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밤 - 정호승
들깻잎에 초승달을 싸서
어머님께 드린다
어머니는 맛있다고 자꾸 잡수신다
내일 밤엔 상추잎에 별을 싸서 드려야지 *
* 참새
아버지가 내게 말씀하셨다
참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새한테 말했다
참새가 되어야 한다고 *
* 신발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내 신발이 말했다 발아, 미안하다
내 발도 말했다 신발아, 괜찮아? 너도 참 아프지? *
* 꽃과 나
꽃이 나를 바라봅니다
나도 꽃을 바라봅니다
꽃이 나를 보고 웃음을 띄웁니다
나도 꽃을 보고 웃음을 띄웁니다
아침부터 햇살이 눈부십니다
꽃은 아마
내가 꽃인 줄 아나 봅니다 *
* 나무의 마음
사람들은 나무의 그림자를
마구 밟고 다닌다
나무는 그림자가 밟힐 때마다
온몸에 멍이 들어도
동상에 걸린 발을
젖가슴에 품어 주던 어머니처럼
사람들의 발을
기꺼이 껴안아 준다 *
* 민들레
민들레는 왜
보도블록 틈 사이에 끼여
피어날 때가 많을까
나는 왜
아파트 뒷길
보도블록에 쭈그리고 앉아
우는 날이 많을까 *
* 정호승동시집[참새]-처음주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