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권정생 동시 모음

효림♡ 2012. 2. 7. 10:09

* 쑥절편 - 권정생 

늬 이름을 잊았부렀다

다만 탱자나뭇집

가스난 줄밲이 모온다 

 

그라곤

고것 말있다

한창 보리고갯때  

 

칡뿌리떡 쫌 안 준다꼬

쌈한 뒤

상굿 말 안 하고 지난

가스나아야!

 

보리알이 누우런

단옷날

귀땅머리에 창포꽃 따 꽂고

옥색 저고리

이쁘장하게 꾸미고  

 

그넷줄 느티남ㄱ에

기대 선 내한테

가스나아야!

 

쑥절편 한 쪼가리

뺄죽 내밀맨서

깜빡거리던 두 눈

가스나아야!

 

고게 정녕

칡뿌리떡 값은

아니었겠지

 

그새

앵두나무 밑에서

사리사리 엮어 뒀던

가스나아야!

 

늬 마음

모두를 내민 거지

가스나아야! *

~상굿-'지금까지'의 안동 사투리

~귀땅머리-귀 땋은 머리

 

* 호박 넝쿨 

돌담 위로

앞집 호박 넝쿨

뒷집 호박 넝쿨

 

앞집 호박 넝쿨

뒷집 쪽으로 기어가고  

 

뒷집 호박 넝쿨

앞집 쪽으로 기어가고

 

호박 넝쿨이

전쟁 시작나!

서로 돌진해 간다

 

밤 자고 나면

흠씩흠씩 쳐들어가 있다

이젠 한 뼘만 더 가면

맞붙는다

누가 이길까?

 

아아니?

호박 넝쿨 서로 고개 숙이고

사알짝 비키며 간다

 

앞집 호박 넝쿨

"제 등을 타 넘고 가세요"

뒷집 호박 텅쿨

"제 등을 타 넘고 가세요"

 

호박 넝쿨은

사이 좋게 어울려

빈자리 없이 퍼런 이파리를

덮는다

 

호박 넝쿨은

전쟁하지 앟고

정답게 돌담 가득

꽃피웠다. *

 

* 강냉이 

집 모퉁이 토담 밑에

한 페기 두 페기 세 페기

 

생야는 구덩이 파고

난 강낭알 뗏구고

어맨 흙 덮고

 

한 치 크면 거름 주고

두 치 크면 오줌 주고

인진 내 키만춤 컸다

 

"요건 내 강낭"

손가락으로 꼭

점찍어 놓고

열하고 한 밤 자고 나서

 

우린 봇따리 싸둘업고

창창 길 떠나 피난 갔다

모퉁이 강낭은 저꺼짐 두고

 

"어여―"

어매캉 아배캉

난데 밤별 쳐다보며

고향 생각 하실 때만

 

내 혼차

모퉁이 저꺼짐 두고 왔빈

강낭 생각 했다

 

"인지쯤

샘지 나고 알이 밸 낀데....." *

~페기-포기 ~생야-형 ~뗏구고-떨어뜨리고

~저꺼짐-저희끼리만 ~인지쯤-이제쯤 ~샘지-수염 

 

* 송아지 

시냇가 말뚝에

목매인 송아지

 

지난 장날 엄마하고 헤어져

팔려 왔나 봐,

 

잔디풀을 오득오득

뜯어 먹다가

 

하늘을 쳐다보니

구름이 동동

엄마하고 같이 보던 구름.....,

 

그래서

음매―

음매―

울어 버렸다. *

 

* 허수아비 

아무도 없는 산골밭에

허수아비 혼자 섰다

갈기 갈기 옷 입고

옆으로 비뚜름

버티고 섰다

 

"할아버지 왜 그냥 섰에요?"

"주인이 아무 말 없구만"

"언제까지 그러구 있을 테야요"

 

매운 바람은 불고

곡식은 거두어졌는데

허수아비 그대로

지키고 섰다. *

 

* 짝짝신 

검정 고무신

나란히 두 켤레

 

내 건 구멍 뚫린 헌 고무신

명호건 그저께 새로 산

새 고무신

 

명호가 모르고

내 고무신과

짝짝이 신고 갔다

 

남은 한 짝 고무신

빨빨 새 고무신

그렇지만 난

구멍 뚫린

내 고무신이 진짜

 

"명호야! 신 좀 봐"

명호가 내려다보고

짝짝이 신 알았다

 

나 한쪽 발 벗고

짝발 딛고

명호 한 쪽 발 벗고

짝발 딛고

 

헌 고무신

내 발이 쏘옥

새 고무신

명호 발이 쏘옥

 

교문 밖으로

빵빵 굴러간다. *

 

* 권정생동시집[동시 삼베 치마]-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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