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서 즐거웠는지 - 정현종
가을에 연중행사처럼 하는 일을 하러 가면서
작년 이맘때도 요만큼 쌀쌀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즐거웠는지,
여전히 살아 있는 감각 때문에 즐거웠는지,
다시 찾아 입은 옷이 즐거웠는지,
모든 흐름의 적막한 내밀(內密)이 즐거웠는지......
다시 노래하자면
기온이 열어젖히는 무한이 즐거웠는지,
촉감의 그지없는 확실함이 즐거웠는지,
반복과 변화의 터치가 즐거웠는지...... *
* 이게 무슨 시간입니까
이게 무슨 시간입니까.
마악 피어나려고 하는
꽃송이,
그 위에 앉아 있는 지금,
공기 중에 열이 가득합니다,
마악 피어나려는 시간의
열,
꽃송이 한가운데,
이게 무슨 시간입니까. *
* 꿈이 올라오는 것이었다
구기자차를 잔에 따르고
가라앉은 구기자를 숫가락으로
건저 올리는데
잘츠부르크도 올라오는 게 아닌가!
모차르트를 듣고 있었다고는 하더라도
구기자를 건저 올리는데
아직 못 가본 그곳도 올라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여
꿈이 올라오는 것이었다.
가족의 우울을 감싸면서
꿈이 올라오는 것이었다.
어제와 오늘의 불행을 감싸면서
꿈이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
* 정현종시집[그림자에 불타다]-문학과지성사,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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