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커피 시 모음

효림♡ 2016. 12. 12. 09:00

* 그냥커피 - 오탁번

옛날 다방에서

그냥커피를 마시는 토요일 오후

산자락 옹긋옹긋한 무덤들이

이승보다 더 포근하다

채반에서 첫잠 든 누에가

두잠 석잠 다 자고

섶에 올라 젖빛 고치를 짓듯

옛날다방에서 그냥커피 마시며

저승의 잠이나 푹 자고 싶다 *

 

* 커피 기도 - 이상국

커피점에 온 모녀가

커피가 나오자 기도를 한다

나는 보던 책을 내려놓았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기도는 길어지고

딸이 살그머니 눈을 떠 엄마를 살피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하느님도 따뜻한 커피를 좋아하실 텐데.....

* 이상국시집[달은 아직 그 달이다]-창비,2016

커피기도 

커피점에 온 모녀가

커피가 나오자 기도를 한다

나는 보던 책을 내려놓았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기도는 길어지고

딸이 살그머니 눈을 떠 엄마를 살피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하느님도 따뜻한 커피를 좋아하실 텐데… 

시집 ‘달은 아직 그 달이다’에서 



[출처] 이투데이: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333514#csidx151f54b5e9943629261853583001437

 

* 커피 - 윤보영
커피에  
설탕을 넣고  
크림을 넣었는데  
맛이 싱겁네요  
아   
그대 생각을 빠트렸군요 *

 

* 커피 가는 시간 - 문정희

아직도 쓸데없는 것만 사랑하고 있어요
가령 노래라든지 그리움 같은 것
상처와 빗방울을
그리고 가을을 사랑하고 있어요 어머니
아직도 시를 쓰고 있어요
밥보다 시커먼 커피를 더 많이 마시고

몇 권의 책을 끼고 잠들며 

직업보다 떠돌기를 더 좋아하고 있어요
바람속에 서 있는 소나무와
홀로 가는 별과 사막을
미친 폭풍우를 사랑하고 있어요
전쟁터나 하수구에 돈이 있다는 것쯤 알긴 하지만
그래서 친구 중엔 도회로 떠나
하수구에 손을 넣고 허우적대기도 하지만
단 한 구절의 성경도
단 한 소절의 반야심경도 못 외는 사람들이
성자처럼 흰옷을 입고
땅 파며 살고 있는 고향 같은 나라를 그리며
오늘도 마른 흙을 갈고 있어요, 어머니

 

* 커피를 마시며 - 신달자

견디고 싶을 때
커피를 마신다

남 보기에라도
수평을 지키게 보이려고

지금도 나는
다섯번째
커피 잔을 든다

실은
안으로
수평은커녕
몇 번의 붕괴가
살갗을 찢었지만

남 보이는 일도
무시할 수 없다고 해서
배가 아픈데
아픈데

깡소주를
들이키는 심정으로
아니
사약(死藥)처럼
커피를 마신다.

 

* 바닥에 쏟은 커피를 바라보며 - 정호승
바닥에 쏟은 커피는 바닥이 잔이다
바닥에 커피를 쏟으면
커피는 순간 검은 구름이 된다
바다가 비에 젖지 않고 비를 바다로 만들듯
바닥도 커피에 젖지 않고 커피를 바닥으로 만든다
바닥을 걷는 흉측한 발들아
물 위를 걸은 예수의 흉내를 내다가 익사한 발들아
검은 구름떼가 흘러가는 바닥의 잔을 들어라
오늘도 바닥의 잔을 높이 들고
남은 인생의 첫날인 오늘보다
남은 인생의 마지막 날인 내일을 생각하며
봄비 내리는 창가를 서성거려라

 

* 어느 날의 커피 - 이해인

혼자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허무해지고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가슴이 터질 것 만 같고
눈물이 쏟아지는데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데
만날 사람이 없다

주위에는
항상 친구들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날
이런 마음을
들어줄 사람을 생각하니
수첩에 적힌 이름과 전화번호를
읽어 내려가 보아도
모두가 아니었다.

혼자 바람맞고 사는 세상
거리를 걷다 가슴을 삭이고
마시는 뜨거운 한 잔의 커피

아~삶이란 때론 이렇게 외롭구나! *

 

* 심야(深夜)의 커피 - 박목월 

이슥토록
글을 썼다
새벽 세 時(시)
시장기가 든다
연필을 깎아 낸 마른 향나무
고독한 향기
불을 끄니
아아, 높이 靑(청)과일 같은 달

 
겨우 끝맺음
넘버를 매긴다
마흔 다섯 장의
散文(산문-흩날리는 글발)
이천 원에 이백원이 부족한
초췌한 나의 분신들
아내는 앓고.....
지쳐 쓰러진 萬年筆(만년필)의
너무나 엄숙한
臥身(와신)

 
사륵사륵

설탕이 녹는다

그 정결한 投身(투신)

그 고독한 溶解(용해)

아아, 深夜(심야)의 커피

暗褐色 深淵(암갈색 심연)을

혼자 마신다 *

 

커피 - 오세영  
사랑한다고 쓸까,
미워한다고 쓸까,
채울 말이 없는 빈 원고지 앞에서
바르르 떠는 펜,
바르르 떠는 손으로
한 잔의 커피를 든다.
달지도 않다.
쓰지도 않다.
단맛과 쓴맛이 한가지로 어우러내는
그 향기,
커피는 설탕을 적당히 쳐야만
제 맛이다.
블랙 커피는 싫다.
커피 잔에 녹아드는 설탕처럼
이성의 그릇에 녹아드는 감성,
그 원고지의 빈 칸 앞에서
밤에 홀로 커피를 드는 것은
나를 바라다보는 일이다.

 

* 한 잔의 Coffee - 용혜원
하루에
한 잔의 Coffee처럼
허락되는 삶을
향내를 음미하며 살고픈데
지나고 나면
어느새 마셔버린 쓸쓸함이 있다.

 

어느 날 인가?

빈 잔으로 준비될

떠남의 시간이 오겠지만

목마름에

늘 갈증이 남는다.

인생에 있어
하루하루가
터져오르는 꽃망울처럼
얼마나 고귀한 시간들인가?

 

오늘도 김 오르는 한 잔의 Coffee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뜨겁게 마시며 살고 싶다. *

 

커피 리필 - 김하인
가슴으로 당신을 마십니다. 마셔도 마셔도 다함없이 당신이 그리운 건 내 사랑이 계속 리필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날 떠나고 작별을 고했어도 한 삼 년은 너끈히 당신을 가슴으로 마실 수 있습니다. 이토록 저미고 아픈 바에야 물기는 좀 많겠습니까. 눈물로 바닥을 낸다 해도 내 슬픔의 양이 다시 채워지는 건 당신에 대한 내 그리움이 끊임없이 리필되기 때문이죠. 당신…… 다시, 당신을 제게 따라주실 순 없겠습니까. 당신과의 첫 만남과 시작으로 다시 한 번만 제 가슴 가득히 채워주실 수는 없는지요. 커피를 리필시킬 때마다 전 이렇게 당신에 대한 제 사랑도 꼭 리필시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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