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침에 - 신경림 * 세밑 - 신경림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뒤돌아본다. 푸섶길의 가없음을 배우고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새소리의 기쁨을 비로소 안 한 해를. 비탈길을 터벅거리며 뒤돌아본다. 저물녘 내게 몰아쳐온 이 바람, 무엇인가, 송두리째 나를 흔들어놓는 이 폭풍 이 비바람은 무엇인가, 눈.. 좋아하는 詩 2016.12.27
고향길 - 신경림 * 고향길 - 신경림 아무도 찾지 않으려네 내 살던 집 툇마루에 앉으면 벽에는 아직도 쥐오줌 얼룩져 있으리 담 너머로 늙은 수유나뭇잎 날리거든 두레박으로 우물물 한 모금 떠 마시고 가위소리 요란한 엿장수 되어 고추잠자리 새빨간 노을길 서성이려네 감석 깔린 장길은 피하려네 내 좋.. 좋아하는 詩 2015.01.28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위하여 - 신경림 *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위하여 - 신경림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위하여 더불어 숨 쉬고 사는 모든 것을 위하여 내 터를 아름답게 만들겠다 죽어간 것들을 위하여 이 땅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 것들을 위하여 땅속에서 깊고 넓게 숨어 있는 것들을 위하여 언젠가 힘차게 솟아.. 좋아하는 詩 2014.11.04
다시 느티나무가 - 신경림 * 먼 데, 그 먼데를 향하여 - 신경림 아주 먼 데. 말도 통하지 않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먼 데까지 가자고. 어느날 나는 집을 나왔다. 걷고 타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몇날 몇밤을 지나서. 이쯤은 꽃도 나무도 낯이 설겠지, 새소리도 짐승 울음소리도 귀에 설겠지, 짐을 풀고 찾아들.. 좋아하는 詩 2014.05.20
산읍일지(山邑日誌) - 신경림 * 산읍 일지(山邑日誌) - 신경림 아무렇게나 살아갈 것인가 눈 오는 밤에 나는 잠이 오지 않는다 박군은 감방에서 송형은 병상에서 나는 팔을 벤 여윈 아내의 곁에서 우리는 서로 이렇게 헤어져 지붕 위에 서걱이는 눈 소리만 들을 것인가 납북된 동향의 시인을 생각한다 그의 개가한 아내.. 좋아하는 詩 2010.12.09
아버지의 그늘 - 신경림 * 아버지의 그늘 - 신경림 툭하면 아버지는 오밤중에 취해서 너부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술국을 끓이고 할머니는 집안이 망했다고 종주먹질을 해댔지만, 며칠이고 집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값싼 향수내가 나는 싫었다. 아버지는 종종 장바닥에서 품삯을 못 .. 좋아하는 詩 2009.07.18
세밑에 오는 눈 - 신경림 * 세밑에 오는 눈 - 신경림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등과 가슴에 묻은 얼룩을 지우면서 세상의 온갓 부끄러운 짓, 너저분한 곳을 덮으면서 깨어진 것, 금간 것을 쓰다듬으면서 파인 길, 골진 마당을 메우면서 밝은 날 온 세상을 비칠 햇살 더 하얗게 빛나지 않으면 어쩌나 더 멀리 퍼지지 않으.. 좋아하는 詩 2008.12.03
갈대 - 신경림 *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ㅡ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좋아하는 詩 2008.09.24
농무 - 신경림 * 농무(農舞) -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쪼.. 좋아하는 詩 2008.09.19
집으로 가는 길 - 신경림 * 집으로 가는 길 - 신경림 가볍게 걸어가고 싶다, 석양 비낀 산길을. 땅거미 속에 긴 그림자를 묻으면서.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콧노래 부르는 것도 좋을 게다. 지나고 보면 한결같이 빛바랜 수채화 같은 것, 거리를 메우고 도시에 넘치던 함성도, 물러서지 않으리라 굳게 잡았던 손들.. 좋아하는 詩 2008.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