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비 - 정완영
실타래 푸는 건지, 풀었다가 감는 건지
창밖에 목련꽃도 조바심을 하는 건지
병아리 물 먹는 소리로 낙숫물이 떨어진다. *
* 감꽃
바람 한 점 없는 날에, 보는 이도 없는 날에
푸른 산 뻐꾸기 울고 감꽃 하나 떨어진다
감꽃만 떨어져 누워도 온 세상은 환하다.
울고 있는 뻐꾸기에게, 누워 있는 감꽃에게
이 세상 한복판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여기가 그 자리라며 감꽃 둘레 환하다. *
* 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
다섯 살 우리 아기 앞니 빠져 내리듯이
하늘에서 하얀 눈발이 쏙쏙 빠져 내립니다
사비약 사비약 하며 사비약눈 내립니다. *
-사비약눈: 펑펑 내리는 함박눈이 아니라 아이들 이가 빠지듯이 한 잎 두 잎 내리는 첫눈.
* 외딴집
낮에는 해가 하나, 밤에는 달이 하나
고목나무 가지 끝에 올라앉은 새 둥지 하나
할머니 혼자서 사는 집 허리 굽은 길이 하나 *
* 귀뚜리 울음소리
귀뚜리 울음소리에 또랑또랑 별이 뜨고
귀뚜리 울음소리에 대롱대롱 이슬 맺고
오소소 꽃씨는 추워서 씨방 속에 숨습니다. *
* 텔레비전
할아버지 보거나 말거나 혼자 도는 텔레비전
텔레비전 돌거나 말거나 코를 고는 할아버지
시계는 초저녁인데 우리 집은 한밤중.
텔레비전 방방 울려야 잠을 자는 할아버지
할아버지 자거나 말거나 혼자 신난 텔레비전
시계는 오밤중인데 우리 집은 초저녁. *
* 운주사 석불
천년을 참았거니
하루해를 다 못 참아
복사꽃 같은 미소
오지랖을 다 적시나
코와 입 문드러지도록
봄을 웃고 나선 석불 *
* 정완영동시조[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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