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백석 시 모음 2

효림♡ 2017. 5. 2. 09:00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 백석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은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오는 탓이다 *

 

잠풍날씨:잔풍(殘風) 날씨. 잔잔한 바람이 부는 날씨

달재:"달강어'의 방언

잔장:검정콩으로 쑨 메주로 담가 빛이 까맣게 된 간장. '진강장'의 준말

 

* 산중음(山中吟) -산숙(山宿)
여인숙이라도 국숫집이다
모밀가루포대가 그득하니 쌓인 웃간은 들믄들믄 더웁기도 하다
나는 낡은 국수분틀과 그즈런히 나가 누워서
구석에 데굴데굴하는 목침들을 베여보며
이 산골에 들어와서 이 목침들에 새까마니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얼골과 생업과 마음들을 생각해본다 *

 

* 산중음(山中吟) -향악(饗樂)

초생달이 귀신불같이 무서운 산골 거리에선

처마끝에 종이등의 불을 밝히고

쩌락쩌락 떡을 친다

감자떡이다

이젠 캄캄한 밤과 개울물 소리만이다 *

 

* 산중음(山中吟) -야반(夜半)

토방에 승냥이 같은 강아지가 앉은 집

부엌으론 무럭무럭 하이얀 김이 난다

자정도 훨씬 지났는데

닭을 잡고 모밀국수를 누른다고 한다

어느 산 옆에선 캥캥 여우가 운다 *

 

* 산중음(山中吟) -백화(白樺)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

 

* 함남 도안(咸南 道安)  

고원선(高原線) 종점인 이 작은 정거장엔

그렇게도 우쭐대며 달가부시며 뛰어오던 뽕뽕차(車)가

가이없이 쓸쓸하니도 우두머니 서 있다

 

해빛이 초롱불같이 희맑은데

해정한 모랫부리 플랫폼에선

모두들 쩔쩔 끓는 구수한 귀이리차(茶)를 마신다

 

칠성(七星)고기라는 고기의 쩜벙쩜벙 뛰노는 소리가

쨋쨋하니 들려오는 호수까지는

들죽이 한불 새까마니 익어가는 망연한 벌판을 지나가야 한다 *

 

* 북신(北新) -서행시초(西行詩抄) 2 

거리에서는 모밀내가 났다

부처를 위하는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 같은 모밀내가 났다

 

어쩐지 향산(香山) 부처님이 가까웁다는 거린데

국수집에서는 농짝 같은 도야지를 잡어걸고 국수에 치는 도여지고기는 돗바늘 같은 털이 드문드문 백였다

나는 이 털도 안 뽑은 도야지고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또 털도 안 뽑는 고기를 시꺼먼 맨모밀국수에 얹어서 한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가슴에 뜨끈한 것을 느끼며

소수림왕을 생각한다 광대토대왕을 생각한다 *

 

향산:묘향산

돗바늘:돗자리 등을 꿰맬 때 쓰는 매우 크로 굵은 바늘


* 선우사(膳友辭) - 함주시초 4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허구 긴 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 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여졌다

착하디착해서 세괃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

 

나조반:음식 소반으로 흔히 쓰는 나주반(나주에서 생산된 전통 소반)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임

해정한:깨끗하고 맑은

헤이며:세며

물닭:뜸부깃과의 새

세괃은:'성질이나 기세가 억센'이란 뜻의 평북 방언

 

* 꼴뚜기

신새벽 들망에

내가 좋아하는 꼴뚜기가 들었다

갓 쓰고 사는 마음이 어진데

새끼 그물에 걸리는 건 어인 일인가

갈매기 날어온다

입으로 먹을 뿜는 건

몇십 년 도를 닦어 피는 조환가

앞뒤로 가기를 마음대로 하는 건

손자(孫子) 의 병서(兵書)도 읽은 것이다

갈매기 쭝얼댄다

 

그러나 시방 꼴뚜기는 배창에 너부러져 새새끼 같은 울음을 우는 곁에서

뱃사람들의 언젠가 아훕이서 회를 쳐 먹고도 남어 한 깃씩 노나가지고 갔다는 크디큰 꼴뚜기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슬프다

 

갈매기 날어난다 *

 

들망:후릿그물. 강이나 바다에 넓게 둘러치고 여러 사람이 두 끝을 끌어당겨 물고기를 잡는 큰 그물

아훕:'아홉'의 평안 방언

깃:무엇을 나눌 때 각자에게 돌아오는 한몫

 

* 오리

오리야 네가 좋은 청명(淸明) 밑께 밤은

옆에서 누가 뺨을 쳐도 모르게 어둡다누나

오리야 이때는 따디기가 되여 어둡단다

아무리 밤이 좋은들 오리야

해변벌에선 얼마나 너이들이 욱자지껄하며 멕이기에

해변땅에 나들이 갔든 할머니는

오리새끼들은 장뭏이나 하듯이 떠들썩하니 시끄럽기도 하드란 숭인가

그래도 오리야 호젓한 밤길을 가다

가까운 논배미들에서

까알까알 하는 너희들의 즐거운 말소리가 나면

나는 내 마을 그 아는 사람들의 지껄지껄하는 말소리같이 반가웁고나

오리야 너희들의 이야기판에 나도 들어

밤을 같이 밝히고 싶고나

오리야 나는 네가 좋구나 네가 좋아서

벌논의 눞 옆에 쭈구렁벼알 달린 짚검불을 널어놓고

닭이짗 올코에 새끼달은치를 묻어놓고

동둑 넘에 숨어서

하로진일 너를 기다린다

오리야 고운 오리야 가만히 안겼거라

너를 팔어 술을 먹는 노(盧)장에 영감은

홀아비 소의원 침을 놓는 영감인데

나는 너를 백통전 하나 주고 사오누나

나를 생각하든 그 무당의 딸은 내 어린 누이에게

오리야 너를 한쌍 주드니

어린 누이는 없고 저는 시집을 갔다건만

오리야 너는 한 쌍이 날어가누나 *

 

따디기:따지기, 이른 봄 얼었던 흙이 풀리려고 하는 무렵

욱자지껄하며 멕이기에:여럿이 한곳에 모여 계속 떠들기에

장뭏이:장날이 되어 장터에 사람들이 모여 붐비는 것

숭:흉

논배미:두렁으로 둘러싸인 논의 한 구역

닭이짗 올코:닭의 깃털을 붙여서 만든 올가미

새끼달은치:새끼다랑치. 새끼줄을 엮어 만든 끈이 달린 바구니

동둑:크게 쌓은 둑

하로진일:하루 진종일

소의원:-소의 병을 치료해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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