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짧은 시 모음 5

효림♡ 2015. 8. 26. 09:00

* 꿈 - 황인숙

가끔 네 꿈을 꾼다.
전에는 꿈이라도 꿈인 줄 모르겠더니
이제는 너를 보면
아, 꿈이로구나,
알아챈다. *

 

* 방(榜) - 함성호  

천불  천답 세우기

내 詩쓰기는 그런 것이다. 

 

* 우주를 건너는 법 - 박찬일 

달팽이와 함께!

달팽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도달할 뿐이다

 

* 눈물 - 정희성

초식동물 같이 착한 눈을 가진

아침 풀섶 이슬 같은 그녀

눈가에 언뜻 비친

 

* 봄소식 - 정희성

이제 내 시에 쓰인 
봄이니 겨울이니 하는 말로 
시대 상황을 연상치 마라 
내 이미 세월을 잊은 지 오래 
세상은 망해가는데 
나는 사랑을 시작했네 
저 산에도 봄이 오려는지 
아아, 수런대는 소리
 *

 

* 모과 - 서안나

먹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바라만 보며 향기만 맡다

충치처럼 꺼멓게 썩어버리는

그런 첫사랑이

내게도 있었다. *

 

* 노을 - 박현수

저 서쪽

타다 남은 하루치의 울음 소리

 

* 단풍 - 박현수

떨어진 불꽃은
손아귀를 가만히 오므린다
다음에는
하느님이 떨어질 차례란 듯이

 

* 입추(立秋) - 석지현

이제 짐을 다 꾸렸으니

다북쑥처럼 흔들리며 떠나려 하네

하얀 가을 먼먼 하늘이여

햇살은 길에 가득 바람 끝에 몰리네

 

* 아침이슬 - 고은

여기 어이할 수 없는 황홀!

아아 끝끝내 아침이슬 한 방울로 돌아가야 할

내 욕망이여!

 

* 꽃 - 강은교

지상의 모든

피는 꽃들과

지상의 모든

지는 꽃들과

지상의 모든

보이는 길과

지상의 모든

보이지 않는

길들에게

말해다오

 

나, 아직 별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 나비 - 손동연

봄이
적어 낸
우표랍니다

 

꽃에게만
붙이는
우표랍니다.

 

* 마당 - 박성우
고추밭도 깨밭도 수수밭도 건넌들 논배미도

태풍이 죄다 마당으로 바꿔놓았다

오살, 구천구백구십구 칸 집 짓고 살겄다 *

 

* 서로가 꽃 - 나태주 
우리는 서로가
꽃이고 기도다
나 없을 때 너
보고 싶었지?
생각 많이 났지?
나 아플 때 너
걱정됐지?
기도하고 싶었지?

그건 나도 그래

우리는 서로가

기도이고 꽃이다. *

 

* 격렬비열도 - 박후기 

격렬과

비열 사이

어딘가에

사랑은 있다 *

 

* 하루살이 - 윤석훈 

짧다고

말하지 마라

눈물이 적다고

눈물샘이 작으랴 *

 

* 사막 - 오르텅스 블루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

 

* 산비둘기 - 장 콕토 
두 마리의 산비둘기가 상냥
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였습니다.
그 나머지는 차마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

 

* 귀 - 장 콕토 

내 귀는 소라껍질

바다소리를 그리워한다. *

 

* 뱀 - 장 콕토 

아, 참 길구나!

 

* 국수가 라면에게 - 안도현

너, 언제 미용실 가서 파마했니?

 

* 그래도 저이는 행복하여라 - 김규동  

고향에 가서

아는 이 없다 하더라도

먼 하늘 바라다볼 수 있는 이

앞산 뒷산 바라다보며

옛 생각에 잠기는 이

뛰놀던 언덕 위에 서서

어린 시절 동무들 얼굴

하나하나 떠올리는 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기쁘고 고달팠던 추억에

넋을 잃고 앉았던 저이

행복하여라

저이는 그래도 행복하여라

 

* 덥고 긴 날 - 조운

찌는듯 무더운 날이

길기도 무던 길다

 

고냥 앉은 채로

으긋이 배겨 보자

 

끝내는 제가 못 견디어

그만 지고 마누나.

 

* 고요가 고요에게 - 김초혜

사위가 텅 비었으나 
그 속에 가득 찬 것 있으니 
무엇이 부럽다 하겠소 
큰 것 중에 가장 크고 
작은 것 중에 가장 작은 
평생을 구해도 못 구할 
이 탐스런 꽃 *

 

* 그리움 - 신달자

내 몸에 마지막 피 한 방울

마음의 여백까지 있는 대로

휘몰아 너에게로 마구잡이로

쏟아져 흘러가는

이 난감한

생명 이동 *

 

* 피아노 - 전봉건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

 

* 어둠이 되어 - 안도현

그대가 한밤내

초롱초롱 별이 되고 싶다면

나는 밤새도록

눈도 막고 귀도 막고

그대의 등 뒤에서

어둠이 되어 주겠습니다. *

 

* 미안한 일 - 김사인  

개구리 한 마리가 가부좌하고
튀어나오도록 눈을 부라리며 상체를 내 쪽으로 쑥 내밀고
울대를 꿀럭거린다.

뭐라고 성을 내며 따지는 게 틀림없는데
둔해 알아먹지 못하고
멋쩍은 나는 뒷목만 긁는다

눈만 꿈벅거린다.
늙은 두꺼비처럼. *

 

* 그날 - 곽효환

그날, 텔레비전 앞에서 늦은 저녁을 먹다가

울컥 울음이 터졌다

멈출 수 없어 그냥 두었다

오랫동안 오늘 이전과 이후만 있을 것 같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밤, 다시 견디는 힘을 배우기로 했다. *

* 곽효환시집[슬픔의 뼈대]-문지

 

* 강촌에서 - 문태준

말수가 아주 적은 그와 강을 따라 걸었다

가도 가도 넓어져만 가는 강이었다

그러나 그는 충분히 이해되었다 *

* 문태시집[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창비

'시인 詩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줄의 시를 읽다 - 하이쿠(俳句) 시 모음 2  (0) 2015.09.14
가을 시 모음 5  (0) 2015.09.01
소금 시 모음  (0) 2015.08.24
조동화 시 모음  (0) 2015.08.18
나비 시 모음  (0) 2015.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