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소금 시 모음

효림♡ 2015. 8. 24. 09:00

* 소금 - 류시화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

 

* 소금 - 도종환

형님은 뜨거움을 강조하지 않으셨다.
붙볕 속을 견디고 견디어 가장
나중까지 남은 빛 하얀 소금을 만지시며
곰섬의 그 흔하디흔한 바닷물 앞에서
땀과 가망의 그중 무거운 것을 안으로 눅이어
빛나게 달구어진 살갗으로 물들이 탔을 때
그것들을 한 그릇씩 자루에 담아
이웃의 식탁에 조금씩 나누며 기뻐하셨다.
가장 뜨거운 햇살 또 시간을 지나
우리의 허영과 거짓들이 모두 비늘을 털고 날려간 뒤
비로소 양식이 되는 까닭을 알고 계셨다.
육중한 짐 자전거 바퀴 위에서 튼튼히 삶을 궁글리며
형님은 한 번도 뜨거움이라 강조하지 않으셨다.

 

* 소금 - 이건청

 폭양 아래서 마르고 말라, 딱딱한 소금이 되고 싶던 때가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쓰고 짠 것이 되어 마대 자루에 담기고 싶던 때가 있었다. 한 손 고등어 뱃속에 염장질려 저물녘 노을 비킨 산굽이를 따라가고 싶던 때도 있었다. 형형한 두 개 눈동자로 남아 상한 날들 위에 뿌려지고 싶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 딱딱한 결정을 버리고 싶다. 해안가 함초 숲을 지나, 유인도 무인도를 모두 버리고, 수평선이 되어 걸리고 싶다. 이 마대 자루를 버리고, 다시 물이 되어 출렁이고 싶다. *

* 이건청시집[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서정시학

 

* 소금별 - 류시화 

소금별에 사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 수 없네

눈물을 흘리면

소금별이 녹아 버리기 때문

소금별 사람들은

눈물을 감추려고 자꾸만

눈을 깜빡이네

소금별이 더 많이 반짝이는 건

그 때문이지 *

 

* 소금인형 - 류시화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네 *

* 류시화시집[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푸른숲

 

* 소금 - 오세영   
왜 굳이
소금을 치는 것일까.
인간의 음식은

소금을 쳐서 먹는다.
김치나 젓갈에
소금을 듬뿍 치는 것은
부패를 방지하기 위함인데
그 무엇을 저장할 것이 있어

인간은
자신의 내장을 소금으로

저리는 것일까.
곰이나 늑대
혹은 꽃이나 풀을 보아라.
그들은 결코
소금을 먹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인간이여,
네 밥상의 소금을 줄여야 한다.
슬픔의 저장은 눈물을 만들고
기쁨의 저장은

상처를 만드는 것,
꽃이나 나무의 핏줄에는

그 어디에도 고혈압이
없지 않은가. *

 

* 소금 - 이해인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걸......

 

* 소금창고 - 이문재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늦가을 평상에 앉아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준다 시린 바람이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역광을 받아 한번 더 피어 있다
눈부시다
소금창고가 있던 곳
오후 세시의 햇빛이 갯벌 위에
수은처럼 굴러다닌다
북북서진하는 기러기떼를 세어보는데
젖은 눈에서 눈물 떨어진다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다. *

 

* 소금창고 - 박성우

그녀는 소금창고를 가지고 있다
낡고 오래된 창고 안에는
소금덩이들이 무더기로 부려져 있다

 

소금창고를 물려받던 열댓 살 무렵
소금저장법을 알 리 없는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녹아 흘러버리는 소금을
어찌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런 탓에
소금물은 그렁그렁 녹아내리기 일쑤였다

 

그녀가 아들을 잃고 남편이 떠나던 이십여년 전
무심코 열어본 소금창고에서는
짜디짠 소금물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창고의 문은 여간 닫히지 않았고
곁에 있던 사람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였다

 

그녀의 눈 속에는 소금창고가 있다
이맛살과 눈주름이 폭삭 내려앉은 창고 안에는
넘실넘실 녹아나가는 소금물을
꾹꾹 눌러 말린 소금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누렇고 검게 그을린 소금덩어리 *

* 박성우시집[가뜬한 잠]-창비


* 소금 - 장석주 
아주 깊이 아파본 사람마냥
바닷물은 과묵하다
사랑은 증오보다 조금 더 아픈 것이다
현무암보다 오래된 물의 육체를 물고늘어지는
저 땡볕을 보아라
바다가 말없이 품고 있던 것을
토해낸다

