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차(茶) 시 모음

효림♡ 2017. 8. 14. 09:00

 

* 햇차를 끓이다가 -序詩 - 문태준

멀리 해남 대흥사 한 스님이 등기로 부쳐온 햇차 한봉지

물을 달여 햇차를 끓이다가 생각한다

누가 나에게 이런 간곡한 사연을 들으라는 것인가

마르고 뒤틀린 찻잎들이 차나무의 햇잎들로 막 피어나는 것이었다

소곤거리면서 젖고 푸른 눈썹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 문태준시집[맨발]-창비,2004

 

* 무등차(無等茶) - 김현승 

가을은
술보다
차 끓이기 좋은 시절.....


갈가마귀 울음에
산들 여위어 가고


씀바귀

마른 잎에
바람이 지나는


남쪽 11월의 긴 긴 밤을


차 끓이며
끓이며
외로움도 향기인양 마음에 젖는다 *

 

* 차(茶)를 달이듯 - 김종길 

청태(靑苔)낀 바위틈 물을 따와서

가랑잎을 태우며 차(茶)를 달이듯

지금부터는 좀더 슴슴하고 고요해야겠다. 

 

* 녹차를 마시며 - 윤수천 
그대를 생각한다
추운 겨울날
팔달산 돌아 내려오다가
녹차 한 잔을 나누어 마시던
그 가난했던 시절의 사랑을 생각한다

우리는 참 행복했구나
새들처럼 포근했구나

녹차를 마시며
그대를 생각한다
혹독한 겨울 속에서도 따뜻했던
우리의 사랑을 생각한다

 

* 설차 - 유안진

눈 내린 한밤중은

설록차를 마실 시간

옥잔에 흘러드는 대닢 푸른 숨결

고독도 그 얼마나 호강스런 향기인가

진실은 외로울밖에

순수도 눈물의 길

달빛이 별빛이 되어

이 호젓한 한 두 모금

산수화 한 폭 속에

선녀처럼 내 사는 듯

 

* 茶와 同情 - 최영미  
내 마음을 받아달라고
밑구녁까지 보이며 애원했건만
네가 준 것은
차와
동정뿐.

내 마음은 허겁지겁
미지근한 동정에도 입술을 데었고
너덜너덜 해진 자존심을 붙들고
오늘도 거울 앞에 섰다

봄이라고
개나리가 피었다 지는 줄도 모르고......

* 최영미시집[서른, 잔치는 끝났다]-창비, 1994

 

* 무등차의 고향 - 이은상 

무등산 작설차를

돌솥에 달여내어

초의선사 다법(茶法)대로

한 잔 들어 맛을 보고

또 한 잔은 빛깔 보고

다시 한 잔 향내 맡고

 

다도(茶道)를 듣노라니

밤 깊은 줄 몰랐구나. *

 

* 녹차송(綠茶頌) - 박희진
녹차를 마시면
피가 맑아지고 군살이 빠지고
눈빛이 흰 연꽃처럼
서느러워지느니.....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거든
목욕물 데워 피로를 풀게 하고
우선 한 자의 녹차를 권하여라
그러면 그것이 더없는 대접이리

벗의 얼굴이 보름달인 양
환히 빛날 쯤엔
거문고 한 가락 안 탈 수 없으리

좋은 차와 벗과 거문고와.....
그밖에 더 무엇을 바라리오
그저 안온하고 흡족할 따름이리

 

* 차 마시기 좋을 때 - 함동선
새벽 잠자리에서
어린 손녀의 전화를 받을 때

낮잠에서 깨어
창문으로 구름이 떠가는 걸 볼 때

여행 떠나서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 소리와 솔바람 소리를 들었을 때

내가 살아온 날을 돌아보며
얻은 것도 없으니 버릴 것도 없어
그저 하루하루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비록 영화의 이야기이지만
인조인간한테서 사람은 늙을 수 있어 좋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 어떤 제다법(製茶法) - 복효근

