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 - 유안진 * 자격 - 유안진 초가을 햇살웃음 잘 웃는 사람, 민들레 홀씨 바람 타듯이, 생활은 품앗이로 마지못해 이어져도, 날개옷을 훔치려 선녀를 기다리는 사람, 슬픔 익는 지붕마다 흥건한 달빛 표정으로 열이레 밤하늘을 닮은 사람, 모습 있는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알고, 그것들을 사.. 좋아하는 詩 2017.06.05
지울 수 없는 얼굴 - 고정희 * 지울 수 없는 얼굴 - 고정희 냉정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얼음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불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무심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징그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부드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그윽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따뜻한 당신이.. 좋아하는 詩 2017.05.22
오늘의 결심 - 김경미 * 오늘의 결심 - 김경미 라일락이나 은행나무보다 높은 곳에 살지 않겠다 초저녁 별빛보다 많은 등을 켜지 않겠다 여행용 트렁크는 나의 서재 지구 끝까지 들고 가겠다 썩은 치아 같은 실망 오후에는 꼭 치과엘 가겠다 밤하늘에 노랗게 불 켜진 보름달을 신호등으로 알고 급히 횡단보도를.. 좋아하는 詩 2017.05.22
다시 오월에 - 조태일 * 다시 오월에 - 조태일 오월은 온몸을 던져 일으켜세우는 달. 푸르름 속의 눈물이거나 눈물 속에 흐르는 강물까지, 벼랑 끝 모진 비바람으로 쓰러져 떨고 있는 들꽃까지, 오월은 고개를 숙여 잊혀진 것들을 노래하는 달. 햇무리, 달무리, 별무리 속의 숨결이거나 숨결 속에 사는 오월의 죽.. 좋아하는 詩 2017.05.18
봄날의 심장 - 마종기 * 봄날의 심장 - 마종기 어느 해였지? 갑자기 여러 개의 봄이 한꺼번에 찾아와 정신 나간 나무들 어쩔 줄 몰라 기절하고 평생 숨겨온 비밀까지 모조리 털어내어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과 라일락, 서둘러 피어나는 소리에 동네가 들썩이고 지나가던 바람까지 돌아보며 웃던 날. 그런 계.. 좋아하는 詩 2017.05.02
눈이 오시네 - 이상화 * 눈이 오시네 - 이상화 눈이 오시면ㅡ 내마음은 밋치나니 내마음은 달뜨나니 오 눈오시는 오날밤에 그리운 그이는 가시네 그리운 그이는 가시고 눈은 작고 오시네 눈이 오시면ㅡ 내마음은 달뜨나니 내마음은 밋치나니 오 눈오시는 이밤에 그리운 그이는 가시네 그리운 그이는 가시고 눈.. 좋아하는 詩 2016.12.30
새 아침에 - 신경림 * 세밑 - 신경림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뒤돌아본다. 푸섶길의 가없음을 배우고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새소리의 기쁨을 비로소 안 한 해를. 비탈길을 터벅거리며 뒤돌아본다. 저물녘 내게 몰아쳐온 이 바람, 무엇인가, 송두리째 나를 흔들어놓는 이 폭풍 이 비바람은 무엇인가, 눈.. 좋아하는 詩 2016.12.27
물이 없는 얼굴 - 청화스님 * 아프고 서러운 날들 - 청 화 내 아프고 서러운 날들이 남긴 붉은 고추를 먹고 그 매운 맛에 딸꾹질하며 딸꾹질하며 긁어진 잔뼈는 무엇에도 부러지지 않는 강철이 되어 온갖 구름 헤치고 찾은 나의 하늘 상(傷)한데 없이 잘 받치고 있네. 요만한 하늘을 만나 받치는 요만한 기둥이 되기 .. 좋아하는 詩 2016.12.02
좋은 시절 - 장석주 * 좋은 시절 - 장석주 튀긴 두부 두 모를 기쁨으로 삼던 추분이나 북어 한 쾌를 끓이던 상강(霜降)의 때, 아니면 구운 고등어 한 손에 찬밥을 먹던 중양절(重陽節) 늦은 저녁이었겠지. 당신과 나는 문 앞에서 먼 곳을 돌아온 끝을 바라본다. 물이 흐르는데 물은 제 흐름을 미처 알지 못하고, .. 좋아하는 詩 2016.08.17
태산(泰山)이시다 - 김주대 * 태산(泰山)이시다 - 김주대 경비 아저씨가 먼저 인사를 건네셔서 죄송한 마음에 나중에는 내가 화장실에서든 어디서든 마주치기만 하면 얼른 고개를 숙인 거라. 그래 그랬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저씨가 우편함 배달물들을 2층 사무실까지 갖다 주기 시작하시데. 나대로는 또 그.. 좋아하는 詩 2016.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