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바다 시 모음

효림♡ 2017. 8. 4. 09:00

* 바다 - 박남수

스름스름 동요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손을 들더니

차차 아우성이 되더니, 이제는

스스로도 제어하지 못하는 힘이 되어

전량으로 흔들리더니, 그것은

키를 넘어 날리기 시작한다.

표범의 줄무늬가 훌쩍 뛰고

코끼리의 거구도 미끄러져 내린다.

지평과 하늘이 후물후물 뼈가 빠져나가고

세상 모든 것이 엎질러진다. *

 

* 바다 1 - 정지용  

오.오.오.오.오. 소리치며 달려 가니
오.오.오.오.오. 연달어서 몰아 온다.

 

간 밤에 잠살포시
머언 뇌성이 울더니,

 

오늘 아침 바다는
포도빛으로 부풀어젔다.

 

철석, 처얼석, 철석, 처얼석, 철석,
제비 날어 들듯 물결 새이새이로 춤을추어. *

 

* 바다 - 이성복 
서러움이 내게 말 걸었지요
나는 아무 대답도 안했어요

서러움이 날 따라왔어요
나는 달아나지 않고
그렇게 우리는 먼길을 갔어요

눈앞을 가린 소나무 숲가에서
서러움이 숨고
한순간 더 참고 나아가다
불현듯 나는 보았습니다

짙푸른 물굽이를 등지고
흰 물거품 입에 물고
서러움이 서러움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엎어지고 무너지면서도 내게 손 흔들었습니다 *

 

* 바다 - 조병화
사랑하는 사람아
그리운 사람아
먼 곳에 있는 사람아
아주 먼 곳에 있는 사람아

바다가 우는 걸 본 일이 있는가
바다가 흐느끼는 걸 본 일이 있는가
바다가 혼자서 혼자서
스스로의 가슴을 깎아내리는
그 흐느끼는 울음소리를 들은 일이 있는가

네게로 영 갈 수 없는
수많은 세월을
절망으로 깨지며 깨지며
혼자서 혼자서 사그라져내리는
그 바다의 울음소리를 들은 일이 있는가.

 

* 바다와 나비 -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나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 동해바다 -후포에서* - 신경림

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한 잘못이 맷방석만 하게
동산만 하게 커 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는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보다
돌처럼 잘아지고 굳어지나보다 

 
멀리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

* 후포는 울진 아래 있는 작은 어항이다.

* 신경림시집[이래서 이 세상에 꽃으로 피었으면]-랜덤하우스

 

* 밀물 - 정끝별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

 

* 일출 - 조향미

두근두근 상기된 하늘

바다는 마침내

둥글고 빛나는 알 하나를 낳았네

저 광대무변 깊은 우주

태초 이래 어김없는 새벽마다

이 붉은 알은 태어나고 태어나

삼라만상 찬란히 부화하였구나! *

 

* 여름바다 - 김기택

 낮은 곳 후미진 곳까지 남김없이 채우고 나서야 비로소 잔잔해진다. 꺼끌꺼끌하게 와 닿는 바위와 돌멩이들이 매끈매끈해질 때까지 그 오랜 날들을 나는 끊임없이 찰랑거려야만 한다.

 

  한적한 하오의 햇볕 아래 나는 하릴없이 누워 있다, 파리를 쫓는 게으른 소처럼 해변에서 깔깔거리는 여자들 흰 잔등을 작은 파도로 찰싹찰싹 밀어내며. 수면 아래로는 푸른 위장을 지나가는 수백만 마리 은빛 고기떼. 푸른 이두박근 삼두박근 사이 정교한 결을 따라 날렵하게 새어나오는 넙치떼와 가자미떼.

 

  고기들이 떼지어 이동하는 산란기가 가까워오면 나는 지구가 흔들리도록 거대한 몸을 뒤채이고 싶어지리라. 물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생선처럼 펄떡펄떡 뛰는 굵은 파도를 해변 넘어 아스팔트 가득 쏟아내고 싶어지리라. 조금만 몸을 흔들어도 배를 삼키고 섬을 덮치며 일어날 것 같은 파도는 아직 잠에 빠져 있다. 잠 속의 바다, 아아, 그 목구멍에 아직도 걸려 있는 착한 심청이만 아니었어도 흰 거품 게워내는 뜨거운 몸의 일부를 지구 밖으로 쏟아내고야 말았으리라.