전주에 가면 茶門이라는 찻집이 있어
그 쥔장은 야생차를 고집하는데
그 냥반 따라 순창 회문산 야생차를 따러 갔다
여린 찻잎 다시 말하면 차의 잎
차의 입, 차의 입술
햇살과 바람과 이슬을 마시는 차나무의 입을
그 야들야들한 갓난 아이의 입술 같은 찻잎을
잔인하게 또옥똑 따는 것을 보고
다시는 차를 마시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 어린 잎순들을 달구어진 가마솥에 넣고 덖어서
꺼내어 덕석 위에 쏟아놓고
손으로 부벼서 찻잎에 상처를 낸다
찻물이 잘 우려나오게 하기 위함이리라
그러기를 아홉 번이라
아아 잔인하고 모진 제다법이여
다시는 차를 마시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완성된 차를 시음해보시라
갓 만든 차를 다관에 담고 물을 붓자
영영 죽어버린 줄 알았던 찻입들이
잘 익은 물 속에
제가 마신 회문산의 하늘과 구름과 바람을
다 풀어내 놓는데
아홉 번의 가마솥 모진 연단을 연록색 향기로 빚어내 놓는데
그리곤 아무 일 없다는 듯
애초 나무에 매달렸던 그 형상으로 돌아가
물고기처럼 다관 속에 노니는데……
그 차를 마시고도
그 찻잎의 흉내를 한 자락이라도 내지 못할 량이면
이승에서건 저승에서건
다시는 다시는
차를 마시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 초의차 - 범해선사

곡우에 이제 막 날이 개어도
노란 싹 잎은 아직 펴지 않았네
빈 솥에 세심히 잘 볶아내
밀실에서 잘 말리었구나
잣나무 그릇에 방원(方圓)으로 찍어 내어

대껍질로 꾸려 싼 다음 저장한다네

잘 간수해 바깥 기운을 단단히 막아 

한 사발에 향기 가득 떠도는구나 *

 

* 나옹선사

차나무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 없고

내려온 대중 산차(山茶)를 딴다

비록 터럭만한 풀도 움직이지 않으나

본체와 작용은 당당하여 어긋남이 없구나. *

 

* 普雨(보우)

그 누가 나처럼 이 우주를 소요하리

마음 따라 발길 마음대로 노니는데

돌평상에 앉고 누워 옷깃 차갑고

꽃핀 언덕 돌아오면 지팡이 향기롭네

바둑판 위 한가한 세월은 알고 있지만

인간사 흥망성쇠 내 어찌 알리

조촐하게 공양을 마친 뒤에

한줄기 차 달이는 연기 석양을 물들이네. *

-

宇宙逍遙孰我當  尋常隨意任彷徉

石床坐臥衣裳冷  花塢歸來杖屨香
局上自知閑日月 人間那識擾興亡
淸高更有常齊後 一抹茶煙染夕陽

 

* 다시(茶詩) - 함허 득통(函虛得通)스님  

一椀茶出一片心
一片心在一椀茶
當用一椀茶一嘗
一嘗應生無量樂

-

한 잔의 차는 한 조각 마음에서 나왔으니
한 조각 마음은 한 잔의 차에 담겼어라
마땅히 이 차 한 잔 한 번 맛보시게
한 번 맛보시면 한없는 즐거움이 솟아난다네. *

 

* 得茶字 - 정내교(鄭來僑) 

春水初生漲岸沙 - 춘수초생창안사
閒來着屐向田家 - 한래착극향전가
村深古木周遭立 - 촌심고목주조립
山僻行蹊繚繞斜 - 산벽행혜요요사
頗喜峽居逢樂歲 - 파희협거봉낙세
每從隣友說生涯 - 매종인우설생애
日長正好林間讀 - 일장정호임간독
汲得寒泉煮茗茶 - 급득한천자명다

-차를 끓이다

봄 강물이 불어나서 모래 벌판에 넘쳐나니
한가롭게 신을 신고 전원으로 나가보네.
마을은 깊어 고목이 둘러 에워쌌고
산은 외져 오솔길이 구불구불 나 있네.
산골에도 풍년 들까 마음 제법 흔쾌하여
이웃 사는 벗들하고 살아갈 일 털어놓네.
해가 길어 수풀 아래 책 읽기가 딱 좋으니
찬 샘물을 길어다가 좋은 차를 끓이네. *

 

* 동다송(東茶頌) - 초의선사

찻물 끓는 대숲 소리 솔바람 소리 쓸쓸하고 청량하니

맑고 찬 기운 뼈에 스며 마음을 깨워주네

흰 구름 밝은 달 청해 두 손님 되니

도인의 찻자리 이것이 빼어난 경지라네. *

-

松濤俱蕭凉

淸寒瑩骨心肝惺
惟許白雲明月爲二客

道人座上此爲勝

* 정찬주의 다인기행-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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