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비(綠肥) - 정일근 * 녹비(綠肥) - 정일근 자운영은 꽃이 만발했을 때 갈아엎는다 붉은 꽃이며 푸른 잎 싹쓸이하여 땅에 묻는다 저걸 어쩌나 저걸 어쩌나 당신이 탄식할지라도 그건 농부의 야만이 아니라 꽃의 자비다 꽃 피워서 꿀벌에게 모두 공양 하고 가장 아름다운 시간에 자운영은 땅에 묻혀 땅의 향기.. 좋아하는 詩 2013.06.13
정일근 시 모음 2 * 은현리 홀아비바람꽃 - 정일근 산다는 것은 버리는 일이다 내 심장 꺼내고 그 자리에 채워 넣었던 첫사랑 했으나, 그해 가을 진해 바다로 투신하고 싶었던 어린나이에 감당할 수 없었던 심장의 통증까지 추억에서 꺼내 내버린 지 오래다 詩에 목숨 걸었으나, 당선을 알려주던 노란 전보 .. 시인 詩 모음 2011.01.31
은현리 天文學校 - 정일근 * 은현리 天文學校 - 정일근 내 사는 은현리 산골에 별을 보러 가는 천문학교가 있다. 은현리 천문학교에서 나는 별반 담임 선생님. 가난한 우리반 교실에는 천체망원경이나 천리경은 없다. 그러나 어두워지기 전부터 칠판을 깨끗이 닦아놓는 착한 하늘이 있고, 일찍 등교해서 교실 유리.. 좋아하는 詩 2011.01.31
유배지에서 보내는 김정희의 편지 - 정일근 * 유배지에서 보내는 김정희의 편지 - 정일근 -이천 리 대해 밧게 잇난 마암 세한도를 그리는 밤 오늘따라 대정바다는 참으로 고요합니다 부인 지난 달 초사흘 가복을 통해 보내주신 서책과 편지를 이 달 하순 늦게야 반가이 받아 읽으며 이순 나이에도 천 리 뭍길과 천리 물길 큰 바다를 .. 좋아하는 詩 2009.12.31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 정일근 *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 정일근 * 제 1 신 아직은 미명이다 강진의 하늘 강진의 벌판 새벽이 당도하길 기다리며 죽로차를 달이는 치운 계절, 학연아 남해바다를 건너 牛頭峰을 넘어오다 우우 소울음으로 몰아치는 하늬바람에 문풍지에 숨겨둔 내 귀 하나 부질없이 부질없이 .. 좋아하는 詩 2009.11.30
애기똥풀이 하는 말 - 정일근 * 애기똥풀이 하는 말 - 정일근 내 이름 너희들의 방언으로 애기똥풀이라 부르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내 몸 꺾어 노란 피 내보이며 노란 애기똥을 닮았지, 증명하려고는 마 너희들이 명명한 가벼운 이름, 더 가벼운 손짓에 나는 상처받고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어 너희들 속에 생명이 있다.. 좋아하는 詩 2009.06.01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 정일근 *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 정일근 먼 바다로 나가 하루 종일 고래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사랑이 한 마리 고래라는 것을 망망대해에서 검은 일 획 그으며 반짝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지는 고래는 첫사랑처럼 환호하며 찾아왔다 이뤄지지 못할 사랑처럼 아프게 사라진다 생의 엔.. 좋아하는 詩 2009.05.11
모든 기차는 바다로 가고 있다 - 정일근 * 모든 기차는 바다로 가고 있다 - 정일근 호남선 철길이 익산역에서 슬그머니 남쪽바다로 전라선을 풀어 놓는 것은 그건 기차가 바다를 그리워해서이다 호남들판 동서로 가로질러갈 때 지평선 바라보며 입 꾹 다문 기차가 임실 남원 곡성 구례 지나며 기적소리 점점 요란해지는 것은 그.. 좋아하는 詩 2009.05.11
봄날은 간다 시 모음 * 봄날은 간다 - 정일근 벗꽃이 진다, 휘날리는 벚꽃 아래서 연분홍 치마가 휘날리더라,* 그런 늙은 유행가가 흥얼거려진다는 것, 내 생(生)도 잔치의 파장처럼 시들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늘어진 벚나무 가지 사이로 경축 제40회 진해 군항제 현수막이 보인다 40년이라, 내 몸도 그 세월을.. 시인 詩 모음 2009.03.24
사월에 걸려온 전화 - 정일근 * 사월에 걸려온 전화 - 정일근 사춘기 시절 등교길에서 만나 서로 얼굴 붉히던 고 계집애 예년에 비해 일찍 벚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일찍 핀 벚꽃처럼 저도 일찍 혼자가 되어 우리가 좋아했던 나이쯤 되는 아들아이와 살고 있는 아내 앞에서도 내 팔짱을 끼며, 우리는 친구지 사.. 좋아하는 詩 2009.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