 

  지금, 한류와 난류가 뒤엉켜 도는 허리 어디쯤에서 나는 낮꿈을 꾸며 졸고 있다. 꿈틀거리는 내 꿈의 저편 끝에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요동치다 잠기는 거대한 꼬리 하나. 며칠 후에 들이닥칠 천둥소리의 떨림이, 순간, 전해온다. 비늘 몇 개만 보석처럼 반짝이며 떠가는 여름 하오.

* 김기택시집[태아의 잠]-문학과지성사

 

* 바다의 아코디언 - 김명인

노래라면 내가 부를 차례라도

너조차 순서를 기다리지 않는다.

다리 절며 혼자 부안 격포로 돌 때

갈매기 울음으로 친다면 수수억 톤

파도 소릴 긁어대던 아코디언

갯벌 위에 떨어져 있다.

파도는 몇 겁쯤 건반에 얹히더라도
지치거나 병들거나 늙는 법이 없어서
소리로 파
이는 시간의 헛된 주름만 수시로
저의 생멸(生滅)을 거듭할 뿐.
접혔다 펼쳐지는 한순간이라면 이미
한생애의 내력일 것이니.
추억과 고집 중 어느 것으로
저 영원을 다 켜댈 수 있겠느냐.
채석에 스몄다 빠져나가는 썰물이
오늘도 석양에 반짝거린다.
고요해지거라, 고요해지거라.
쓰려고 작정하면 어느새 바닥 드러내는

삶과 같아서 뻘밭 위
무수한 겹주름들.
저물더라도 나머지의 음자리까지
천천히, 천천히 파도 소리가 씻어 내리니,
지워진 자취가 비로소 아득해지는
어스름 속으로
누군가 끝없이 아코디언을 펼치고 있다. *

 

* 이 세상 가장 높은 곳에 바다가 있네 - 김성식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 바다가 있네
낮은 곳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모든 하수구 아래 바다가 있네

몸을 낮춰 낮춘 몸이
응얼웅얼 모여드는
작은 물방울 버리지 못하고
천만개 굳어진 입술들이
한밤중 몰래 버린 수상스런 말들도 지우지 못하고
빨갛게 죽어간 폐수까지 거두어
파도에 씻어내던 바다가
다시 살아나는 말들만 골라
때때로 해일을 일으켜
썩은 갯가를 휘저어 대지만
끝내는 제 살을 태우면서
금강석 보다 더 단단한 소금 만들어
바람에 말리고 있었네


이 세상 가장 가장 낮은 곳에 엎드려
거듭 일어나는 바다를
오늘도 나는
조심스레 지나고 있네 *

 

* 진도 - 정완영  

장다리노란꽃밭보리밭

파란이랑구름도풀어놓으면

풀을뜯는양떼어라

휘파람한번만불어도

찰찰넘칠봄바다여

 

* 수평선 1 - 김형영 

하늘과 바다가 내통하더니

넘을 수 없는 선을 그었구나

 

나 이제 어디서 널 그리워하지 *

 

* 수평선 2 - 김형영 

땅끝 마을에 와서

수평선 바라보는 날이여

무수한 배는

넘을 수 없는 선을

넘어오고 넘어가는데

 

내 그리움 하나

실어 나르지 못하고

어느덧 깊어 버린

오늘 또 하루 *

 

* 바다가 - 허수경 

깊은 바다가 걸어왔네

나는 바다를 맞아 가득 잡으려 하네

손이 없네 손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손이 없어서 잡지 못하고 울려고 하네

눈이 없네

눈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바다가 안기지 못하고 서성인다 돌아선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하고 싶다

혀가 없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 그 집에 다 두고 왔다

 

글썽이고 싶네 검게 반짝이고 싶었네

그러나 아는 사람 집에 다, 다,

두고 왔네 *

* 허수경시집[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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