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살얼음 아래 같은 데 1~2 - 문태준

효림♡ 2009. 6. 18. 08:15

* 살얼음 아래 같은 데 1 - 문태준  

 가는, 조촘조촘 가다 가만히 한자리서 멈추는 물고기처럼 

 가라앉은 물돌 곁에서, 썩은 나무싶 밑에서 조으는 물고기처럼 

 추운 저녁만 있으나 야위고 맑은 얼굴로 

 마음아, 너 갈 데라도 있니? 

살얼음 아래 같은 데 

흰 매화 핀 살얼음 아래 같은 데 

 

* 살얼음 아래 같은 데 2 - 生家  

겨울 아침 언 길을 걸어

물가에 이르렀다

나와 물고기 사이

창이 하나 생겼다

물고기네 지붕을 튼 살얼음의 창

투명한 창 아래

물고기네 방이 한눈에 훤했다

나의 생가 같았다

창으로 나를 보고

생가의 식구들이

나를 못 알아보고

사방 쪽방으로 흩어졌다

젖을 갓 땐 어린것들은

찬 마루서 그냥저냥 그네끼리 놀고

어미들은

물속 쌓인 돌과 돌 그 틈새로

그걸 깊은 데라고

그걸 가장 깊은 속이라고 떼로 들어가

나를 못 알아보고

무슨 급한 궁리를 하느라

그 비좁은 구석방에 빼곡히 서서

마음아, 너도 아직 이 생가에 살고 있는가

시린 물속 시린 물고기의 눈을 달고

 

*문태준시집 [그늘의 발달]-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