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 - 장석남 * 세한(歲寒) - 장석남 소나무들이 늘어서서 외롭다 소나무는 연대하지 않는다 독자 노선의 소나무마다는 바람의 사업장이다 대장간이 되어 연장을 벼리다가 사나운 준마들을 키운다 나의 뺨은 얼어간다 늑골 아래 연인은 기침을 한다 바람은 재빨리 기침을 모아 갈밭 속에 뿌리고 지난 .. 좋아하는 詩 2018.03.12
오솔길을 염려함 - 장석남 * 오솔길을 염려함 - 장석남 나는 늘 큰길이 낯설므로 오솔길을 택하여 가나 어머니는, 내가 가는 길을 염려하실 테지 풀이 무성한 길, 패랭이가 피고 가을이라 나뭇잎이 버스럭대고 독한 뱀의 꼬리도 보이는 맵디매운 뙤약볕 속으로 지워져가는 길 어느 모퉁이에서 땀을 닦으며 나는 아.. 좋아하는 詩 2017.10.10
안부 - 장석남 * 저물녘 -모과의 일 - 장석남 저물면 아무도 없는 데로 가자 가도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고요의 눈망울 속에 묻어둔 보석의 살들 -이마 눈 코 깨물던 어깨, 점이 번진 젖, 따뜻한 꽃까지 다 어루어서 잠시 골라 앉은 바윗돌아 좀 무겁느냐? 그렇게 청매빛으로다가 저문다 결국 모과는 상.. 좋아하는 詩 2014.09.29
물맛 - 장석남 * 물맛 - 장석남 물맛을 차차 알아간다 영원으로 이어지는 맨발인, 다 싫고 냉수나 한 사발 마시고 싶은 때 잦다 오르막 끝나 땀 훔치고 이제 내리닫이, 그 언덕 보리밭 바람 같은, 손뼉 치며 감탄할 것 없이 그저 속에서 훤칠하게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그 걸음걸이 내 것으로도 몰래 익혀.. 좋아하는 詩 2014.09.25
저녁 햇빛에 마음을 내어 말리다 - 장석남 * 저녁 햇빛에 마음을 내어 말리다 -섬진강에서 - 장석남 어미 소가 송아지 등을 핥아 준다 막 이삭 피는 보리밭을 핥는 바람 아, 저 혓자국! 나는 그곳의 낮아지는 저녁해에 마음을 내어 말린다 저만치 바람에 들菊 그늘이 시큰대고 무릎이 시큰대고 적산가옥 청춘의 주소 위를 할퀴며 흙.. 좋아하는 詩 2013.05.28
글씨를 말리고 - 장석남 * 글씨를 말리고 - 古山 書室에서 - 장석남 붓을 잡아보고 '一字'를 배우고 붓끝을 세워서 잠두(蠶頭)를 마치고 또 수로(垂露)*를 마치고 창으로 들어온 뉘엿한 햇빛에 떨리고 서툰 획들을 말린 일이 있습지요 내 손에서 쏟아져나온 것인지 어깨에서 쏟아져나온 것인지 하여튼 붓으로 먹을 .. 좋아하는 詩 2011.06.14
장석남 시 모음 3 * 오막살이 집 한 채 - 장석남 나의 가슴이 요정도로만 떨려서는 아무것도 흔들 수 없 지만 저렇게 멀리 있는, 저녁빛 받는 연(蓮)잎이라든가 어 둠에 박혀오는 별이라든가 하는 건 떨게 할 수 있으니 내려 가는 물소리를 붙잡고서 같이 집이나 한 채 짓자고 앉아 있 는 밤입니다 떨림 속에 .. 시인 詩 모음 2010.09.20
시를 다 지우다 - 장석남 * 시를 다 지우다 - 장석남 새벽빛도 홑겹만 남고 시인으로서도 참으로 오랜만에 새벽뿐인 자리에 떨고 앉아 공복을 즐기다 언제 스민 건가? 먹물 스민 손톱을 보며 그믐달처럼 웃는다 공복 창자의 이랑마다 무슨 꽃씨를 뿌릴까 무슨 망아지를 풀어볼까 시의 나라의 국경을 부수고 시의 .. 좋아하는 詩 2010.09.10
봉숭아를 심고 - 장석남 * 봉숭아를 심고 - 장석남 조그만 샛강이 하나 흘러왔다고 하면 될까 바람들이 슬하의 식구들을 데리고 내 속눈썹을 스친다고 하면 될까 봉숭아 씨를 얻어다 화분에 묻고 싹이 돋아 문득 그 앞에 쪼그리고 앉는 일이여 돋은 떡잎 위에 어른대는 해와 달에도 겸하여 조심히 물을 뿌리는 일.. 좋아하는 詩 2009.08.05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 장석남 *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 장석남 죽은 꽃나무를 뽑아낸 일뿐인데 그리고 꽃나무가 있던 자리를 바라본 일뿐인데 목이 말라 사이다를 한 컵 마시고는 다시 그 자리를 바라본 일뿐인데 잘못 꾼 꿈이 있었나? 인젠 꽃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는 잔상들 지나가는 바람이 잠시 손금을 펴보.. 좋아하는 詩 2009.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