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홍시 시 모음

효림♡ 2015. 10. 15. 09:00

* 옛 마을을 지나며 - 김남주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 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
 

 

* 徐芝月이의 紅枾

大邱의 詩人 徐芝月이가

"자셔보이소" 하며

저희집에서 딴 홍시들을 가져왔기에

보니 거기엔

山까치가
그 부리로 쪼아먹은
흔적이 있는 것도 보여서
나는 그걸 골라 먹으며
이런 논아먹음이
너무나 좋아
웃어자치고 있었다.
* 서정주시집[80소년 떠돌이의 시]-시와시학사

 

* 홍시 - 윤효

감나무 가지 끝에

홍시 하나가

까치밥으로 남아 있었다

서릿바람 불고

눈발 날려도

가지 끝에

빨갛게

남아 있었다

 

밤새 꺼지지 않던

빈자일등(貧者一燈). *

 

* 홍시 - 복효근 
누구의 시냐
그 문장 붉다
 
봄 햇살이 씌워준 왕관
다 팽개치고
 
천둥과 칠흑 어둠에 맞서
들이대던 종주먹
그 떫은 피
 
제가 삼킨 눈물로 발효시켜
속살까지 환하다

 

* 홍시 - 정일근  
양산 신평장 지나다 홍시장수 만났네
온전한 몸으로 늦가을에 당도한 감의 생애는
붉은 광채의 詩처럼 눈부셨네
신평은 아버지 감꽃 같은 나이에 중학을 다니셨던 곳
그러나 아버지의 생 너무 짧아
붉게 익기도 전에 떨어져버린 풋감이었네
헤아려보니 아버지 살아 계셨으면 올해 甲年
홍시를 좋아하실 연세, 드릴 곳 없는 홍시 몇 개 사며
감빛에 물들어 눈시울 자꾸 붉어졌네 

 

* 홍시 - 나태주 
이보
시악시,
백사기 대접에
잘람잘람 잘 익은
가을 하늘을 담아 드리리이까.
떠오르는 보름달을
그대 가슴에
심으리
이까.
*

 

* 홍시(紅枾) - 홍일표
계동 언덕
감나무 가지 끝
술 취해
흥얼흥얼

12월 매운 숨결
아랑곳하지 않고
허공의 멱살을 놓지 않는다

지나는 바람도
아예 얼굴을 돌리는
고집불통의 주정꾼들

아직도
흥얼흥얼
저렇게 막무가내로 버티며
불끈불끈 움켜쥔 주먹

모두 머리 숙여
쉽게 마음 접은 지금
그 외로운 고집이
그 쓸쓸한 항변이
마음 환하게 밝히는
저물녘

 

* 홍시(紅枾)를 보며 - 박재삼 

감나무에 감꽃이 지더니
아프게도 그 자리에 열매가 맺네.
열매는 한창 쑥쑥 자라고
그것이 처음에는 눈이 부신
반짝이는 광택(光澤) 속
선연한 푸른 빛에서
조금씩 변하더니 어느새
붉은 홍시로까지 오게 되었더니라.


가만히 보면
한 자리에 매달린 채
자기 모습만을
불과 일년이지만 하늘 속에
열심히 비추는 것을 보고, 글쎄,
말 못하는 식물이 저런데
똑똑한 체 잘도 떠들면서
도대체 우리는 어디다가
자기 모습을 남기는가 생각해 보니
허무(虛無)라는 심연(深淵)밖에 없더니라.
아, 가을! *

 

* 홍시 - 박형준 

뒤뜰에서 홍시가 
철퍼덕철퍼덕 떨어지는 밤 
아버지 돌아가신 자리에 
아버지처럼 누워서 듣는다 
 
얇은 벽 너머 
줄 사람도 없는디 
왜 자꾸 떨어진데여 
힘없는 어머니 음성

  
아버지처럼

거그, 하고 불러본다

죽겄어 묻는 어머니 말에 
응 나 죽겄어

고개를 끄덕이던  
임종 가까운데

자식 오지 않고

뻣뻣한 사족 
이불 밖으로 나온 손

가슴에 얹어 주던 어머니


큰방에 누워

뒤뜰 홍시처럼 가슴에 
둥글게 주먹 말아 쥐고

마을 가로질러 가는

기차 소리 듣는다

 

* 홍시를 두고 - 유재영 

1

첫서리 내린 마당 누구의 발작처럼
어디서 날아왔나 등 붉은 감잎 한 장
고향집 노을이 되어 사뿐히 누워있네

 

11
지우고 고쳐 쓰다 확 불 지른 종장(終章)같이
와와와 소리치면 금방 뚝 떨어질 듯
우주 속 소행성 하나 발그라니 물이 든다

 

111
굽 높은 그릇 위에 향기 높은 전신 공양
가만히 귀 기울면 실핏줄 삭는 소리
말갛게 고인 저 투명 문득 훔쳐 갖고 싶다 *

 

* 홍시 - 정지용

어저께도 홍시 하나

오늘에도 홍시 하나

 

까마귀야. 까마귀야

우리 남게 왜 앉았나

 

우리 오빠 오시걸랑

맛뵐라구 남겨 뒀다

 

후락 딱딱

훠이 훠이! *

 

* 홍시 - 김인숙
가을비 오는 날
가지 끝에서 떨어진 홍시 하나
석양빛이다

쪼그라들더라도 살아남아
겨울날
까치밥이 되길 원했을까

빗소리 스며드는 저녁 때
부서진 몸을 안고
어둠으로 들어서는 저 핏물들,
잦아드는 소리 처연하다
* 김인숙시집[소금을 꾸러갔다]-문학의 전당 

* 홍시 - 김종영

쪽쪽 햇살을 빨아먹고

쪽쪽 노을을 빨아먹고

 

통통

말랑말랑

익은 홍시 

 

톡 건드리면

좌르르 햇살이 쏟아질 것 같아 

톡 건드리면

쭈르르 노을이 흘러내릴 것 같아 

 

색동옷 입은 아기바람도

입만 맞추고 가고 

장난꾸러기 참새들도

침만 삼키고 간다 *

 

* 여백 - 조창환  
감나무 가지 끝에 빨간 홍시 몇 알
푸른 하늘에서 마른번개를 맞고 있다
새들이 다닌 길은 금세 지워지고
눈부신 적멸(寂滅)만이 바다보다 깊다
저런 기다림은 옥양목 빛이다  
칼 빛 오래 삭혀 눈물이 되고
고요 깊이 가라앉아 이슬이 될 때
묵언(黙言)으로 빚은 등불
꽃눈 틔운다
두 이레 강아지 눈 뜨듯

이 차갑고 명징한 여백 앞에서는
천사들도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다 *

 

홍시여, 이 사실을 잊지 말게 너도 젊었을 때는 무척 떫었다는 걸 -  소세키  

 

* 조홍시가(早紅枾歌) - 박인로(朴仁老)

반중(盤中)조홍(早紅)감이 고아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음 즉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 새 글로 설워하나이다.

-

소반에 담긴 일찍 익은 붉은 감이 곱게도 보이는구나

유자가 아니라도 품안에 몇 개 집어넣고 싶지만

품어 가져간다 해도 반가워할 어머니가 없으므로 그것 때문에 슬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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