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20 -감傳 - 김용택 * 섬진강 20 -감傳 - 김용택 감들이 불쌍했다. 아버님은 초가을부터 행여나 행여나 하시며 거간꾼들을 기다리다 감들이 다 익어가도 팔릴 기미가 없자 큰놈만 대충대충 골라 따도 감은 끝이 없고, 첫서리가 내리고 감들이 사정없이 물러지기 시작하자 밤 터는 긴 장대로 감나무를 두들겨패.. 김용택* 2009.06.16
섬진강 19 -무덤에서 - 김용택 * 섬진강 19 -무덤에서 - 김용택 아우야 여기 아무도 찾아온 흔적이 없구나. 풀들이 키도 넘게 우거져 몇바퀴 무덤 밖을 헤매이다 풀들을 헤친다. 무덤에 이르는 길은 길이 없어도 무덤에 이르러 길이 끝나고 길이 막힌다. 아우야 저녁이면 풀벌레들이 얼마나 자지러지게 울고 반딧불들이 .. 김용택* 2009.06.16
섬진강 18 -나루 - 김용택 * 섬진강 18 -나루 - 김용택 섬진강 나루에 바람이 부누나 꽃이 피누나 나를 스쳐간 바람은 저 건너 풀꽃들을 천번 만번 흔들고 이 건너 물결은 땅을 조금씩 허물어 풀뿌리를 하얗게 씻는구나 고향 산천 떠나보내던 손짓들 배 가던 저 푸른 물 깊이 아물거리고 정든 땅 바라보며 눈물 뿌려 .. 김용택* 2009.06.16
섬진강 17 -동구 - 김용택 * 섬진강 17 -동구 - 김용택 추석에 내려왔다 추수 끝내고 서울 가는 아우야 동구 단풍 물든 정자나무 아래 - 차비나 혀라 - 있어요 어머니 철 지난 옷 속에서 꼬깃꼬깃 몇푼 쥐여주는 소나무 껍질 같은 어머니 손길 차마 뒤돌아보지 못하고 고개 숙여 텅 빈 들길 터벅터벅 걸어가는 아우야 .. 김용택* 2009.06.15
섬진강 16 -이사 - 김용택 * 섬진강 16 -이사 - 김용택 우리들은 저녁밥을 일찍 먹고 너나없이 모여들어 이삿짐을 꾸렸다. 거울 깨진 농짝 하나, 테맨 장독 몇 개, 헌옷 보따리, 때 낀 캐시미롱 이불. 그 흔한 흑백 텔레비 하나 없는 이런 촌 세간살이들이 서울에 가서 산다는 게 우습고 기맥히는 일이지만, 우리들은 .. 김용택* 2009.06.15
섬진강 15 -겨울, 사랑의 편지 - 김용택 * 섬진강 15 -겨울, 사랑의 편지 - 김용택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겨울 논길을 지나며 맑은 피로 가만히 숨 멈추고 얼어 있는 시린 보릿잎에 얼굴을 대보면 따뜻한.. 김용택* 2009.06.15
섬진강 14 -호박들 - 김용택 * 섬진강 14 -호박들 - 김용택 자갈밭귀퉁이에 담장밑응달에 개똥도안누는곳 여기저기아무데나 호미로득득긁고 꼬쟁이로푹푹찔러 듬성헐쩍땅을파서 두어개씩던져넣고 몸묻힌둥마는둥 달구새끼발톱피해 들쥐산새눈을피해 싹이나고잎이나서 줄기나고넝쿨뻗어 오뉴월불볕속에 긴뿌리에.. 김용택* 2009.06.12
섬진강 13 -자연부락 - 김용택 * 섬진강 13 -자연부락 - 김용택 푸른 하늘 그 아래 청산 강이 있어 바라보고 그 강언덕 산자락에 사람들이 모여 물 나고 빛 좋은 곳 터를 잡아 영차영차 집을 짓고 힘써 논과 밭을 만들고 철 따라 꽃 피고 지고 씨뿌려 거두는 것같이 자식들을 늘려 동네를 이루어 살았으니 그게 몸과 마음 .. 김용택* 2009.06.11
섬진강 12 - 아버님의 마을 - 김용택 * 섬진강 12 - 아버님의 마을 - 김용택 세상은 별것이 아니구나. 우리가 이 땅에 나서 이 땅에 사는 것은 누구누구 때문이 아니구나. 새벽잠에 깨어 논바닥 길바닥에 깔린 서리 낀 지푸라기들을 밟으며 아버님의 마을까지 가는 동안 마을마다 몇 등씩 불빛이 살아 있고 새벽닭이 우는구나. .. 김용택* 2009.06.11
섬진강 11 -다시 설레는 봄날에 - 김용택 * 섬진강 11 -다시 설레는 봄날에 - 김용택 당신, 당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곱게 지켜 곱게 바치는 땅의 순결, 그 설레이는 가슴 보드라운 떨림으로 쓰러지며 껴안을, 내 몸 처음 열어 골고루 적셔 채워줄 당신. 혁명의 아침같이, 산굽이 돌아오며 아침 여는 저기 저 물굽이같이 부드러운 .. 김용택* 2009.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