보라

쓰러지기 위해 일어서는

일어서기 위해 쓰러지는

현란한 반전

슬픔도 눈물도 깨어 있어야 한다 *

* 이명수시집[백수광인에게 길을 묻다]-책만드는집

 

* 나도바람까마귀

밤낮없이 운다 꽈악, 꽉,
이름은 바람까마귀
길 잃은 새란다
바람까마귀는 태풍에 길을 잃고
나는 시(詩) 속에서 길을 잃고,
바람까마귀는
바람코지에 와 산다
'나도바람까마귀'란 새 종(種)이 되었다
밤이 되면
바람까마귀와 나도바람까마귀와 해무가
한데 엉겨 논다 꽈악, 꽉, 외롭지 않다
* 이명수시집[바람코지에 두고 간다]-문학세계사

* 혼자 밥 먹다 

가을 한철 '자발적 유배' 살이를 했다

추사는 내가 기거하는 고산과 이웃한 대정 귤중옥(橘中屋)에서 9년 간 '위리안치(圍籬安置)' 유배살이를 했다
가시방석에 앉아 혼자 밥을 먹으며 추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키이스 페라지의 [혼자 밥 먹지 마라]를 읽으며 혼자 밥을 먹는다
앞집, 옆집, 뒷집에 혼자 사는 할머니들도 혼자 밥을 먹는다
"서쪽에서 빛살이 들어오는 주방, 혼자 밥을 먹는 적막"*에서 시간과 겨루어 슬프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추사는 가시밥을 먹고 한기 서린 책을 읽으며 세한도(歲寒圖)를 그렸다 그에게 혼자 밥 먹는 일은 온축(蘊蓄)의 의식이었으리라
추사 곁에서 배운 '온축'의 힘으로 시를 쓴다
자발적 유배지에서 쓴 시가 사막에 버려진 무상 경전이 되어도 좋으리 
* 못 떠나는 배-박경리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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