햇빛이 키우는 것은 단 하나다
한 방울의 물마저 탈수한 끝에 생긴
저 단단한 물의 흰 뼈들
저 벌판에 낭자한 물의 흰 피들

염전이 익히고 있는 물의 석류를 보며
비로소 고백한다, 증오가
사랑보다 조금 더 아픈 것이었음을

아주 오래 깊이 아파본 사람이
염전 옆을 천천히 지나간다
어쩌면 그는 증오보다 사랑을 키워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
* 장석주시집[물은 천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그림같은세상

 

* 소금밭 - 유안진   
나 죽으면
맛으로만 남아라
향기도 색깔도 모양도 버리고
오직 짜디짠 맛
정신으로만 남아라
살아 내 먹장가슴은
나 죽으면
연꽃 눈부신
진흙못이 되지 말고
향기 황홀한
백합의 골짜기도 되지 말고

삼복 타는 불볕 아래
비로소 살아나는 소금맛 하나로
결단코 썩지 않는
정신의 텃밭 되거라
한 뙈기 소금밭이 되거라. *

 

* 소금성자 - 정일근

히말라야 설산 높은 곳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

물속에 숨어있는 소금을 받아내는 힘든 노역이 있다

소금이 무한량으로 넘치는 세상

소금을 신이 내려주는 생명의 선물로 받아

소금을 순금보다 소중하게 모시며

자신의 나귀와 평등하게 나눠 먹는 사람이 있다 *

 

* 소금의 노래 - 복효근 
바다는 뉘를 그려
제 몸에 사리를 키웠는지
곰소 염전에 쌓인 소금더미 보겠네
그대,
혹 소금의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푹푹 빠지는 갯벌이거나
난바다 바닷물 속
뒹굴고 나자빠지면서 부서지고
아우성치던 흐느낌도 잦아들어
내 것 아닌 것 바람에 돌려주고
햇살에 돌려주고 끝끝내
더 내어줄 수 없을 때까지 내어주고
비로소 부르는 순백의 소금노래를
그대 듣는가
에라 모르겠다 다 가져가라 내던지고
돌아서는 그대 가슴에서
묵주알 구르는 소리 같은 것
눈물이 사리가 되어 내는
그 고요한 소리의 반짝임 같은 것

 

* 소금 시 - 윤성학

로마 병사들은 소금 월급을 받았다
소금을 얻기 위해 한 달을 싸웠고
소금으로 한 달을 살았다

나는 소금 병정
한 달 동안 몸 안의 소금기를 내주고
월급을 받는다
소금 방패를 들고
거친 소금밭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버틴다
소금기를 더 잘 씻어내기 위해
한 달을 절어 있었다

울지 마라
눈물이 너의 몸을 녹일 것이니 *

 

* 소금이 온다 - 김주대 
소래 갯골 폐염전에 남아있는 소금은
평생 뭍을 그리워한 바다의 유언이다
북서풍이 말려놓은 문장 속에는
턱뼈를 꽉 물고
떨리는 손목으로 써내려간 각진 어휘들
천년을 뒤척이다 뭍에 오른
지조 높은 고독의 결정체가 보인다
부패한 시속을 염장하던 폐염전에
서해의 유지를 받든 염부의 가래질과
순장된 햇살들
지금도 북서풍을 가로질러 무너진 토판 위로
유언은 서해에서 하얗게 문장으로 온다
죽어도 못 잊겠다는 그 말 *

 

* 소금창고지기 - 신현정 
갈매기 날으고
밀물 썰물 쑥쑥 자라는 바닷가에 소금창고를 짓고
소금창고지기가 되는 거야
긴 장화를 허리까지 입고 삽을 어깨에 걸치고
젓깔같이 질척질척한 안개 속을 헤치며
새벽부터 나서는 거야 거기 가서
무엇보다 하얗게 살찐 소금을 가마니째 부려보는 거야
이 세상에서 소금을 넣은 소금가마니처럼
더 무거운 것은 없을거라만
나, 그걸 어깨로 등짐으로 해서 아주 가볍게 부려보는 거야. *

 

* 소금창고 - 최승호

소금창고는

협궤열차도

달구지를 끌고 가던 노새도

보이지 않는 둔덕에 기우뚱하게 서 있다.

 

노을빛 담요 같은 염생식물들을 밟으며 둔덕의 문짝없는 소금창고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을 때,

당신을 소금도둑처럼 내쫓는 것은 쓰러져 가는 창고를 지켜온 거미.

 

거미줄을 완성하기 위해 낡은 양철지붕 밑 문기둥 주위를 거미는 거닐어야 했을 것이다. 끈적한 줄을 발끝

에 걸치고 거미눈으로 측량도 해보면서 거미는 홀로 어기적거렸을 것이다. 기학학적인 벌레잡이그물, 거미

줄은 한때 쓸모가 있었으나, 지금은 얼기설기 찢어진 구멍일 뿐이다. 자신이 짠 거미줄에 다리를 오그린 채

잠든, 케케묵은 먼지투성이 거미.

