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28 -물새 - 김용택 * 섬진강 28 -물새 - 김용택 희고 고운 모래밭을 걸어 쭈뼛쭈뼛 너는 강물로 가거라 희미한 발자국이 모래 속에 숨은 바람을 모은다 바람아, 바람아, 물가에 가지 마라 작고, 흰 배를 뒤집는 피라미떼들, 햇볕을 쬔다 천년을 뒹굴어온 모래알 몇개를 허무는 네 발소리를 들으려고 강물은 하.. 김용택* 2009.06.24
자화상 - 김용택 * 자화상 - 김용택 사람들이 앞만 보며 부지런히 나를 앞질러갔습니다 나는 산도 보고, 물도 보고, 눈도 보고, 빗줄기가 강물을 딛고 건너는 것도 보고 꽃 피고 지는 것도 보며 깐닥깐닥 걷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떠나갔지요 난 남았습니다 남아서, 새, 어머니, 농부, 별, 늦게 지는 달, .. 김용택* 2009.06.24
살구나무 - 김용택 * 살구나무 - 김용택 꽃이 피고 새잎이 돋는 봄이 되면, 그리고 너는 예쁜 종아리를 다 드러내놓고 나비처럼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나타나겠지 한 그루의 나무가 온통 꽃을 그리는 그날이 오면, 그러면 너는 그 꽃그늘 아래 서서 웃겠지 하얀 팔목을 어깨까지 다 드러내놓고 온몸으로 웃겠.. 김용택* 2009.06.24
섬진강 27 -새벽길 - 김용택 * 섬진강 27 -새벽길 - 김용택 가네 떠나가네 찔레꽃 핀 강길을 따라 물소리 따라오는 어스름 새벽 달빛 밟으며 가네 가지를 말라고 가지를 말라고 물소리 따라오며 발목을 잡는 설운 강길을 따라 차마 떨어지지 않는 떨리는 발길마다 채이는 눈물을 차며 강냉이잎 사이 달 같은 얼굴들, 아.. 김용택* 2009.06.23
섬진강 26 -밤꽃 피는 유월에 - 김용택 * 섬진강 26 -밤꽃 피는 유월에 - 김용택 어이, 이 사람 자네 죽어 밤꽃 피는 유월의 산 거기 둥그렇게 잠들더니 내 죽어 밤꽃 피는 유월의 산 여기 묻혀 살아서나 죽어서나 우리 서로 바라보겠네. 여기 나서 자라 농사 지으며 늙어 죽을 때까지 자네 그 산 거기 나무하고 풀하고 곡식 뿌려 .. 김용택* 2009.06.23
섬진강 25 -아버지 - 김용택 * 섬진강 25 -아버지 - 김용택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ㅡ전도서 1:3~5 아버지, 그렇게도 꽝꽝 언 땅 녹고 뜬 땅 가라앉아 아름다운 아버지 산천.. 김용택* 2009.06.22
섬진강 24 -맑은 날 - 김용택 * 섬진강 24 -맑은 날 - 김용택 할머님은 아흔네 해 동안 짊어진 짐을 부리고 허리를 펴 이 마을에 풀어놨던 숨결을 구석구석 다 거둬들였다가 다시 길게 이 작은 강변 마을에 골고루 풀었습니다. 할머님이 살아생전 밤낮으로 보시던 할머니 나이보다 더 늙고 할머니 일생보다도 더 만고풍.. 김용택* 2009.06.19
섬진강 23 -편지 두 통 - 김용택 * 섬진강 23 -편지 두 통 - 김용택 * 어머님께 엄마 보고 싶어요 바쁜 철이 되어가니 겨울에 그렇게나마 고와진 손발 또 거칠어지겠군요 엄마 딸 곧 직장 갖게 될 것 같아요 엄마 나 학교 못 다녀도 괜찮아요 너무 걱정 마시고 몸 편하세요 어머니 딸이 된 것 그리고 이렇게 맘이 크게 된 것 .. 김용택* 2009.06.19
섬진강 22 -누님의 손끝 - 김용택 * 섬진강 22 -누님의 손끝 - 김용택 누님. 누님 같은 가을입니다. 아침마다 안개가 떠나며 강물이 드러나고 어느 먼 곳에서 돌아온 듯 풀꼿들이 내 앞에 내 뒤에 깜짝 깜짝 반가움으로 피어납니다. 누님 같은 가을 강가에 서서 강 깊이 하늘거려 비치는 풀꽃들을 잔잔히 들여다보며 누님을 .. 김용택* 2009.06.18
섬진강 21 -누이에게 - 김용택 * 섬진강 21 -누이에게 - 김용택 누이야 오늘도 나는 해거름에 넋 놓아 강 건너 묵어가는 밭들을 바라본다. 어릴 때 너를 업어 잠재우며 바람에 일렁이는 보리밭을 보노라면 언제는 패고 언제는 쓰러졌다 일어나 무릎 짚고 익어 있던 앞산 보리들을 바라보며 나는 너의 가지런한 숨소리를 .. 김용택* 2009.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