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탁번 시 모음 * 순은(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 - 오탁번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 나뭇가지마다 순은의 손끝으로 빛나는 눈 내린 숲길에 멈추어 선 겨울 아침의 행인들 원시림이 매몰될 때 땅이 꺼지는 소리 천 년 동안 땅에 묻혀 딴딴한 석탄으로 변모하는 소리 캄캄한 시간 바깥에 숨어 있다가 .. 시인 詩 모음 2009.12.16
김종삼 시 모음 * 묵화(墨畵) - 김종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 김종삼시집[북치는 소년]-민음사,1979 * 새 또 언제 올지 모르는 또 언제 올지 모르는 새 한 마리가 가까이 와 지저귀고 있다 이 세상에선 들을 수 없.. 시인 詩 모음 2009.12.02
김춘추 시 모음 * 오수(午睡) - 김춘추 청개구리 토란 잎에서 졸고 해오라기 깃털만치나 새하얀 여름 한낮 고요는 수심(水深) 보다 깊다 * * 빙어(氷魚) 그 누가 유리창에 시린 창자만 그려넣었나! * * 낮달 이승 저승 사잇길을 절뚝이며 걸어가는 나막신 한 짝 * * 매화 어느 童妓의 전생이거나 그 밖에 또 다.. 시인 詩 모음 2009.12.01
술 시 모음 * 반성 16 - 김영승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 * 만날 때마다 - 이성부 만나면 우리 왜 술만 마시며 저를 썩히는가. 저질러 버리는가. 좋은 .. 시인 詩 모음 2009.11.30
박형준 시 모음 * 빛의 소묘 - 박형준 누가 발자국 속에서 울고 있는가 물 위에 가볍게 뜬 소금쟁이가 만드는 파문 같은 누가 하늘과 거의 뒤섞인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가 편안하게 등을 굽힌 채 빛이 거룻배처럼 삭아버린 모습을 보고 있는가 누가 고통의 미묘한 발자국 속에서 울다 가는가 * * 이 저녁에 .. 시인 詩 모음 2009.11.30
겨울 시 모음 * 겨울밤 - 박용래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 귀 바람은 잠을 자리 * 겨울 나무 - 이정하 그대가 어느 모습 어느 이름으로 내 곁을 스쳐 지나갔어도 그대의 여운은 아.. 시인 詩 모음 2009.11.24
박철 시 모음 * 연 - 박철 끈이 있으니 연이다 묶여 있으므로 훨훨 날 수 있으며 줄도 손길도 없으면 한낱 종잇장에 불과하리 눈물이 있으니 사랑이다 사랑하니까 아픈 것이며 내가 있으니 네가 있는 것이다 날아라 훨훨 외로운 들길, 너는 이 길로 나는 저 길로 멀리 날아 그리움에 지쳐 다시 한 번 돌.. 시인 詩 모음 2009.11.23
최영철 시 모음 * 홍매화 겨울나기 - 최영철 그해 겨울 유배 가던 당신이 잠시 바라본 홍매화 흙 있다고 물 있다고 아무데나 막 피는 게 아니라 전라도 구례 땅 화엄사 마당에만 핀다고 하는데 대웅전 비로자나불 봐야 뿌리를 내린다는데 나는 정말 아무데나 막 몸을 부린 것 같아 그때 당신이 한겨울 홍.. 시인 詩 모음 2009.11.16
사투리 시 모음 * 해남에서 온 편지 - 이지엽 아홉배미 길 질컥질컥해서 오늘도 삭신 쿡쿡 쑤신다 아가 서울 가는 인편에 쌀 쪼깐 부친다 비민하것냐만 그래도 잘 챙겨 묵거라 아이엠에픈가 뭔가가 징허긴 징헌갑다 느그 오래비도 존화로만 기별 딸랑하고 지난 설에도 안와부럿다 애비가 알믄 배락을 칠 .. 시인 詩 모음 2009.11.10
이병초 시 모음 * 미꾸라지 - 이병초 찌그러진 주전자 허리에 차고 미꾸라지를 캔다 벼 벤 밑동을 파면 거기 요동치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아찔함을 건져 주전자에 담는다 확에 갈아 체에 밭치기 전 요것들을 고무 함지에 쏟아 놓고 소금 뿌려 썩썩 문지를 때 죽을둥살둥 손에 감기던 차진 살맛이 .. 시인 詩 모음 2009.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