 

목에 달라붙은 거미줄을 뜯으며

당신은 아무렇게나 버려진 염전터 위로 걸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뒤에는

소금에 절여진 오래된 고요와

더 이상 굶주림이 없는

소금창고의 기하학자 - 죽은 거미가 남는다.

* 최승호시집[얼음의 자서전]-세계사

 

* 소금 창고 - 송찬호    

돈 떼먹고 도망간 여자를 찾아

물어물어 여기 소금창고까지 왔네

소금창고는 아무도 없네

이미 오래전부터 소금이 들어오지 않아

소금창고는 텅 비어 있었네

 

나는 이미 짐작한 바가 있어

얼굴 흰 소금 신부를 맞으러

서쪽으로 가는 바람같이

무슨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온 건 아니지만

 

나는 또, 사슴 같은 바다를 보러 온 젊은 날같이

연애창고인 줄만 알고

손을 잡고 뛰어드는 젊은 날같이

함부로 이 소금창고를 찾아온 것도 아니지만

 

가까이 보이는 바다로 쉬지 않고 술들의 배가 지나갔네

나는 그토록 다짐했던 금주(禁酒)의 맹세가 생각나

또, 여자의 머릿결 적시던 술이 생각나

바닷가에 쭈그리고 앉아 오랫동안 울었네

 

소금창고는 아무도 없네

그리고 짜디짠 이 세상 어디엔가

소금같이 뿌려진 여자가 있네

 

나는 또, 어딘가로 돌아가야 하지만

사랑에 기대는 법 없이

저 혼자 저렇게 낡아갈 수 있는 건

오직 여기 소금창고뿐이네 

* 송찬호시집[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

 

* 소금의 말 - 송찬호    

결국 모든 시간은 모래가 될 것이다
한없이 느린 거북 등의 해시계를 본다
나뭇가지가 길게 뻗어와 시간의 방향을 가리킨다
서둘러야 한다. 사막은 끝이 없다
모래시계에서 떨어지는 모래의 허리가 점점 가늘어 진다
끊어질 것만 같다 서둘러야 한다
모래의 귓속으로 낙타 행렬이 바삐 지나가고 있다
회오리바람이 항아리를 일으켜 세운다 유골의 기억을
주워 담듯이 항아리의 매끄러운 유리 입술로 모래를 마신다

이방인들에게는 이 사막의 모래가 얼마나 짠가
이 낯선 부호들, 사막의 모래를 집어 올린다
한 움큼의 소금을

말의 파편들이여,
사막의 잠자는 소금 도시를 본 적이 있는가
사막에서 일어나는 소금 기둥을 보았는가

늙은 고기는 맛이 없고 늙은 살가죽은
더 이상 여자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노인의 머리는 간 곳 없고 그 자리에는
그만한 무게의 모래 자루만 얹혀 있을 뿐,

모래 시간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나뭇가지는 다시 뻗어 오지 않는다
모래로 목욕하며 우리는 강으로 흘러왔다
세계의 머리는 어디 있는가,
목마른 우리에게 경배의 하룻밤을 더 다오!
* 송찬호시집[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민음사

* 소금 호수 - 정끝별  

뿌리를 쳐든 바오밥나무가 웃는다

칼리하리 사막 언저리의

거대한 보츠와나 소금 호수는

일 년 중 열 달이 가뭄이어서

바람이 모래를 쓸어 올려 세운

신기루들이 모자를 삼키면서 아른아른 웃는다

소금 호수 가는 길에는

맨발 자국이 바다거북처럼 파여 있다는데 

수천 년 전의 바다를 기억하는

온 생의 물기란 물기

온통의 소금밭이 씨앗처럼 빨아들였을까

소금 호수를 나오는 맨발 자국이 쭈글쭈글 웃는다

기억해 보면

반짝이는 소금 껍질을 우두둑

우두둑 부수며 달려온 것도 같다

맨발이었다

벗어놓은 신발이 웃는다 *

* 정끝별시집[삼천갑자 복사빛]-민음사

 

* 천일염 - 윤금초

가 이를 까, 이를까 몰라

살도 뼈도 다 삭은 후엔

 

우리 손깍지 끼었던 그 바닷가

물안개 저리 피어오르는데,

 

어느 날

절명시 쓰듯

천일염이 될까 몰라 *

 

* 소금 - 김용택

내소사를 지났다.

비 오고, 늦가을이다.

닉지들이 수조 속에서

한사코 다리를 비트는

곰소항 어느 횟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한다.

나갔던 물이 들어온다.

저기가 고창이지요?

아내가 애들을 데리고 집을 나가서요.

슬레이트 지붕 처마 끝에서

떨어진 낙숫물이

튄다.

신발이 젖는다.

생면부지,

전혀 모르는

사내다. *

* 김용택시집[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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