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리 시 모음 * 여름, 그 찬란한 허무 - 홍해리 죽음을 앓던 고통도 허무도 뜨거운 태양 앞에선 한 치의 안개일 뿐 또 하나의 허탈과 어둠을 예비하고 폭군처럼 몰고 가는 자연의 행진 가을의 풍요론 황금 하늘을 위해 영혼의 불은 끝없이 타오르고 폭염으로 타는 집념의 숲 무성한 잎들의 요란한 군무.. 시인 詩 모음 2009.07.31
이영광 시 모음 * 숲 - 이영광 나무들은 굳세게 껴안았는데도 사이가 떴다 뿌리가 바위를 움켜 조이듯 가지들이 허공을 잡고 불꽃을 튕기기 때문이다 허공이 가지들의 氣合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이다 껴안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무른 것으로 강한 것을 전심전력 파고든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무.. 시인 詩 모음 2009.07.30
김광규 시 모음 * 달팽이의 사랑 - 김광규 장독대 앞뜰 이끼 낀 시멘트 바닥에서 달팽이 두 마리 얼굴 비비고 있다 요란한 천둥 번개 장대 같은 빗줄기 뚫고 여기까지 기어오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멀리서 그 그리움에 몸이 달아 그들은 아마 뛰어왔을 것이다 들리지 않는 이름 서로 부르며 움직이지 .. 시인 詩 모음 2009.07.29
마종기 시 모음 *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 마종기 오랫동안 별을 싫어했다. 내가 멀리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인지 너무나 멀리 있는 현실의 바깥에서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안쓰러움이 싫었다 외로워 보이는 게 싫었다 그러나 지난 여름 북부 산맥의 높은 한밤에 만난 별들은 밝고 크고 수려.. 시인 詩 모음 2009.07.29
고은 시 모음 * 그 꽃 - 고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 별똥 옳거니 네가 나를 알아보누나 * * 오일장장터 미안하다 미안하다 나 같은 게 살아서 오일장장터에서 국밥을 다 사먹는다 * * 석굴암 얼마나 많은 밤들이 있었더냐 그 얼마나 많은 바람부는 날들이 있어야 하였더냐 천년.. 시인 詩 모음 2009.07.27
박두진 시 모음 * 하늘 - 박두진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론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 시인 詩 모음 2009.07.22
박라연 시 모음 * 목계리 - 박라연 가도 가도 산뿐이다가 겨우 몇 평의 감자밭 옥수수밭이 보이면 그 둘레의 산들이 먼저 우쭐거린다 제 몸을 가득 채운 것들을 신의 흔적이다, 라고 믿고 살지만 두 눈으로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사람의 흔적인 옥수수의 흔들림 감자꽃 향기는 왕산(王山)이 본 것 중 가장 .. 시인 詩 모음 2009.07.18
김사인 시 모음 * 여름날 - 김사인 풀들이 시드렁거드렁 자랍니다 제 오래비 시누 올케에다 시어미 당숙 조카 생질 두루 어우러져 여름 한낮 한가합니다 봉숭아 채송화 분꽃에 양아욱 산나리 고추가 핍니다 언니 아우 함께 핍니다 암탉은 고질고질한 병아리 두엇 데리고 동네 한 바퀴 의젓합니다 나도 삐.. 시인 詩 모음 2009.07.17
천양희 시 모음 * 직소포에 들다 - 천양희 폭포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와! 귀에 익은 명창의 판소리 완창이로구나 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정상이란 생각이 든다 피안이 이렇게 가깝다 백색 .. 시인 詩 모음 2009.07.15
윤동주 시 모음 *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 아침 휙, 휙, 휙 쇠꼬리가 부드러운 채.. 시인 詩 모음 2009.07.13