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재 시 모음 * 소금창고 - 이문재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늦가을 평상에 앉아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준다 시린 바람이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역광을 받아 한 번 더 피어 있다 눈부시다 소금창고가 있던 곳 오후 세 시의 햇.. 시인 詩 모음 2009.10.29
나희덕 시 모음 * 序詩 - 나희덕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 천장호에서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시인 詩 모음 2009.10.28
나종영 시 모음 * 우수(雨水) - 나종영 선암사 해천당 옆에 수백년 묵은 뒷간 하나 있습니다 거기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 문 틈새 이마 위로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목어(木魚) 흔들어 깨우고 가는 청솔 바람소리 보입니다 부스럭부스럭 누군가 밑닦는 소리 들리는데 눈 맑은 동박새가 매화 등걸 우듬지에 .. 시인 詩 모음 2009.10.24
홍영철 시 모음 * 가슴이 뭉클하다 - 홍영철 날은 저물었고, 오솔길을 따라 올라간다. 나무 하나 지나고 나무 둘 지나고 나무 스물, 서른, 마흔 지나고 풀 하나 지나고 풀 둘 지나고 풀 수도 없이 지나고 숲속 거기, 그 자리에 앉는다. 멀리 하늘 위 별빛은 반짝거리는데 문득 가슴이 뭉클하다. 언제였던가? .. 시인 詩 모음 2009.10.19
우체국 시 모음 * 장승포우체국 - 정호승 바다가 보이는 장승포우체국 앞에는 키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그 소나무는 예부터 장승포 사람들이 보내는 연애편지만 먹고 산다는데 요즘은 연애편지를 보내는 이가 거의 없어 배고파 우는 소나무의 울음소리가 가끔 새벽 뱃고동소리처럼 들린다고 한다.. 시인 詩 모음 2009.10.12
박용래 시 모음 * 꿈속의 꿈- 박용래 지상은 온통 꽃더미 사태인데 진달래 철쭉이 한창인데 꿈속의 꿈은 모르는 거리를 가노라 머리칼 날리며 끊어진 현(弦) 부여안고 가도 가도 보이잖는 출구 접시물에 빠진 한 마리 파리 파리 한 마리의 나래짓여라 꿈속의 꿈은 지상은 온통 꽃더미 사태인데 살구꽃 오.. 시인 詩 모음 2009.10.09
이성선 시 모음 * 문답법을 버리다 - 이성선 산에 와서 문답법을 버리다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 구름을 조용히 쳐다보는 것 그렇게 길을 가는 것 이제는 이것 뿐 여기 들면 말은 똥이다 * 여름비 대낮에 등때기를 후려치는 죽비소리 후두둑 문밖에 달려가는 여름 빗줄기 * 고요하다 나뭇잎을 갉아먹던.. 시인 詩 모음 2009.10.07
정현종 시 모음 * 섬 - 정현종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 하늘을 깨물었더니 하늘을 깨물었더니 비가 내리더라 비를 깨물었더니 내가 젖더라 * * 바쁜듯이 정말 바쁘지는 말고 바쁜 듯이 그것도 스스로에게만 바쁜 듯이 한가한 시간이 드디어 노다지가 될 때까지 느긋하게 느긋하게 .. 시인 詩 모음 2009.10.07
갈대 시 모음 *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ㅡ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 시인 詩 모음 2009.10.05
황동규 시 모음 2 * 탁족(濯足) - 황동규 휴대폰 안 터지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살갑다 아주 적적한 곳 늦겨울 텅 빈 강원도 골짜기도 좋지만 알맞게 사람 냄새 풍겨 조금 덜 슴슴한 부석사 뒤편 오전(梧田)약수 골짜기 벌써 초여름, 산들이 날이면 날마다 더 푸른 옷 갈아입을 때 흔들어봐도 안 터지는 휴대.. 시인 詩 모음 2009.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